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스포일러 주의)*********************************
존잘님이 쓰실 카즈윈+밀레 의 첫 문장은 <나는 화를 내는 방법도, 욕망을 분출하는 방법도 몰랐다.>로 시작해 주세요!
존잘님이 쓰신 카즈윈+밀레 의 마지막 문장은 <곧장 겨울이라도 올 듯 쏟아지는 폭우에 밖에 나갈 일도 없어졌다.>로 끝내 주세요!
존잘님이 쓰신 카즈윈+밀레 의 마지막 문장은 <이제야 묻는다. 너는 잘 지내고 있지? 그래야 돼. 그게 좋아.>로 끝내 주세요!
*******************************(G20 스포일러 주의)*********************************
나는 화를 내는 방법도, 욕망을 분출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런 것은 언제나 다난들의 몫이었다. 물론 나도 감정을 느끼는 존재인 이상 울컥이는 기분이나 무엇인가에 혹하는 기분 정도는 느낀다. 하지만 그 기분은 언제나 마음을 약간 흔들어 놓는데 그칠 뿐이었다. 흡사 바람과 같이 한 번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들. …어쩌면 흘려보내는 데에 익숙해진 탓인지도 몰랐다.
그래서인가? 다난들이 무언가를 원하며 부탁해오면 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 함께 싸워주거나 원하는 것을 구해다줄 뿐이다. 딱히 뭔가 댓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이 원하고 분노하고 감정을 보이는 것을 바라볼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댓가가 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자가 전시회에 참가해 작품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래서 카즈윈이 사도화한 피네를 되돌리기 위해 협력해달라고 했을 때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네의 내면세계에서도 그와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피네를 구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평소에는 나른해보이기만 하던 카즈윈이 피네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평소와 달라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란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은, 그가 쓰러진 나를 신성력으로 되살려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이었다.
보통의 투아하 데 다난들은 밀레시안이 쓰러졌다고 해서 굳이 그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 밀레시안에게는 밀레시안 나름의 회복과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려니와, 상황이 전투 중일 경우에는 자기들의 몸을 챙기기에도 바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공간에서 체력을 잃고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나는 또 나오를 만나게 되겠구나 하는 가벼운 체념에 빠져있었다. 헌데 카즈윈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멀어지던 의식과 몸이 제대로 이어지며 지칠대로 지쳐있던 몸에 활력이 돌아온 것이다.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의문이었다. 내가 뭔갈 착각한 건가? 투아하 데 다난이 밀레시안을 일부러 회복시킬리가 없는데?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피네의 내면세계로 들어온 직후, 카즈윈이 몇 번인가 내뱉었던 짧은 말들. 밀레시안인 나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되뇌임.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데 설마 진심이었던 건가. 대답은 이후로도 몇 번인가 더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나를 카즈윈이 신속하게 회복시킴으로써 확실시 되었다.
용암지대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때 카즈윈이 나른하고 귀찮음이 심한 성격과는 별개로 피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내가 쓰러지든 말든 그녀의 오염된 사념과 사도를 물리치는 데에만 집중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뜻하지 않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애초에 다난에게 직접적으로 목숨이 구해질 거라고 생각한 적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설령 카즈윈의 행동이 피네와의 교감을 수행하고 있는 내가 도중에 쓰러져 기껏 구축한 세계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는 계산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깐의 생각은 아벨린으로 위장한 브릴루엔의 함정에 그대로 걸려드는 바람에 그 이상 깊이 생각할 사이도 없이 전장으로 내던져졌다. 다행히 벨바스트에서 함정을 눈치챈 톨비쉬가 달려와준 덕에 적들을 물리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카즈윈까지 그 장소에 나타난 것은 의외였다. 피네를 겨우 되찾았다고는 해도 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해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후로 선지자들과 완성형 제바흐들을 상대하는 일에 쫓기는 바람에 타이밍은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내 휘하의 특별기사단을 관리하는 동안 아발론 게이트를 지키는 알터와 아벨린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낼 수 있을 뿐이다. 톨비쉬와 피네, 카즈윈은 다른 임무로 바쁜 모양인지 얼굴은 커녕 편지를 나누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이따금 그 내면세계에서의 일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그에게 제법 신뢰받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진다. 그래서 오지 않는 나를 걱정해서-라는 건 순전히 내 독단적인 표현이지만-브릴루엔이 있는 곳까지 나를 쫓아왔다던가.
하긴 생각해보면 그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 번 믿어보겠다는 말을 했던가.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대련 신청을 하는가 싶더니 좀처럼 결착이 나지 않는 전투를 거듭하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던 카즈윈을 떠올리던 나는 빗줄기로 가득 찬 아발론 게이트 위를 가로지르는 수리부엉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비 사이를 용케 뚫고 나에게 날아온 수리부엉이의 발치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교신용 연락통이 매달려있었다. 연신 몸을 흔들며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는 수리부엉이를 조금 진정시킨 뒤, 나는 통에 담긴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보낸 사람은 뜻밖에도 피네였다.
통의 용량상 짧게 쓸 수 밖에 없는 편지에는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데다 요즘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해 글이라도 남긴다는 서문과 함께 그날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과 그녀가 했던 어떤 말에 대한 사죄, 그리고 몸 건강히 잘 지내시라는 말이 동글동글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굳이 이렇게 편지로 보내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그렇게 피네의 편지를 찬찬히 읽던 나는 작별인사가 적힌 쪽지 뒤로 질감이 다른 종이 한 장이 더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네의 편지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에 크기도 얼마 되지 않는 그것은 쪽지에 가까웠다.
어차피 곧장 겨울이라도 올 듯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밖에 나갈 일도 거의 없어졌다. 나는 우선 펜과 종이를 빌리기 위해 슈안을 찾았다. 마구간 한쪽에서 부서진 문을 수리하느라 끙끙대고 있던 슈안은 잉크와 펜, 종이라면 자신의 숙소에 여분이 남아있을 거라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마 비가 그칠 무렵에는 답장을 매단 수리 부엉이를 날려보낼 수 있으리라. 나는 한쪽 손가락에 따로 끼워두었던 작은 쪽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기껏해야 한 두 글자만 적혀있는게 아닌가 했는데 예상 외로 꽤 긴 글이 적혀있었다.
<이제야 묻는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 그래야 돼. 그게 좋아.>
꽤나 카즈윈다운 문장이었다. 나는 쪽지와 편지를 갈무리해 넣고는 비오는 하늘을 날아오느라 젖어버린 수리 부엉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걸 사이좋게 보내는 걸 보면 그쪽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수리 부엉이는 눈을 껌뻑이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2차 창작 > 마비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즈밀레]맞은편 빈 의자가 채워질 때까지 (0) | 2017.12.14 |
---|---|
[카즈밀레]모든 다난은 별이 지기 전에 눈을 감는다 (0) | 2017.12.14 |
[라트리아즈]세계중심론 (0) | 2017.12.14 |
[남실정X밀레시안]EYE PATCH (0) | 2017.12.14 |
[남실정X밀레시안]깃털 휘날리는 밤 (0) | 2017.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