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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언라이트

[메렌우닝?]원고봇-메렌-의 트윗을 보고 끼적여보았다

해당 트윗은

[오랫만이군요 브라우닝. 갑자기 홈페이지를 폭파하고 사라져서 걱정했습니다. 물론 당신의 연성을요]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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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홈페이지를 닫습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지옥의 마감을 끝내고 간신히 획득한 여유가 얼어붙는다. 한 손으로는 물컵을 쥐고 남은 한 손으로는 마우스를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채, 메렌은 황망히 스크롤을 달각거렸다. 화면은 움직이지 않는다. 드래그를 해봐도 중앙의 사과문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카운터도 없다. 숨겨진 링크도 없다. 암호도 없다. 만우절은 벌써 옛날에 지나갔다. 즉 이것은 속임수나 농담도 아니다.

 

브라우닝은 홈페이지를 폭파시켜버렸다.

 

“…말도 안돼.”

 

새로고침을 아무리 눌러도 화면은 바뀌지 않는다. 나중에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F5를 연타하던 메렌은 그 동작이 키보드 전체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거칠어졌을 무렵 아예 머리를 키보드에 박아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상이 삐걱이고 이마에서부터 알싸한 통증이 몰려온다. 펜 같은 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만약 그게 타블렛 펜이라면 당장 몸을 일으켜서 찾아야 할 테지만, 메렌이 받은 충격은 후일 펜을 찾아 방을 들쑤시고 싶지 않다면 지금 고개를 들어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을 간단히 짓뭉개버릴 만한 것이었다.

 

“어째서….”

 

대체 언제부터 닫혀있었던걸까. 최근 한 달동안 브라우닝의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늦는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원고에 치이느라 세심히 살필 시간도 없었다. 그런걸 꼬치꼬치 캐물어서 괜시리 불편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근 일주일간은 마감에 합작이 겹쳐 거의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애매모호하기만 한 기억에 머리만 잡아뜯던 메렌은 뒤늦게 메신저를 떠올리고 접속을 시도했다. 당연하게도, 브라우닝은 오프라인 상태였다.

 

 브라우닝은 지인을 많이 만드는 타입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사정을 쉽게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덕분에 누군가의 누군가, 혹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브라우닝을 찾으려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버렸고, 그동안에도 여전히 홈페이지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혹시나 브라우닝이 메신저에 접속할지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려 메렌이 길게 써 남긴 쪽지에 답장이 오는 일도 없었다.

 

그것이 약 1년 전의 일이다.

 

 

“……브라우닝?”

 

메렌의 말 한 마디에 부스에 앉아 파본을 뒤적거리고 있던 남자가 굳는다. 부스는 2명이서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브라우닝의 옆자리에 놓인 의자는 텅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안에서 이야기를 해도 괜찮으리라 판단하고, 메렌은 인파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몸을 틀어 부스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브라우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말릴만한 말이 생각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맙소사, 이제야 만났….”

“…나를 찾고 있었나?”

 

그 말투가 너무나 의외라는 투라, 이 우연을 신에게 감사하려던 메렌은 순간 머리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거 아닙니까? 마감을 끝내고 들어가보니 갑자기 홈페이지가 사라져있는데!! 제가 뭐 잘못한게 있나 브라우닝에게 말 못할 고민 같은게 있었나 싶어서 일주일 동안 당신과의 메신저 로그만 뒤져봤을 정도라구요! 그랬는데도 당신은….”

 

허탈함에 짓눌린 메렌이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난감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던 브라우닝은 일단 그를 앉히기 위해 비어있는 의자를 메렌에게 권했지만, 메렌은 의자를 흘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앉지는 않았다. 거기에 앉으면 브라우닝이 무슨 핑계를 대며 인파 속으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메렌의 거절에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한 브라우닝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말없이 홈페이지를 없앤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때는 여러가지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

“…저나 루드, 브라우에게 한 마디 말도 못 꺼낼 정도였나요?”

“……응.”

“지금도 말할 수 없으십니까?“

“…….”

 

침묵이 차오를 사이도 없이 사람들의 웅성임이 물결친다.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던 브라우닝은 이내 무거운 사슬을 토해내듯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물론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말야…. 난 탐정이 직업일세.”

 

그것은 처음으로 듣는 브라우닝의 사담(私談)이었다.

 

“탐정 소설처럼 화려한 일을 하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리저리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하는게 내 일이야. 그러던 와중에 글을 쓰게 되었고, 운좋게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인기를 얻어서 회지를 낼 생각도 하게 됐네. 자네와도 그 무렵에 만났어. 솔직히 말하자면 기뻤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처음으로 가치있는 일을 해냈다고 인정받은 것 같았어.”

 

책상 위, 어설피 녹은 페트병 속 얼음 덩어리가 덜그럭거리며 표면을 두드린다.

메렌은 조용히 브라우닝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홈페이지로 박수가 하나 날아왔네.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소설 잘 읽었습니다. 생생한 전개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근데 신기한건 사건의 얼개가 작년 오빠가 당했던 일과 비슷하다는 거에요! 우연의 일치란건 굉장하네요! 아니면 이런 사건도 의외로 흔한 일인 걸까요? 뭐 어쨌든간에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굉장히 놀랐어. 말마따나 그 글은 어느 스토킹 사건을 배경 삼아 쓴 물건이었으니까. 비단 그것뿐만 아니야. 그전의 글도, 그 전전의 글도, 그 훨씬 너머 내가 처음으로 쓴 글도 모조리 의뢰인의 사건, 혹은 성격에 기반을 둔 글이었네. 패턴도 묘하게 반복되고 있었어. 당연하지. 내가 받는 의뢰는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처음에는 이 사실을 눈치챈 사람이 간접적인 협박이나 비난의 한 방법으로 글을 남긴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있거나 조만간 알게 되는건 아닐까 두려웠어. 남의 불행과 사연에서 자신의 소재를 따오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으니까. 부정하기도 힘들거야. …그래도 내 나름대로 발버둥은 쳐봤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단숨에 내던져버리거나, 내 글이 누군가의 실화에 이름만 덧씌운거나 다름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결과는… 자네가 본 대로야.”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진게 없었으니까. 지리멸렬하고, 시시하고, 따분하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있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을 만들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인상적인 부분부터 쓰기 시작하면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의 이야기가 섞여들어간 기분이 들었어. 아니, 섞여들어가 있었지. 그렇다고 방향을 틀면 여지없이 고리타분해졌어. 그 한 달 동안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건 내 실력은 겨우 이 정도라는 사실이었네.”

 

페트명의 표면에 고인 물기가 잠시 머뭇거리다 행사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투둑.

 

 “자네들에게 상담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야. 나는 사실 탐정인데, 내 글에는 의뢰인들의 사연이나 성격이 뒤섞여 있을 뿐이지 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달은 뒤로 나만의 글을 쓰려고 노력해도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그런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 순 없지 않나.”

 “그래서 우리를 버렸습니까?”

 

메렌의 말은 통렬했다. 브라우닝은 설핏 입술을 벌렸다가도 도로 다물어버렸고, 자신의 발언이 브라우닝에게 지나치게 냉혹하게 들릴 수도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메렌 또한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몇 사람들이 부스 앞에 놓인 샘플본을 팔락이다가 사라져갔다.

 

 “…전 브라우닝의 글이 좋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알고있습니다. 알고있으니까, 제 말을 들어보세요.

 …브라우닝의 문체는 분명 건조하고 심플한 느낌이죠.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안에 반짝이는 모래알같은 감정들이 숨어있어서, 그걸 찾아가면서 읽고있다보면 가슴이 술렁거렸습니다. 그 스토킹 소설에서도 둘이서 함께 행복해지자는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어줍잖은 개조였을 뿐이야.”

 “아뇨, 어줍잖은 개조같은게 아닙니다. 언젠가 루드가,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따오든 결국엔 쓰거나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결과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얘길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브라우닝의 글을 좋아했던 것도, 다른 무엇보다 당신의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네, 글의 내용같은건 아무래도 좋아요. 적어도 저는, 그것을 쓴 사람이 브라우닝이라서 그 글을 좋아했습니다.”

“…….”

 

브라우닝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누군가가 부스의 회지를 하나 사갔을 무렵 옅게 중얼거렸다.

 

 “난폭한 소리로군.”

 

열기에 맺힌 땀방울이 브라우닝의 볼을 타고 흡사 눈물방울처럼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