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가니 자신을 등 진 채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있었다. 멀린은 천천히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분명 느꼈을 텐데 밀레시안은 계속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에 왜 안 자고 청승이야?"
"생각나는게 좀 많아서."
"혼자서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라니까."
"미안."
"그렇다고 사과할 것 까진 없고."
곁에 앉아 텅 비어있는 한 손을 잡아 깍지를 끼자 무력하게 늘어져있던 손가락들이 천천히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멀린은 밤을 맞이하여 꽃잎을 다무는 꽃을 떠올렸다.
"그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옛날 생각."
"언제적 옛날?"
"별들이 아직 이 땅에서 많이 빛나던 시절."
"...그리워?"
멀린의 질문에 밀레시안은 금방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멀린 쪽으로 기울어졌다.
"질투해?"
"그래, 질투나서 죽겠다. 몇 천년간 네 곁에 있어준 남자를 놔두고 다른 생각이라니."
"자기도 처음엔 다른 사람 좋아했으면서."
"야! 그걸!! 아직도 끌고 오냐! 반칙이다! 내가 진짜 그때 얼마나 장렬한 심정으로 고백했는데!"
"알아. 그냥 장난 좀 친 거야."
"....."
너 오래 살더니 좀 변한 것 같다.
이게 다 멀린 덕분이지.
눈으로 나눈 대화는 그녀의 옅은 미소로 끝났다. 슬픔을 화장품으로 만들어 바른다면 분명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겠지.
"다들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결국에는 다들 떠나고 말았지. ...그래도 멀린만은 내 곁에 남아주어서 다행이야. 쭉 혼자서만 살아가야 했다면 죽어버렸을지도."
"그래, 이 몸이 고백한게 네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그리고 이 몸의 행운은 네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거지."
밀레시안은 멀린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음 사이사이에서 채 억누르지 못한 슬픔이 흘러나왔다. 멀린은 마주잡지 않은 쪽 손으로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듯 뺨을 마주댔다.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이 자신의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울어도 괜찮아."
"......"
밀레시안의 몸이 온기를 찾듯 멀린의 품을 파고든다. 멀린은 그 몸을 소중하게 껴안아주며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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