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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미카도 수]신입교사의 한숨

 

"자, 됐어."

 

라이라 학원 양호실 안에 있던 양호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미카도의 얼굴에 얇은 밴드를 붙였다. 일단 유리에 베이긴 했지만 안에 조각이 남지도 않았고 상처 자체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으므로 알콜 솜으로 상처를 닦아낸 다음 그 위에 밴드를 붙이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나아서 보이지 않게 되리라는 양호선생의 충고에 미카도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약간 뒤에 물러서서 치료를 받는 미카도와 양호선생을 지켜보던 앙리가 입을 열었다.

 

"야기리 씨가 양호실에 있어줘서 다행이에요."

"사람은 언제 다칠지 모르니까. 그것뿐이야."

 

주변 도구를 차곡차곡 정리하며 그렇게 말한 뒤, 양호교사- 야기리 세이지는 마지막으로 선반 안쪽에 알코올을 되돌려 넣은 다음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도 두어번 시계를 봤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와 관련되어있는지 어느정도 알고있는 미카도와 앙리는 일단 감사의 인사를 남긴 다음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미카도와 앙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파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저기… 걱정끼쳐서 미안해."

"아냐, 류가미네군의 탓이 아닌걸."

 

계단을 올라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로 걸어가며 앙리에게 사과한 다음, 작은 웃음과 함께 그녀와 헤어진 미카도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교실의 앞문으로 걸어갔다. 교실안에서 술러이던 아이들이 미카도가 걸어오는 모습이 비치는 창문을 발견하고 일제히 입을 다무는 것이 그대로 들려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났으니 무리도 아니겠지. 체념과 망설임과 미약한 용기가 뒤섞인 심호흡을 한 뒤, 미카도는 어느샌가 수리공이 다녀간 모양인지 유리가 완전히 사라져있는 앞문을 천천히 밀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교실 안에 너무나 단단하게 응고되어있는 침묵이 반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을 타고 곧장 피부를 압박해들어와 그 압박에 곧장 교실 밖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신을 억누르며, 미카도는 교실 앞의 교탁까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간 다음 최대한 평소대로의 목소리로 들리기를 빌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오늘부터 1년간 이 반의 담임을 맡은 류가미네 미카도라고 합니다. 그, 잘 부탁해요!!"

 

인사를 마친 뒤 한 박자 늦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저 선생님, 아까 체육관에서도 저랬지?' '귀엽다아-' '너무 긴장한거 아냐?' 등등의 소곤거림과 함께. 일단 들어오자마자 기본적인 인사는 하긴 했지만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몰라 미카도가 쩔쩔매는 사이, 가장 맨 앞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한쪽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선생님- 일단 반 전체가 자기소개를 하는게 어떨까요?"

"응? 아, 아 그렇지… 그럼 출석번호 1번이- 그러니까, 가가 교이치로 군? 부터…."

 

그제서야 한쪽 팔에 들고있던 출석부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카도는 허둥허둥 출석번호 1번의 이름을 부르며 교실 안쪽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교실의 맨 앞줄의 왼쪽 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한쪽 팔을 들어올리며 짧게 대답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반 아이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름과 출신 중학교, 취미등을 간단하게 말한 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 뒤를 잇듯이 옆자리에 앉아있던 소녀-출석번호 2번이겠지-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미카도는 일단 한 고비는 넘어섰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출석부의 이름과 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연결하기 위해 자기소개를 하는 학생들을 한명 한명 자세히 쳐다보았다.

 

"출석번호 4번, 카도타 쿄헤이입니다. 취미는 독서…"

 

…….

………….

……………….

 

"출석번호 36번, 하지쿠라 마요이입니다. 취미는 영력 수련과 변호사 조수에요!"

"…추, 출석번호 38번…!!"

 

어라?

 

위화감을 느끼고, 미카도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 36번이 이름을 말한 뒤에는 당연히 37번이 일어서야하는데 그 대신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 뒤 38번이 당황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뻣뻣한 여학생의 목소리만큼이나 당황한 미카도는 소녀의 자기소개를 들을 정신도 없이 서둘러 출석부의 37번을 찾기 시작했다. 아래로부터 찾으면 될 것을 고지식하게도 위에서부터 훑어내리는 바람에 약간의 시간을 낭비한 미카도는 이윽고 서른 일곱번째의 이름을 찾아냈고, 그 이름이 의외로 익숙하다는 것에 놀랐다가 그것을 처음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한번 읽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 헤이와지마 시즈오(平和島 靜雄)]

 

"에- 37번, 헤이와지마군은 결석이야?"

 

그 순간 약간 부드러워져있던 반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미카도는 갑작스런 변화에 의아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침묵하는 반 아이들을 돌아보았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문 아이들은 서로서로의 눈치만을 살필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난감함을 느낀 미카도는 누군가를 지적해서 물어보아야 하나-하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 방식은 미카도 자신에게 있어 조금 난폭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달갑지 않은 침묵 속에서 진땀을 흘리고있던 미카도와 다른 반 아이들을 구해준 것은 조금 전 손을 들어 반 아이들의 자기소개를 제시했던 남학생이었다.

 

"선생님, 시즈오는 지금 교무실로 내려가서 여기 없습니다."

"에… 어째서?"

"………아까, 책상을 던진 녀석이 시즈오거든요."

 

아.

미카도는 그제서야 퍼뜩 깨달았다.

 

반 아이들이 굳어있었던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빨리 풀렸던 이유와,

어쩐지 교실 한 구석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를.

 

'……나, 초반부터 담임실격인 짓을 저지른 걸지도….'

 

마음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고, 미카도는 그 사실을 가르쳐준 남학생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간신히 이완된 반의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신입생들이 알아야 할 간단한 사항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정식 수업은 내일부터 시작되고, 각각의 동아리 활동은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신입생맞이를 시작한다. 그때까지는 선배들이 입부를 권유해도 따라가지 말고 강제로 데려가려 할 경우에는 즉각 선생님에게 알릴 것. 등교시간은 언제까지라는 것과 점심시간을 비롯한 모든 시간표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반의 시간표가 프린트된 용지를 반 전체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미카도는 마지막으로 이것으로 입학식날의 모든 일정이 끝났음을 알렸다. 긴장이 한 꺼풀 벗겨진 아이들은 그 즉시 거의 아무것도 들어있지않은 가방을 챙겨들고 교실을 나서기 시작했고, 그 흐름에서 벗어난 교탁에서 한 장 남은 프린트를 출석부에 끼우던 미카도는 어떤 학생이 자신의 앞쪽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몇번이고 미카도에게 조언을 건네주었던 남학생이었다. 이름이 분명….

 

"…카도타 쿄헤이군?"

"네. …그 프린트, 제가 시즈오에게 전해줄까요?"

"시즈오군이랑… 친해?"

"친하다기보단,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느낌이죠."

 

그제서 미카도는 남학생- 카도타가 자신에게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방금 전 '헤이와지마 시즈오'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교실 안이 얼어붙었듯이, 자신 또한 그 소년을 상당히 껄끄러운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을테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적은 이쪽에서 미카도를 대신해 프린트를 건네주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덥썩 받아들였을 그 제안에도 불구하고, 미카도는 출석부 사이에 끼인 프린트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잠시 선택을 망설였다. 카도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으음, 아냐. 괜찮아. 이건 내가 헤이와지마군에게 직접 전해둘게."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을거야… 아마도."

 

카도타의 질문에, 미카도는 쓰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

 

교실의 문을 모두 잠그고 (앞문 유리가 깨져있어서 과연 그런 방비에 의미가 있는건가 싶긴하지만), 열쇠를 들고 교무실로 되돌아온 미카도는 아니나다를까 한쪽 구석에 몰아세워진 채 묵묵히 침묵하고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발견했다. 원래 반에서 그 정도의 소동을 벌인 아이라면 지금쯤 헌악한 학생주임이나 성질 나쁜 체육선생에게 둘러싸여 각종 곤욕을 치루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어째서인지 그 소년의 주위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마치 너무 큰 힘을 가진 기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랄까.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그 풍경에 미카도가 멍하니 서있는 사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미카도를 끌어당겼다.

 

"여, 미-카도"

"키다군…!! 저기, 어떻게 됐어?"

"어떻게고 뭐고- 보시다시피."

"으음, 저기, 잘 모르겠는데…."

 

미카도의 말에 한번 어깨를 으쓱인 다음, 키다는 미카도의 몸을 교무실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단지 두 걸음 정도의 이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과 시즈오가 서있는 위치에 장애물이 가려져, 순식간에 서로가 서로의 시야에서 차단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한번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시즈오쪽에서는 자신들이 보이지 않아도 자신들에게서는 시즈오가 보이는 위치로 옮겨간 다음, 키다는 시즈오를 등진 자세로 소곤소곤 말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저녀석, 제법 유명해. 안좋은 방향으로."

"안 좋은… 방향?"

"말이 되지도 않을 정도로 힘이 세다는 거지-. 중학교때는 실제로 맨손으로 가게 하나를 박살낸적도 있어."

"…거짓말?!"

"진짜야. 유명한 이야기라고. …아무튼 그래서 어설프게 자극하느니 그냥 형식적인 벌만 주고 말자는게 된 거지.

 이야- 교장 선생님과 학생주임이 눈치빠른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니까."

 

묘한 뉘앙스를 품고있는 키다의 말을 대부분 흘려들으며, 미카도는 키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시즈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교무실의 한 구석,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는 위치에 가만히 서있는 시즈오의 표정은 지루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그렇게 서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저 조용히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카도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표정을 짓고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즈오가 미카도들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순간 눈이 마주칠 뻔한 미카도는 흠칫 몸을 떨며 시선을 회피했다가 자신이 들고있던 출석부에 끼워진 프린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

"어…, 어이, 미카도-?"

 

키다의 당황한 기색이 묻어있는 목소리를 등진 채 미카도는 한걸음 한걸음 시즈오에게로 다가갔다. 도중에 그의 행선지를 눈치챈 다른 교사들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두 사람의 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도중에 그 본인도 타인의 접근을 알아차렸는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창문가를 향하고있던 시선이 미카도쪽으로 향했고, 오늘들어 세번째로 그 시선을 마주하게 된 미카도는 피부를 찌르는 듯한 위압감에서 비롯된 위축감과 모순에 가까운 열기를 느끼며 시즈오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음- 그러니까, 헤이와지마 시즈오군이지?"

"……그렇습니다만."

"인사가 늦어서 미안. 나는 담임을 맡은 류가미네 미카도야. …좀 전에 봤었지?"

"……예에, 뭐…."

 

좋아, 일단 여기까지는 순조롭다.

미카도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반의 수업과 시간표에 대한 사항,

동아리 활동에 관한 사항,

반장을 정하기 전까지의 제도와 주번의 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표의 프린트를 건네주는 것으로 용무를 마무리한 뒤,

 

이때까지의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에 대해 약간 안심한 미카도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한 질문을 덧붙였다.

 

"저기, 시즈오군?"

"……뭡니까?"

"어째서 오늘 아침에 걸상을 집어던진 거야?"

 

그리고 공기가 얼어붙었다.

비유적인 의미지만 한없이 현실에 가깝게.

 

시즈오의 근처에 있던 교사들은 물론이요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의 사람들마저도 오한에 몸을 떨 정도로 흉흉한 기운을 드리우는 시즈오의 앞에서 불쌍한 미카도는 그야말로 늑대의 앞에 버려진 햄스터마냥 완전히 겁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시즈오의 분위기는 정면에서 흠칫흠칫 몸을 떠는 것조차 두려워질 정도로 싸늘한 것이었다. 미카도가 조상이나 알고있는 모든 신으로도 모자라 오늘 아침에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에게조차 필사적으로 사죄하는 동안, 시즈오의 입에서 분노를 간신히 꽉꽉 억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한글자씩 흘러나왔다.

 

"모 르 셔 도 됩 니 다 ."

 

그것뿐이었다. 약 열마디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 동안 온갖 힘을 들여 단 한문장을 말한 시즈오는 프린트를 받아든 채 발치에 놓여있던 자신의 가방을 들고 그야말로 바람처럼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그 발자국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서야 다른 교사들은 한숨 돌렸고, 그 발자국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던 미카도는 슬그머니 다가간 키다가 그 어깨를 살짝 건드리자마자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다.

 

"미카도?! 괜찮냐?! 기절한건 아니지?!"

"으, 어어, 아마도… …아마도?"

"…엄청 무서웠구나, 너…."

 

키다의 말에 간신히 엉성한 웃음으로 답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겨우 평상심을 되찾은 미카도는 출석부를 꼭 쥔 채 한숨쉬었다.

 

'앞으로 괜찮을까나…?'

그런 미묘한 불안감을 껴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