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주밀레 설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G20 약스포 있습니다.
-인연의 시작은 일단 서로 마주보는 것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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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문이 열린 이후 관찰대상인 밀레시안에게 변화가 일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불사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왼쪽 눈가에 뚜렷하게 남은 흉터 자국이 관찰되었으며, 그녀가 홀로 있을 때마다 작은 막대에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인다는 보고였다. 얼굴에 생겼다는 흉터도 흉터였지만 알반 기사단이 특히 주목한 것은 막대기에 불을 붙여 피운다는 행위였다. 만약 거기에 뒷골목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좋지 못한 무언가가 섞여들어가 있다면 밀레시안은 퍽 유쾌하지 못한 길을 걸으리라.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밀레시안 한 명의 타락이 아닌 에린 전체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다.
며칠간 꽤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기사단원들은 밤낮없이 밀레시안을 관찰했고, 그녀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한 결과 그 막대가 이리아 대륙 코르 마을 원주민들이 재배하는 담배 잎에 밀레시안 본인이 키우는 허브 몇 가지를 말려 섞은 자작 담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사이 이멘 마하 주점이나 뒷골목, 혹은 타라 왕성 외곽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건전치 못한 현장'에 그녀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실은 없었다. 알반 기사단이 약물에 취한 밀레시안에게 검을 겨눌 일은 없어진 셈이었다.
이어진 보고에 따르면 밀레시안은 하루에 서너 개피의 담배를 피웠고 그것도 시간이나 재료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그냥 걸렀다. 대신 한번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연기를 빨아들이고 뱉는 동작을 제외하면 그 자리에 돌이 되어 굳어버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고 했다. 그러다 담배를 전부 피우면 다시 채비를 갖춘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카즈윈은 그런 보고를 몇 번 받았으며 어느 날은 멀리서나마 직접 그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밀레시안은 대개 센마이 평원의 폐허 한 곳을 적당히 골라 담배를 피웠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는 마족과의 전쟁에서 두 번의 승리를 거머쥐었다고는 하나 이제와선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센마이 펑원답게 사위는 무척이나 조용했고 서늘한 바람은 밀레시안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흔들었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밀레시안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는 여러 마리의 곰들은 그녀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다가도 이내 육중한 몸을 느리게 돌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 평원 자체가 그녀가 짊어진 어떤 무게를 알아보고는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는 것 같았다. 도중에 센마이 평원 중앙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은 소녀와 개에게 한 줌의 관심을 보이는 일도 없이 오랜 시간을 들여 세 개피의 담배를 피운 밀레시안은 그때까지 남은 재를 작은 종이에 쓸어담아 땅에 파묻어 버리고는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마침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보다가도 갈색 모자 위로 비를 그대로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즈윈은 밀레시안이 방금 전까지 있던 폐허 쪽으로 다가가 그녀가 그리 했던 것 처럼 같은 자리에 똑같이 기대서보았다. 여기저기가 부서진 건물의 잔해과 흙바닥이 물기를 머금어 축축하고 차가워지고 있었다. 먼 옛날에는 승리의 영광으로 빛났으나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에서 빗물이 고인 물웅덩이에 비춰진 나무 그림자가 기괴한 형태로 흔들렸다.
카즈윈의 마음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덩어리들이 생겨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카즈윈은 그걸 전부 잘라내버리는 대신 울퉁불퉁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신중하게 깍아내려 몇 가지 형태의 질문을 만들었다. 물론 알반 기사단의 방침상 그가 직접적으로 밀레시안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밀레시안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상을 했고 매번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 상대가 없는 체스판 앞에서 이리저리 말을 옮기며 빈 자리의 기색을 살피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얼마 뒤 선지자들이 만들어냈을 황금빛 시신과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적, 그리고 그들의 불온한 움직임과 관련한 명령이 내려왔다. 각 조는 조장과 조원을 서로 분리하여 조장급은 서로 연계하여 새로 나타난 적에 대한 대비를, 남은 조원들은 조장 없이 별도의 임무를 맡아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신성 기술의 연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조장과 조원의 3인 구성을 분리한다는 것도 이례적이건만 그 명령에는 조장급 임무에 밀레시안이 협력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이전에 왕성을 습격한 사도와의 전투에서 밀레시안이 신성력을 사용하여 사도를 물리쳤다는 소문은 굳이 마을을 탐문할 것까지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전설이 되어있었지만, 고작 그런 유명도때문에 외부인을 덜컥 조장급 임무에 끼워넣을 상부가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이번에도' 톨비쉬의 옹호가 있었으리란 점은 명백했다. 모범적이고 정의로우며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엘베드 조의 기사. 그동안 꽤나 유연한 행보를 보였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나오다니.
약간의 의혹을 느끼는 것과 자신이 오랫동안 다듬어왔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직접 들을 기회가 왔음을 깨닫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다듬어 온 질문들은 다른 조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던질 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밀레시안 또한 다른 이의 듣는 귀가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되도록 자신과 밀레시안 둘만 남은 상황에서, 최대한 꾸밈 없는 대답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조장들과 합류하기 전에 밀레시안만을 분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카즈윈은 머릿 속에서 몇 가지 장소를 떠올리고 상황을 가정한 끝에 최종적으로 탈틴의 한 장소를 선택했다. 다른 조장들이나 피네, 그리고 밀레시안에게는 첫 만남에서부터 수고를 끼치게 되겠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는 일부러 드문드문 자신의 흔적을 남기곤 인적이 드문 계곡 틈새에 자리잡았다. 밀레시안의 가죽 부츠가 풀을 밟는 익숙한 소리가 다가온 것은 해가 한참 기울어질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발소리가 자신의 바로 근처에서 멈추는 것을 확인한 카즈윈은 그녀가 정말로 혼자 온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조금 더 오래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가까이에서 보는 밀레시안의 눈가에는 과연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있던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 기분으로 밀레시안에게 자신을 소개한 뒤, 카즈윈은 그녀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밀레시안은 잠시 그를 응시하다 당혹한 기색 조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제야 빈 자리가 채워졌군.
카즈윈은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허리춤의 검을 고쳐 쥐었다.
밀레시안의 등 뒤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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