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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키다미카]내 곁에 있어줘

 

"에…?"
 
정말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전학이라니… 왜?"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전근 가신다잖니.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그치만… 그치만 난 여기가 좋은데!"
"고집부리지 말고."
 
소년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식탁에서 일어섰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저녁식탁이라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난데없는 폭탄선언을 들은 소년은 자신의 그릇을 옮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의식되지 않던 똑딱거리는 시계소리가 새삼스럽게 크게 들려왔다. 이끌리듯이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있는 것은 시계의 옆에 걸려있는 달력.
 
"…그럼, 언제 이사가는데?"
"이번주 금요일."
"금요일…."
 
오늘이 월요일 저녁이니까 타임리미트는 총 4일 정도 남아있는 셈이다. 과연 그동안 여기에 남아있었던 모든 추억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소년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의자에서 내려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식탁에 그릇들이 그대로 늘어져있음을 발견한 어머니는 심경이 복잡할 아들을 도로 불러내어 언제나와 같은 가벼운 잔소리를 들려주는 대신 아들의 그릇을 정리하며 조금 전 자식이 지은 표정과 다를 바 없는 밀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전학?!"
"응."
 
다음날 오후.
 
선생님에게 사정을 알린 뒤 전학날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주기를 부탁한 다음, 키다는 제일 먼저 미카도에게 자신의 전학소식을 알렸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다른 아이들까지 전학소식을 알아버리면 상대적으로 미카도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키다는 특유의 성격덕분에 학급 차원을 넘어 학년 차원으로 유명한 아이이므로, 이 정도 방어선을 미리 쳐두지 않으면 아마 남은 나날은 키다와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어 보려는 아이들의 기세에 떠밀려 감쪽같이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미카도와 차분하게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키다에게 있어 무척이나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열명의 다른 아이보다 미카도 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키다 마사오미라는 소년의 본심이니까. 
 
"어, 어째서?"
"아버지가 전근하신데. …나는 어리니까, 아버지를 따라가야지."
"그런…."
 
뜻밖의 소식을 들은 미카도의 얼굴에는 당황과 놀라움, 그리고 현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감정등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키다가 히죽 웃으면서 사실은 장난이었어- 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얼떨떨한 표정. 하지만 미카도의 실낱같은 기대와는 달리 키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동안 서서히 현실을 이해한듯 어두운 표정을 지어가던 미카도는 말없이 고개를 아랫쪽으로 푹 떨궜다. 방과후의 석양빛을 받은 그 모습은 굉장히 쓸쓸해보여서, 키다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미카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머리카락의 감촉에 손바닥 아랫쪽이 조금 간질간질해졌지만 언제나처럼 그 감각에 키득키득 웃을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미안."
"아냐, 괜찮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있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는 목소리.
키다는 가슴이 꽉 짓눌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미카도…."
 
작은 목소리에 대답은 없다. 대답을 할 수 있을 리도 없겠지. 미카도는 한참동안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키다도 한 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은 채 그저 미카도가 반응해주기를 기다렸다. 그저 기다리는 것은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미카도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만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미카도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키다의 손바닥은 아무것도 전해주지 못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윽고 하교를 재촉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미카도는 그 소리를 신호 삼듯이 천천히 키다의 손을 잡고 교실을 나섰다.

 

그 귀가길에서, 미카도는 마치 무언가를 하나하나 정리하듯이 키다와 자신이 자주 들렀던 장소의 이야기를 했다. 키다는 그 말을 들으며 이따금 맞장구를 쳐주었다. 여태껏 키다가 수다스럽게 떠들면 미카도가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귀가길에 밀집해있는 추억의 장소와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말하는 미카도의 목소리는 조금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때때로 약간 떨리기도 했지만 키다는 그냥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없이 느리게 움직이던 한 쌍의 발걸음은 이윽고 두 사람이 항상 헤어지던 갈림길 앞에서 완전히 멈춰섰고, 그 골목길의 중앙에 서있는 반사경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두 사람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제 곧 헤어질, 두 사람의 모습이.

 

"…저기, 키다군."
"응."
"그동안 고마웠어."
"………응."
"나 말야, 키다군이 없어져도 울지 않을게."
"……………."
"노력할테니까…."

 

마지막 말은 거의 한숨에 가깝다. 이제 미카도는 거의 제대로 말을 끊어내지도 못한 채 키다의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키다는 그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미카도는 자신이 전학을 가면서도 미카도를 걱정할까봐 일부러 의연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키다가 멀리서 자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키다와의 추억을 뼈저리게 그리워하며 눈물 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나는 네가 없어지더라도 괜찮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것은 분명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일 것이고, 키다는 당연히 그런 미카도의 모습을 안타까움 섞인 마음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가슴이 짓눌렸다.
그런데도, 어딘가가 석연치 않았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윽고 석양색 거리에 검은 그림자 한쌍이 서로 망설이듯 흔들리다 헤어졌다.

 

=

그 이후로 이어진 '일상'은, 지금까지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가 확연히 어긋나있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평소처럼 키다를 대했고, 유일하게 키다가 전학을 가게된다는 사실만을 알고있는 미카도 또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의 태도로 키다를 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것이 안겨주는 부담감이란 일개 초등학생이 능숙하게 감출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때문에 완전히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키다를 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미카도는 키다와 영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사정을 모르는 주변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키다군, 미카도랑 싸웠어?"
"안 싸웠어-"
"그치만 둘 요즘 이상해- 이야기도 별로 안 하고."
"……그런가?"

 

대충 얼버무리고, 키다는 자신의 옆을 흘끗 바라보았다. 언제나 미카도의 자리였던 키다의 옆자리에는 반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다른 아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미카도를 제일 먼저 데리고 나왔을텐데, 미카도는 수업 종이 치자마자 교실을 나가버렸고 키다는 키다대로 그런 미카도를 먼저 보내버리고는 다른 아이들과 귀가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아이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키다는 옆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충 넘겨들으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 날, 그 귀가길에서 헤어진 이후로 가슴 속에 엉겨붙은 응어리는 여전히 풀어지지 않았다. 전학 가기 직전까지 남은 이야기를 서로 풀어내도 모자랄 미카도와는 전학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왠지 모든 것이 제일 처음의 자신의 의도와는 헛도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되는 나날. 짧은 한숨을 내쉰 키다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량의 푸른빛이 남아있는 하늘에는 하얀 반쪽달이 떠있었다.


아아, 이제 여기서 저걸 보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당연하고도 서글픈 생각이 머릿 속을 짓눌렀다.

 

=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전학 소식을 알려주자 키다의 예상대로 학급 전체에 충격이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키다의 주변에 구름같이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거나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키다가 사라지고 나면 얼마나 섭섭하고 쓸쓸할지에 대해 깨알같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자신이 가지고있던 물건 중 가장 소중히 아끼던 것을 쥐어주거나 공책을 찢어 만든 즉석편지를 건네주는 아이도 있었다. 키다의 책상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한 전별선물로 순식간에 가득찼고, 그 숫자는 옆자리의 짝꿍이 기꺼이 빌려준 고양이 무늬 비닐가방에 그 선물을 모두 담아도 몇개가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에 미카도의 것은 없다.

키다는 슬쩍 미카도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이들 사이로 엿보이는 의자는 텅 비어있다.

어딘가 몸이 아픈걸까, 아니면 키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울 것 같아서 일부러 오지 않은걸까.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키다군, 잘 가-"

"앞으로도 잊지 않을게-"

 

이 학교에서 받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키다를 향해 작별인사를 던지고는 뿔뿔이 흩어진다. 이제야 겨우 해방되었다는 느낌에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던 키다는 직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깨닫고 아연해졌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자신의 전학에 아쉬워하며 건네는 작별인사에서 '해방되었다'라고?

 

'…뭐야 그게….'

 

자신은 이렇게나 냉정한 녀석이었던가-하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고개를 든 키다는 문득 이제 자신의 실내화를 선반에 넣어둘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 웃음을 지었다. 반쯤 수납되어있는 실내화를 끄집어내자 실내화가 빼곡히 들어가있는 신발장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게만드는 풍경에 키다가 한참을 제자리에 서있자 운동장과 복도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자신이 전학을 가버린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도, 아이들은 조금은 슬퍼할지언정 변함없이 웃고 떠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어디선가 열린 창문을 통해 불어들어오는 바람이 키다의 손끝을 싸하게 스쳐지나갔다. 키다의 마음 속 어딘가에도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미카도도, 자신이 사라진 후에 저 아이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걸까.

 

의식하지 못한 사이 악물린 이가 마찰음을 낸다.

키다는 손에 들린 가방을 단단히 그러쥔 채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교문을 달려나갔다.

 

이대로 미카도와 헤어질 수는 없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약속도 나누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사라지기는 싫다.

그렇게 되었다간, 나중에 우연히 만났을 때 또 그저 그렇게 헤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생각이 키다의 머릿 속을 채찍질해서, 키다는 한시라도 멈출수 없었다. 어깨에 매고있는 가방이 덜걱거리고 손에 쥔 가방은 금방이라도 어딘가를 향해 튕겨져나갈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실제로도 안에 들어있던 몇몇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멈춰서서 일일이 주울 시간은 없다. 무언가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계속 다리의 근육을 움직이며 달려간 키다는 그 속력 때문에 미카도의 집 앞에 도착한 뒤에도 바로 속도를 줄이지 못해 파란 대문을 지나치고 난 다음에서야 겨우 자신을 멈춰세울 수 있었다. 달리는 동안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일단 어떻게든 몸을 멈추자 전례없는 격렬한 운동으로 인한 후폭풍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마지막 주자였던 운동회에서조차 이렇게 뛰었던 적은 없었다. 키다는 일단 초인종을 누른 다음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집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키다도 얼굴을 알고있는, 미카도의 어머니였다.

 

"어머나… 무슨 일이니 키다군? 그렇게나 다급하게."

"미카도, 지금… 집에 있죠? 만나게 해주세요!"

 

여성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를 토해낸 키다는 쇠맛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초조하게 손을 주먹쥐었다. 이렇게 묻긴했지만 미카도가 미리 무어라고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런 기색이 보인다면 미카도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몰래라도 집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키다의 각오어린 예상와는 달리, 미카도의 어머니가 내뱉은 말은 키다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미카도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네?"

"중간에서 엇갈린 모양이구나. 들어와서 기다릴래?"

 

아니, 하지만.

하지만.

미카도는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뭐? 그게 정말이니?"

"오늘 하루동안 계속 자리는 비어있었어요!! 저는 아픈 모양이구나 하고…."

"말도 안돼! 오늘도 평소랑 똑같이 등교했는데…."

 

키다에게서 미카도의 결석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한동안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있었다. 미카도는 기본적으로 성실한 성격인데다 아직 초등학생이다. 그런 아이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학교를 빠졌다는 것은 제법 충격적인 일이겠지.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충격을 받은 키다도 하마터면 머릿 속이 텅 빌 뻔했지만 손에 쥐고있던 가방이 손을 파고드는 감각을 발판 삼아 다시금 현실로 관점을 되돌렸다.

 

미카도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과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갔다.

이 두 가지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두가지였다.

 

①자기 스스로 학교를 빼먹고 다른 곳에 갔다.

②타인에 의해 어딘가로 납치되었다.

 

전자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어떻지?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키다는 혼란스런 표정의 미카도 어머니를 뒤로 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득달같이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어딘지 알 수 없었고 미카도가 어디에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미카도를 찾을 수 있지? 무작정 뛰어다니기만 해서야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닫기에는 다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미카도의 예상치 못한 실종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탓이리라. 

 

주변을 돌아보며 달리던 키다는 어쩌면 미카도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자신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위치였지만 키다가 잠깐 폭주한 탓에 멀리 돌아온 격이 되고말았다. 하지만 짐을 정리한 박스 투성이인 자신의 집에도 미카도는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부모님도 미카도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 대체 어디로 간거지? 키다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집안에 가방과 종이가방을 내팽개쳐두고는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등 뒤에서 부모님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

 

서점.

없었다.

 

문방구.

없었다.

 

자주 가던 공터.

없었다.

 

학교.

없었다.

 

놀이터.

없었다.

 

다시 한번 미카도의 집.

이번에도 없었다.

 

"…대체, 어디 간거야…"

 

자신의 집 문간에 반쯤 기대앉아, 키다는 가쁜 숨을 내쉬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생각나는 모든 장소를 찾아 돌아다녀봤지만 번번히 자신의 기대를 배신당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혹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겨버린 것은 아닐까.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발이 꼬여버릴 뻔했다. 그것은 미카도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조금 전 들렀을 때에 경찰에게 연락을 했지만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더라는 말을 분개 섞인 목소리로 토로하며 그녀 자신도 슬리퍼를 신고 분연히 집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녀라고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까. 키다는 오늘따라 영 부정적인 자신을 패고싶다는 생각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은 밤부터 아침 나절까지 이어진 비 덕분에 울분이 터질 정도로 맑았다.

그러고보면 오는 길에 무지개가 걸려있어서 아이들이 조금 소란스러웠었지.

그것도 자신이 전학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전부 사라져버렸지만.

 

 

"………아."

 

퍼뜩 깨닫는다.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언젠가의 대화.

듣고 흘려버리는 그런 수준의,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야기.

 

하지만, 어쩌면.

 

맥이 빠져있던 몸을 다시 끌어올리고, 키다는 똑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딘가를 확인해듯이 천천히 거리를 걸어가다 어느 순간 목적지를 정한듯이 발걸음을 빨리 했다. 발소리가 울려퍼지는 골목길 너머에는 초록빛 산이 웅크리고 있었다.

 

=

 

비는 아침 나절에 그쳤지만 산등성이에는 아직 습기가 남아있었다. 발치에 스치는 풀끝의 물방울이 신발을 타고 스며들어서 양말이 금새 축축해졌다. 키다도 몇 번인가 운동삼아 오른 적이 있는 고즈넉한 산은 경사가 완만하긴 하지만 군데군데 험한 길이 있어서 정상까지 오르고 있다보면 금새 숨이 가빠졌다. 하지만 오늘은 적어도 거기까지 오를 필요는 없었다. 키다는 어느정도의 흙길을 오른 뒤 마을 쪽으로 빼꼼히 튀어나와 있는 산등성이쪽으로 걸어갔다. 등산길에 잠시 쉬어가는 용도로 이용되는 너른 평지에는 이미 누군가가 와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는 키다의 발치에서 풀들이 밟히며 사박이는 소리를 냈다.

 

"미카도."

 

이름을 불린 소년의 어깨가 흠칫 흔들린다. 키다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한구석에 웅크려앉아있는 미카도에게로 다가갔다. 키다는 미카도의 정면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웅크려진 무릎 아래에 숨겨진 미카도의 손을 잡아 빼냈다. 흠칫 떨리는 손가락 끝은 차갑고, 지긋이 잡고있자니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키다는 그 손을 오랫동안 잡고있었다. 멀리서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두번, 세번.

 

"…무지개."

 

네번째 울음소리에 섞여, 미카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발견하자마자 뛰어왔는데, 도중에 사라져버렸어."

"응. 금방 사라져버렸지."

"그래서 못 찾았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찾으려고 했어?"

 

잡고있는 손끝이 경련한다. 키다는 조용히 손에 힘을 주었다.

떨리는 마음을 격려하듯이, 떨어져있는 마음에게 말을 걸듯이.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어."

 

"그래서, 무지개를 찾아내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이들 사이에서 퍼져있는 소문. 어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이야기.

[무지개가 뜬 날에 무지개의 다리가 서있는 위치를 찾아가 무지개를 만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도중에 무지개가 사라지면 소원은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못 찾았어. …미안, 키다군."

"……어째서 사과하는거야."

"그치만."

 

그때까지 굳어있던 미카도의 손가락이 꼬물거리며 키다의 손을 맞잡았다.

느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인 손짓.

 

"나, 이렇게 생각했었어."

 

"이제와서, 이런 생각 해봤자, 소용은 없겠지만…."

 

"만약에, 무지개를 찾아낸다면."

 

"늦지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키다군이랑 나,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

 

미카도의 얼마 되지 않는 길이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온다. 하지만 키다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미카도의 손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무언가가, 자신의 마음 속에 강렬하게 박혀들면서 무척이나 차갑고 무거우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운 감정이 흘러나오는 상처을 새겨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서는 상황에 조금 어울리지 않는 감정도 섞여있었다. 예를 들자면, 미카도는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ㅡ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느껴진 기묘한 환희라거나 미카도가 이만큼 자신을 의지하고 있었다ㅡ는 걸 확인하게 되자 태어난 뒤틀린 뿌듯함 같은 것.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당황하면서도, 키다는 미카도의 손을 놓지않았다. …놓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산에서 저물어가는 태양은 거리보다 빠른 석양을 선사했다. 붉게 물드는 공기가 머리를 숙이고있는 미카도의 빰 언저리와 키다의 발치에 내려앉아 천천히 사태를 관망했다. 마치 미카도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것 같다. 그렇게만 생각하던 키다는 어느 순간 미카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발견하고 몸을 긴장시켰다. 서로 맞잡고있는 미카도의 손에서부터 비통함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 키다군."

"…왜 그래?"

"미안, 한계야."

 

무엇이? 라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키다는 자신에게 매달리듯이 달라붙어 울음을 터뜨리는 미카도의 등을 남은 한손으로 꽉 부여잡은 채 서로 맞잡고있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지난 며칠간 속으로만 삭여졌을 미카도의 오열이 귓가에서 하염없이 터져나와 석양빛 잔디위로 떨어져내렸다. 정신을 차리고보면 자신도 어느사이엔가 미카도에게 사과하고있었다. 서로의 마음 속에서 꽉 눌려져있던 감정들이 터져나와 허공에서 한데 뒤섞이다가 사라져간다.

 

지켜보던 석양이 서서히 밤의 색을 띄어갔다.

 

=

 

『이야, 그런 일도 있었지-』

【…잘도 그런 일을 기억하는구나】

『오늘 무지개를 봐서 말야, 문득 너의 퓨어한 티어가 떠올랐다는거지!!』

【이상한 소리 하지마. 나가버린다?】

『매정해!! 너는 너무 매정해졌어 미카도!! 시골의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든거냐? 바이러스? 원인 불명의 괴바이러스냐?!』

『너는 이미 레벨 5의 상태인거냐?!』

【그런거 없어. 바보 키다.】

『뭐- 그건 그렇고 말이지』

【?】

『너, 고등학교는 정했냐?』

【일단,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싶은데. 키다군은 어때?】

『나는 정했어. 라이라 학원이라고, 이래저래 좋은 학교야.』

【정말? 어쩐지 부러운데-】

『…저기, 미카도.』

【왜 그래?】

 

 

『ㅡ너도, 와라.』

 

 

=

 

(네가 필요해.)

그 말을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어느쪽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