비행선에서 한발짝 내려서자마자 붉은색이 시야를 가득 메꿨다. 안그래도 강렬한 색인데 비행선의 새햐얀 색과는 달리 명도가 다른 붉은색이 각각 뒤섞여있는지라 시각적으로 곤욕스럽다. 가미가 적응이 덜 된 눈을 살짝 찌푸리려는 사이 마도츠키의 모습이 희다못해 새파란 색을 지닌 설녀로 변했다. 이윽고 조금 후덥지근한 화성 위로 새하얀 눈이 흩날리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고, 백색과 적색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배경 속에서 통상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마도츠키가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몇초라 하기에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거기에 있는 것은 훌륭한 눈사람.
"……."
자신보다 반 보 앞선 위치에서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마도츠키의 뒷모습이 어쩐지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며, 가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 뒤를 쫓아 걸어갔다.
화성의 표면에 내려앉은 눈은 처음에는 순식간에 녹아버렸지만 조금식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쌓여가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처음에는 조금 덥던 화성의 기온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랄까 이쯤되면 설녀가 아니라 간이 에어컨 수준이다. 물론 행성의 기온이 에어컨 하나로 변동될 리가 없지만 여기는 어차피 꿈속이니가 넘어가자. 아무튼 그렇게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뽀득뽀득 앞으로 걸어나가던 마도츠키가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백색의 가파른 비탈길이 그 앞에 버티고있었다.
아, 이건 좀 올라가기 힘들지도- 라는 감상과 함께 거미가 위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옆에 서있던 마도츠키의 눈사람 모자가 종적을 감추었다. 눈사람 상태로는 걸음이 불편해지니까 다른 이펙트로 갈아낀 걸까. 그렇게 생각한 가미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일단 본모습으로 돌아와있기는 하지만 보통 때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크기로 줄어들어있는 마도츠키였다. 크기는 조금 전의 미니멈 큐큐군보다 조금 더큰 수준.
"…난쟁이?"
까마득한 아래에 있는 마도츠키를 바라보며 가미가 중얼거리자 그와 동시에 아랫쪽에서 뭔가가 튀어올라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선 가미가 다시 마도츠키쪽을 바라보자 어느샌가 그녀는 둘로 분열되어있었고, 그제사 난쟁이 이펙트의 특수능력을 기억해낸 가미가 눈을 깜박이는 사이 두 마도츠키 사이에서 또다른 마도츠키가 경쾌하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줄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고, 넷이 다섯이 되고, 다섯이 여섯으로…
"…?! 잠시만, 얼마나 늘어날 셈이야?"
가미의 외침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딱 마도츠키의 분열이 멈췄고,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가미는 난쟁이 마도츠키의 수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총 일곱이다. 난쟁이가 되기 전에 비해 굉장히 활발하게 주위를 돌아다니는 마도츠키들을 바라보던 가미의 머릿속에 문득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물론 이대로라면 일곱 난쟁이에 세븐 마도츠키, 백설공주역에 자신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결과가 나와버리니 극히 어울리지도 않는 상상이 되어버리지만 계모역의 후히키는 제법… 아니, 무서울 정도로 어울린다. 왕자가 누군지는 열외로 치자.
"그런데, 왜 여기서 난쟁이 분열인거야?"
가미가 마도츠키들에게 묻자 그때까지 제멋대로 움직이던 마도츠키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뒤이어 질서정연한 움직임으로 한데 모인 그녀들이 말없이 가미를 쳐다보았고, 그 침묵에 맞서듯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가미는 눈이 나쟁이 마도츠키들의 키높이 까지 샇였을 무렵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알았어, 내가 지고 올라가면 되는거지?"
거의 눈 속에 파묻힌 상태인 리틀 마도츠키들 사이에서 작은 환성이 울렸다. 환성이 아니라 빨리 꺼내달라는 구조요청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일까. 아무튼지간에 가미가 마도츠키들 사이에 쌓인 눈을 손으로 치워내자 순식간에 마도츠키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가미의 손 위로 몰려들었다. 햄스터를 키우는게 이런 느낌이려나. 가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도츠키 하나가 가미의 손목, 팔 등을 타고 어깨까지 쪼르르 달려올라왔다.
"에? 와아? 어디로 올라가는거야?!"
말그대로 양손이 막혀있어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가미가 질겁하는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던 마도츠키a가 도달한 것은 가미의 머리 위였고, 그 장소가 마치 자신의 지정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자리잡는 마도츠키a의 행동에 잠시 한숨쉬던 가미는 별 수 없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솔직히 머리위에 뭔가가 올라앉아있으니 인간으로의 존엄성이랄까 자의지가 모조리 무시된 채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뭐, 거의 이동수단(의 동력원)쯤으로 이용되고있으니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가. 살짝 어깨를 늘어뜨리고, 가미는 머리 위의 한 명+양 손바닥 위의 여섯명과 함께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
"…겨우 도착했다…."
비탈길의 정상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가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제로지만 올라오는 도중에 까딱해서 넘어지기라도 했다간 대참사가 터진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탓에 쓸데없이 긴장해버려서 정신적으로 엄청 피곤하다. 가미가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재빠르게 땅으로 내려서는 마도츠키들을 바라보다가, 가미는 머리 위의 한 명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머리 높이로 손을 들어올렸다.
아작.
"…아얏!!"
눈물을 찔끔이며 손을 내리니 중지 끝에 멋들어지게 이빨자국이 새겨져있었다. 내려오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잖아. 가미가 속으로 웅얼거리는 사이 일렬종대로 늘어선 마도츠키들이 정상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으로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 정도의 크기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구멍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개미굴로 들어가는 개미를 연상시켰다. 이윽고 여섯번째 마도츠키까지 모두 자취를 감췄고, 또 여기서 시간을 죽여야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던 가미는 머리 위에서 아래로 폴짝 뛰어내리는 일곱번째 마도츠키를 발견하고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뭐야, 결국 내릴거였으면서. 그럼 왜 물어뜯은 거람.
"…넌 안들어가?"
일단 여섯이 다 들어간 이상 남은 하나도 들어가야 이치에 맞다. 가미가 그런 의도를 살짝 내비치자 일곱번째 마도츠키는 잠시동안 구멍과 가미를 번갈아 쳐다본 뒤 가미에게 손을 이리 내라는 식의 제스쳐를 취했다. 설마 오른손을 물었으니 이제 왼손도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는건가. 그런식의 사고방식은 예전에 태어난 목수 아들씨의 이야기에서 나온걸로 충분하다. 경악에 빠진 가미가 손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일곱번째 마도츠키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은 뒤 가미쪽으로 몇 걸음 다가와 소맷자락을 붙잡은 뒤 도저히 그 작은 몸에서 나온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힘으로 옷자락을 잡아끌며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 가미의 손이 구멍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마도츠키로 추정되는 힘이 한번 더 강하게 안쪽으로 잡아당기자.
쑥하고 구멍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시계를 보며 달리는 토끼를 쫓다가 구멍이 몸이 쑥 빠져버린 소녀만큼이나 놀란 눈을 한 채, 가미는 주위를 휘휘 돌아보았다. 자신을 이 안쪽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중의 하나)는 이미 한데 모여있는 여섯 마도츠키쪽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보이는 것은 자신의 팔이 겨우 들어갈 크기의 구멍으로 새어들어오는 빛. 아무리 생각해봐도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공간이동이다. 이럴땐 그냥 나이스 드림 퀼리티로 넘겨버리는게 낫겠지. 구멍에서 시선을 떼어내자 땅에서 일직선으로 서로의 등에 올라타있는 일곱 마도츠키의 모습이 들어와, 가미는 조금 뜨악한 기분이 되었다. 뭔가 서커스라고 할 생각인걸까. 하지만 가미의 예상과는 달리 세로로 나란이 늘어선 일곱 마도츠키는 갑작스레 기묘한 비명과 붉은 색을 흩뿌렸다.
예상외의 사태에 깜짝 놀란 가미가 오히려 몸이 굳어버려 그 자리에 멍청히 앉아있자니, 어느샌가 보통의 크기로 되돌아온 마도치키가 몸에 몯은 먼지를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아마도 아까의 그건 난쟁이 상태에서 통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방법이었던 모양이지만- 솔직히 이런 식이라면 애초부터 분열하지 않는 편이 훨씬 좋다. 뭐 원래의 방법에 비하면야 짧아서 좋은것 같진 하지만 어느쪽이든지간에 가미에게 크리티컬 정신적 데미지를 준다는건 똑같다. 그 증거로, 가미는 보통으로 돌아온 마도츠키가 가미를 끌고 억지로 아래로 내려가 그 바닥에 도착할 때까지 살짝 맛이 간 상태로 그저 멍하니 따라가고만 있었다.
=
그리고 그 아래의 아래에 도착했을 때, 가미는 그제사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눈을 깜박였다. 이제까지 걸어내려온 계단은 끝나고 발 아래에 단단한 지면이 밟히고 있었다. 한참동안 내려온 모양인지 피부에 닿는 공기가 묵직하고 싸늘하다. 마치 무언가의 유적지 같은 풍경을 돌아보던 가미의 눈에 어디론가로 향하는 마도츠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디로 가는거야? 그렇게 물으려하다가, 가미는 마도츠키가 걸어가는 방향에 서있는 거대한 형상을 보고 숨을 삼켰다.
"…저건…."
거짓말처럼 거대한 발. 원래라면 허벅지가 있어야 할 부분에 박혀있는 거대한 눈동자. 그 안에서 스며나와 바닥으로 톡톡 떨어져내리는 무지개색 눈물방울들. 어디를 보고있는 지 알 수 없는 눈동자는 그저 흐릿하게 허공을 응시하고만 있다.
그리고 그 아랫쪽에 도착한 마도츠키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화성인의 발목부근을 만졌다. 화성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도츠키는 끈기있게 계속 손을 대고 있었다. 화성인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지껏 그녀의 손에 닿은 존재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설마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걸까. 가미가 조심스레 마도츠키에게로 다가가자, 때마침 화성인으로부터 손을 떼어낸 그녀가 작게 한숨지었다.
"…괜찮아?"
왠지 그렇게 물어버렸다. 마도츠키는 가미쪽을 돌아보더니 잠시 후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젓고는 가미를 스르륵 지나쳐 뒷쪽의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물러서는건가. 조금 아깝다는 기분에 가미가 화성인의 눈동자를 올려다보자, 일순 그 눈동자가 빙글 움직이며 가미와 마도츠키쪽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미가 마도츠키를 부를 사이도 없이 화성인은 도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지개색 눈물은 여전히 낙숫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시계바늘의 움직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방울져 떨어져내리는 슬픔.
"……."
조용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 몸을 반바퀴 회전시킨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여 마도츠키의 뒤를 쫓아가다가, 가미는 문득 다시 한번 더 뒤를 바라보았다. 유적 속에 홀로 서있는 화성인은 시들어버린 꽃밭에 딱 한 송이 피어있는 들꽃을 연상시켰다.
=
-실패해버렸어.
"그러게 말이… 응?!"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들은 목소리에 무심코 대답하다가, 가미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앞서서 걸어가던 마도츠키가 무슨 일 있냐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라… 방금 네가 말한거야?"
-그럼 누구겠어? 설마 다른 존재가 눈에 보인다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설마하니 이런 때에 목소리를 듣게 될줄은 몰랐다. 조금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마도츠키를 바라보다가, 가미는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해냈다. [실패해버렸어]라는 건 역시 저 아래의 화성인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래도 만약을 위해 가미가 재차 확인하자, 마도츠키가 남을 미묘하게 바보취급하고있는 목소리로 그럼 다른 게 있냐고 대답하며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치만… 그… '화성인'씨는 왜 아무 변화 없었던 거야?"
[그 사람]과 [그것] 사이에서 어느 호칭을 쓸지 고민하다 결국 이름을 부르기로 결정한 가미의 말을 들은 이후에도, 마도츠키는 계단을 걸올라가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걸까. 그렇게 생각한 가미가 다시 한 번 물으려고 한 순간, 마도츠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는 갈 생각이 없었어
"갈 생각이, 없어…?"
-다른 사람들은 나랑 같이 가줄 마음이 있었어. 그러니까 데려갈 수 있었어.
"헤에…."
- 하지만 그는 거기서 계속 있겠다고 했어. 그도 데려가고 싶었는데 아쉬워.
"그렇구나…."
마도츠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려가고 싶었다'라는건 어디를 말하는 거지? 일단 유일하게 떠오르는건 예의 그 하얀 비행선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틀렸다는 기분이 든다. 의혹을 품은 채 앞에서 걸어가는 마도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고있자니, 어느사이엔가 둘은 구멍의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조금 전 설녀 마도츠키가 내리게 한 눈이 소복하게 쌓여 발 밑에서 뽀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기, 어디로 데려간다는 거야?"
마도츠키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언덕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경사지점에 사뿐히 걸터앉은 채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있었다. 엉덩이가 젖지않을까 걱정됐지만, 신기하게도 눈은 손바닥으로 매만져도 전혀 녹아내리지 않았다. 이것도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가미가 그 옆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자 마도츠키가 아랫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다른 장소…라니, 어디?"
-어디든지, 어디라도, 어디까지나.
수수께끼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가미는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이 언덕을 내려가 저 비행선에 올라타면 아마도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는 그녀의 말대로 어디든지 있고 어디라도 될 수 있고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그러한 장소겠지. 현실에서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여기는 꿈 속이다. 이때까지 있었던 여러가지 모순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런 억지쯤은 귀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화성 위에 쌓인 결코 녹지 않는 눈 위에 걸터앉은 채, 가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돌아오지 않겠지.
갑작스런 위화감이 덮쳐온 것은 그런 것을 생각한 다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다, 고 하면 어디를 말하는 걸까. 이 곳, 지금 둘이 앉아있는 이 장소로? 하지만 그녀는 어디든지 있고 어디라도 될 수 있는 장소로 떠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여기로 아예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은 다소 이치에 맞지않는다. 즉 그녀가 떠난다는 장소는 이런 곳이 아니라 무언가가 좀 더 다른, 예를 들자면…
…現實(현실)?
"……."
-도와줘서 고마워. 사실은 약간 심술부린거야.
"심… 술…?"
응, 하고 마도츠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왜냐면 당신이 나를 *였으니까.
순간 몸이 차갑게 식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평온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도츠키의 옆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이 어째서인지 흐릿하게 변했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슴푸레한 하늘, 텅 빈 방, 베란다 난간의 계단, 끝나버린 꿈 등의 이미지가 한데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으깨지다가-
핏자국.
-미안, 농담이야.
"……."
-그렇게 우울한 표정 짓지마. 지금 난 제법 즐거우니까.
머리에 손이 닿았다. 마도츠키가 자리에서 일어서 가미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몸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성대를 울려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던가. 가미가 간신히 눈을 깜빡이는 동안, 가미에게서 약간 물러선 마도츠키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 끝.
-…잘 가.
=
그리고 꿈이 끝났다.
아니, 보통은 끝났다고 안하고 꿈에서 깼다고 하지않나? 반쯤 잠에 취해있는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며, 가미는 눈을 깜박였다. 눈가가 미묘하게 젖어있었다. 자면서 운건가 싶었지만 꿈이 그렇게나 우울한 느낌은 아니었다. 깨어난 순간 꿈이 거의 잊혀져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같이 찾아주는 느낌의 꿈이었으니까, 오히려 기분좋은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 왜 눈이 젖어있는 걸까. 가미는 약간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기억나지 않으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다시 잠들려다가, 가미는 문득 몸을 돌려 저편에서 잠들어있는 후히키쪽을 바라보았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아주 잘 자고있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자니 왠지 울컥해져서, 가미는 후히키의 머리를 딱 소리나게 때렸다. 불의의 충격을 받은 후히키가 형용키 어려운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너때문에 나는
나때문에 그 아이는」
어라, 이건 뭐지.
자신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문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가미는 포기하고 다시 잠들었다.
이번에는 누군가와 그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노는 꿈을 꿨다.
=
그리고 아침에 깨어났을 때, 가미는 그 꿈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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