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언라이트

[로쏘그룬]스럽게 쓰려다가 실패한 무언가.

 

그룬왈드는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몸 구석구석의 상처에서 배어나온 피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며 땅바닥에 흔적을 남긴다.

들이쉬고, 내쉬고, 이따금 기침. 격하게 떨리는 입가를 가릴 때마다 뺨에 묻은 피는 아직까지도 굳지 않은 채.

 

아프…겠지. 당연히.

 

미쳐버렸다는 말 그대로의 기세로 그룬왈드에게 덤벼들던 늑대의 이빨을 떠올리고, 로쏘는 괜시리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가운데 근육이 단말마처럼 꿈틀거리던 감촉이 피부 위에서 화약의 잔향처럼 떠돌았다.

 

불쾌하다. 하지만 피부에 남은 감각은 단순히 손을 터는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의 피가 가죽의 일부가 들러붙어있는 자신의 손을 벌레라도 보는 눈으로 바라보던 로쏘는 이내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잡아당겼다.

그룬왈드의 검은 옷과 마찬가지로 피가 스며들어 반쯤 굳어있던 장갑은 뿌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갔다.

 

뒤이은 것은 시원하다기보다는 낯선 서늘함. 그 감각 속에서, 로쏘는 괴로운 듯 눈을 감고있는 그룬왈드에게로 손을 뻗었다.

덜 굳은 피가 피부와 피부 사이에서 찰싹 달라붙었다.

 

"…뭐냐."

 

조금 전까지 감겨있던 눈은 제법 매서웠다.

그 반응에 당혹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로쏘는 슬며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길을 따라 뺨 위로 엷게 번져나가는 핏자국은 어딘지 모르게 수줍은 소녀의 홍조를 연상시켰다.

 

로쏘는 웃었다.

 

"비웃는건가?"

"설마."

"그럼 뭐지?"

"글쎄에."

 

그룬왈드는 로쏘를 걷어차지 않으면 안될 이유를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늑대에게 물린 몸 치고는 제법 날렵한 발차기였지만, 역시나 그리 큰 데미지는 없었다.

 

때마침 제드와 함께 앞길의 탐색을 끝내고 돌아온 인도자가 그런 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얌전히 쉬고 있으라고 했더니 뭐하는거야? …저 앞에 식시귀가 하나 어슬렁거리고 있었어. 저 녀석만 없애면 이번 퀘스트도 끝이니까, 다들 힘내."

 

이 정도로 혹사시켜놓고 다시 강행군인건가, 로쏘가 혀를 차는 사이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은 그룬왈드가 인도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위태로운 걸음걸음마다 떨어지는 핏방울은 마치 붉은 장미 꽃잎같았다.

 

(흑黑태자라기보다 적赤태자로군.)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을 품으며, 로쏘는 일행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