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님과 투나님과 함께한 릴레이. 주제는 [학교]의 [과거 시즈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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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향을 맡은 기억은 없다.
어딘가에서 굴러떨어지거나 넘어진 기억도 없다.
수상한 바주카포에 맞은 기억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그 일은 일어났다.
=
미카도는 양호실에 있었다. 수업시간에 반 급우가 쓰러졌다거나 양호선생님에게 은근한 마음이 있어서 꾀병 핑계를 대고 내려왔다던가 하는 만화적인 이유는 아니다. 미카도 자신의 머리가 어쩐지 아침부터 지끈거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이 메스꺼워 질 정도로 심해져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담임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은 뒤 양호실로 내려온 참이었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양호교사는 자리에 없었고, 추측성 확신만을 가지고 비틀비틀 양호실로 내려왔던 미카도는 가벼운 절망감을 느끼며 양호실의 바닥위에 털썩 무릎꿇었다. 양호실의 바닥에 깔려있는 타일의 무늬가 코 앞에서 멈췄다.
심장고동에 맞춰 지끈거리는 머리로 멍하니 그 무늬를 쳐다보던 미카도는 잊고있었던 구역질이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끼고 우선 침대에 눕고보자는 마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일으키자마 격렬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한두번 정도 넘어질 뻔한 다음 침대 위에 쓰러진 미카도는 번쩍거리는 머리때문에 빚어진 한숨을 내쉬며 뻑뻑한 눈을 지긋이 감았다. 수마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재빠르게 달려왔다.
…꿈은 바싹 메말라있었지만 그 건조함때문에 군데군데가 검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흐물거리기도 했지만 발이 푹푹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발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은 심장의 고동에 맞추듯이 규칙적으로 벌떡이고 있었다. 웅크려앉은 채 그 고동을 느끼고있던 미카도는 그 벌떡임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부풀어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머리가 으스러질지도 몰라. 하지만 발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걸을 수 없었다. 대신 내뻗어진 팔이 붉게 충혈된 부분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머이가 깨질듯한 고통이 밀려들며 팔이 그 안으로 쑥 삼켜져 들어갔다. 미카도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꿈
이
었
어
.
각성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졌다. 미카도는 눈을 감고있는 자신과 누워있는 자신과 옆으로 돌아누워 시트를 말고있는 자신과 호흡을 하고있는 자신을 차례대로 자각한 다음 숨을 내쉬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선의 정면에 굽혀진 손가락이 보였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에도 또 시간이 걸렸다. 필요이상으로 느려진 자신의 두뇌상태에 혀를 찬 뒤, 미카도는 자신이 얼마동안 이렇게 자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던 미카도의 머리에 갑자기 칼날이 박혀든 것은 그때였다.
"…!!!"
칼날은 쇄골 아랫쪽에서 비스듬하게 솟아오른 뒤 목 뒷쪽 부근에거 위쪽으로 둥글게 방향을 꺽은 뒤 안구 뒷쪽을 압박해 들어왔다. 소름기필 정도의 둔통에 이를 악물어 버티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지만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틀어막은 덕분에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말그대로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아까 잠들기 전에 약이라도 찾아먹는 건데.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아직 늦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어, 미카도는 커튼 너머를 바라보았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맺힌 눈물때문에 흐릿한 시야로도 커튼 너머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사실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양호선생이든 다른 학생이든지 간에 우선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선 미카도는 머리를 찌르는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버렸다. 제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나무바닥의 무늬가 사람의 눈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엷은 위화감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외부적인 변화보다는 자신의 내면적 고통에 정신이 쏠려있던 미카도는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시야를 가리우고있는 커튼쪽으로 기어갔다. 이윽고 미카도의 손이 커튼을 들어올리기 직전 건너편에 있던 누군가가 커튼을 밀어젖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왜 그래?"
미카도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때문이 아닌 너무나 놀랐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허나 그것을 알 리 없는 상대방은 안색이 창백한 미카도의 얼굴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혀를 차며 미카도의 한쪽 팔을 잡아올려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순간 깜박인 눈꺼풀 사이로 두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려 다소 맑아진 시야로 다시 한번 눈앞에 있는 상대를 확인한 미카도는 또다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틀림없이 미카도가 아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곳에 있을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외모와 목소리는 분명ㅡ
'ㅡ시즈오…씨?'
아니, 하지만 뭔가가 조금 다르다. 언뜻 보기에는 시즈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고있으면 뭔가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를 들자면 시즈오는 늘 바텐더 복장이지만 지금 보이는 사람은 가쿠란을 입고있었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푸른 빛 도는 선글라스도 보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습관처럼 피우고있던 담배도 물려있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방이 시즈오 본인보다도 한참은 어리게 보이는 소년이라는 것을 포함해, 미카도는 그가 단순히 시즈오를 닮은 사람이라고 결론내려버렸다. 두통에 시달리는 머리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미카도는 그 이상의 의문- 어째서 그가 가쿠란 차림인가, 어째서 주변의 풍경이 약간 변한 것인가, 눈 앞의 이 사람은 그럼 도대체 누구인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아픈거냐?"
대답 대신에 겨우 고개를 움찔거리자,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가 어딘가의 서랍을 열어 뒤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동안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간신히 숨만 쉬고있던 미카도는 문득 침대 아래로 보이는 바닥이 나무빛깔을 띄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다시 되돌아온 발소리가 미카도의 손바닥 위에 하얀 알약과 물컵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을 한입에 털어넣어 물과 함께 황급히 삼켜버린 뒤, 미카도는 삼킨 약이 목구멍을 약간 압박하며 아랫쪽으로 주르륵 흘러내려간 다음 자신을 도와준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쓴 약의 여운 때문인지 약간 말라붙은 혓바닥은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고마워, 도와줘서…."
"………됐어."
돌아온 대답은 짧고 어딘가 퉁명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쾌하게 느껴질 겨를조차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약이 그렇게 금방 효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기에 두통은 약을 삼킨 지금도 여전히 두개골을 저릿저릿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미카도가 저도 모르게 내쉰 한숨소리가 들린 것인지, 약을 건네준 소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누워있어. …좀 자면 나아질거야."
"으응…."
그 말에 맞춰 순순히 뒤로 드러눕자 또 한 차례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미카도는 질끈 눈을 감았고, 현기증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벼운 좌절과 짜증을 느끼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혈관은 고동에 맞춰 두근거리면서 규칙적인 두통을 일으키는 임무를 당분간은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옆자리를 돌아본 미카도는 그곳에 방금 전의 사람이 걸터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도 분명 용건이 있어서 여기로 온걸텐데 괜찮은걸까? 그런 의문이 든 미카도는 찾아오지 않는 잠을 뒤로 미뤄버린 뒤 하릴없이 앉아있는 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즈오와 닮은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던 이유도 있었다.
"저기…. 아파서 온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럼?"
소년은 금방 대답해주지 않았다. 미카도는 배게에 얼굴을 묻은 채 대답을 기다렸다. 양호실에 달려있는 시계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냈다. 미카도는 그제서야 여기에 시계가 달려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기에는 전자시계가 달려있는 줄 알았는데…? 순간적인 의문은 소년의 목소리에 가려져버렸다.
"귀찮아서."
"에…?"
"전부 귀찮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만보면 덤벼들어오기나 하고 말이지, 그 벼룩자식은 뒤에서 이죽거리기나 하고, 키시타니놈은 그놈대로 남의 신경이나 건드리고… 아, 젠장ㅡ 나는 그냥 조용히 살고싶은 것 뿐인데 제기랄귀찮아귀찮아귀찮아짜증나짜증나짜증나젠장젠장젠장제엔ㅡ장!!! 전부 꺼져버리기나 할 것이지!!"
어쩐지 역린을 건드린 모양인지,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바닥의 나무가 금이 가서 부서질 것 같은 그 기세에 바싹 겁에 질린 미카도가 입을 다물자, 뒤늦게 미카도의 존재를 깨달은 소년이 긴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앉아있는 몸에서 살짝 힘을 뺐다. 신기하게도 그의 어깨가 약간 늘어지자 방금 전의 염라대왕같은 모습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급격한 변화가 자신과 알고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미카도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소년은 시즈오가 줄어든 모습같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정말로 그럴리는 없겠지만.
"…미안, 아픈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아, 아니… 괜찮아, 응. 정말로."
미카도가 누워있는 채로 손사래를 치자 소년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미카도는 왠지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웃으면 이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마주 웃었다. 미소어린 침묵 속에서 침대에 기대앉아있던 소년이 몸을 일으켰다. 양호실의 바깥쪽으로 이동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신경쓴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미카도가 그것을 만류하려 했지만, 한 박자 뒤늦게 찾아온 나른한 약기운이 머리의 한쪽 구석을 차지해 혀를 움직이는 것을 일순 방해했다. 당혹감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치뜬 미카도의 시야 속에서 그 앞을 가로질러 지나간 소년이 빙글 미카도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미카도는 자신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저기, 이름이, 뭐야?"
소년은 조금 의외라는 눈으로 미카도를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가쿠란과 약간 어려보이는 얼굴이 미카도를 바라보았다.
"헤이와지마 시즈오."
소년은,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미카도는 경천동지할 만한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타일 대신에 나무가 깔린 바닥과 전자식 시계 대신에 아날로그식 시계가 걸린 양호실, 현재의 교복 대신 미카도가 중학교 시절에 입었던 가쿠란 차림의 소년은 헤이와지마 시즈오. 마치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풍경 속에서 미카도 혼자만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붕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미카도는 이런 말이 안되는 상황이 어떤 상태에서 일어나는지 알고있었다.
…이건 꿈이구나.
그 생각과 동시에 의식이 수면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두통은 사라져있었다. 미카도가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을 때에도 몸에는 나른한 잠기운의 조각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조금 이상한 꿈을 꾼 것같다고 생각하며, 미카도는 손으로 눈가를 부비려했다. 그순간 손에 쥐어져있던 종이쪽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렸다. 기억에는 없는 그 종이를 펼쳐본 미카도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화풀이해서 미안. 다음에 또 보자]
"…………어라?"
누가 남겼을까 하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이 아니었던걸까?
이게 남아있다는건, 내가 정말로 과거로 가버렸다는 의미?
어라, 어라, 어라ㅡ 하지만, 그건ㅡ 어라?
혼란에 빠진 머릿속에서,
미카도는 이 다음에 시즈오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양호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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