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헤마르가 솔직하게 대답하자 자료집을 잔뜩 펼쳐놓고 한참을 설명하던 갈색 머리의 연구원이 쓴 웃음을 지었다.
"하긴 아직 가정 단계인 비행공정이론은 좀 일렀나? 이게 우리 사이에선 엄청 대단한 화제인데."
"우리라고 묶어 말하지 마. 나까지 네 무식한 가정에 찬성한 것 같잖아."
"야, 이 이론의 어디가 무식하단 거야!"
아무래도 자료실에서 만난 연구원이 열정적으로 보여준 이론들은 아직 종이 위에서 구상만 된 단계일 뿐, 그 이상으로 진척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최신식 비행선을 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 의견이라도 구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미안하게도, 헤마르가 알고 있는 비행에 대한 지식은 하늘에 연을 얼마나 높이 또 오래 날릴 수 있는가 하는 정도다. 그 사실을 말해주자, 수염이 까칠하게 난 연구원이 아무렇지 않게 턱을 문질렀다.
"흐음, 연이라. 전통있는 인류의 비행발명품이지. 비행선 연구가 막 시작될 즈음에는 거대한 연에 사람을 매달아 날리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할 정도야."
"연으로 사람을 날려? 어떻게?"
"산이나 계곡에는 바람이 빠르게 불잖아? 계곡 아래에선 얼레 역할이 대기하고, 위에선 무지막지하게 큰 연에 사람을 고정시킨 다음 큰 바람이 부는 타이밍에 사람 쪽에서 빠르게 달리면서 연이 바람을 받게 하는거야. 그러고는 절벽으로 뛰어내려서 나는거지. 내려올 땐 끈을 당겨 내려오고."
설명을 하다 남은 여백에 그려진 그림은 꽤나 구체적이다. 어째 연에 고정된 사람의 이목구비가 갈색머리 연구원을 닮아있는 것 같은데…라고 헤마르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림을 구경하고 있던 연구원의 손이 수염 덥수룩한 동료 연구원의 등에 찰싹 내려꽂혔다.
"난 저렇게 허술하게 준비하지 않거든!"
화내는게 그 부분이었다.
"아무튼, 하늘을 난다는건 우리 인간에게 그만큼 오래된 숙원이란거야."
연구원은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인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움찔거리는걸 보아하니 마냥 괜찮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헤마르는 작게 키득키득 웃고선, 일부러 몸을 뒤로 길게 젖히며 기지개를 폈다.
"차라리 새로 태어났더라면 쉽게 날 수 있었을텐데~"
"아니, 그건 아니지."
뜻밖에도 진지한 대답이 돌아와 고개를 들어보면 두 연구원 모두 아까와는 다른 얼굴이 되어있었다.
"확실히 새였다면 간단하게 날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비행을 추구하는건 단순히 하늘을 날기 위해서가 아냐. 눈에만 보일 뿐 손에 닿지도 않던 세계에 지식과 기술의 힘으로 날아올라, 더 높은 곳을 탐험하기 위해서지."
"새는 바다를 탐험하려 하지 않고, 물고기도 하늘을 조사하지는 않잖아? 이런 연구는 인간이기에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야. 미지의 영역을 지식의 힘으로 밝히는 거지!"
지식의 힘이라.
확실히 하늘로 연을 날릴 때와 비행선을 타고 직접 하늘을 날 때의 감각은 확연히 달랐다. 듣기로는 처음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탐사 중간에 비행선을 조립했다던데. 그때 같이 비행선을 만들었었더라면 여기 와서도 뭔가 기분이 달랐을까?
"그치만 탐험을 하지 않고 여기서 비행선 연구만 하면 아쉽지 않아?"
"괜찮아, 우리가 만든 비행선이 잘 날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니, 나는 안 괜찮은데? 내 이론으로 만든 비행선에 척 하고 타서 출항할거라고!"
그걸로 두 사람은 또 언쟁을 나누기 시작했다. 분명 서로 사이가 좋은지라 아낌없이 말을 내뱉는 거겠지. 그들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몰래 집어온 자료 한 장은 역시나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했으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덕분인지 약간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아, 역시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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