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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탐정의 속삭임(2014)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에 대해서.

그 아이 말입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문난 문제아였으니까요. 보통 중학교 선생들은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초등학교에서 뭘 어쨌는지 알 방도가 없어요. 기껏해야 학생기록부나 뒤적이는 정도일까?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해선 입학 전부터 온 학교에 소문이 파다했죠. 초등학교 무렵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로 유명했으니까요. 같은 반 친구에게 의자를 휘둘렀다느니, 선생에게 책상을 던졌다느니, 교장실 유리창을 전부 깼다느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쪽이 꽤나 지독한 협박꾼이어서 교묘하게 빠져나왔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2월에 그 아이가 이 학교로 배정되었을 때부터 온 교사들이 술렁술렁거렸어요. 우린 이제 큰일났다, 그 골칫덩이를 어떻게 할거냐-하고.

그때 나섰던 것이 음악과목을 맡고있던 교사입니다. 음,의외인가요. 사실 그 학생이 아니더라도 문제학생은 늘 있어왔고, 그녀는 말하자면- 문제아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수업을 맡고 있었습니다. 뭐, 관리라고 해봐야 음악을 들려주고 악기를 연주하게 하는 어린애 장난 같은 수준이었지만, 그게 뜻밖에도 그 학생에게는 맞았던 모양입니다. 그 사납던 학생이 음악선생만 보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선생님 선생님하고 따랐으니까요.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따로 놀기만 해도 좋지 않으니까 특수 학급 시간 외에는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는 또 누구 하나 잘못 걸렸다간 작살낼 분위기였다는 모양이에요. 그 교사는 아이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인간관계에 서투르다고 했습니다만... 글쎄, 그거야 불쌍하지만 그래도 일단 사람 사이에 섞이려는 노력은 해야죠.

...그 교사요? 지금은 없습니다. 아뇨 전근이나 퇴직이 아니라... 이걸 어쩌나. 좀 불미스러운 이야기지만, 자살했습니다. 그녀는 교사이면서도 "탐정"이었거든요. 아마 "탐정"일을 하던 와중에 추리에 실패해서 누구를 죽게 했다던가요. 아무 말도 없이 학교를 나오지 않아 사람 여럿 신경쓰이게 하더니 어느 날  아파트에서 스스로 뛰어내려버렸어요. 즉사였답니다. 하필 시험 기간이었던데다, 학생들사이에 소문이 쫙 퍼져서 뒷처리나 분위기 정리하는데 꽤 고생했죠. 

아... 이런. 그 학생 얘기였죠. 음, 그렇네요. 그녀가 죽은건 그 학생을 맡은 해의 가을 쯤이었습니다. 그토록 잘 따랐으니까 이번에는 그녀의 죽음에 폭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른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제외하면... 딱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음악 수업만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결코 들어가려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과목도 아니니까 다들 터치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졸업했죠. ...뭔가 다른 이야깃거리요? 흠, 아뇨. 없습니다. 그 아이는 그녀의 장례식장에도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죠. 뭐랄까. 선생이라는 사람이 학생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정한 아이였습니다.

=

정해진 건반을 정해진 박자에 따라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으로 연주한 곡을 타고 비행기가 날았다. 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하교시간을 넘겼다. 악보를 읽는 법은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선생님이 치는 곡의 음색을 기억해서 그대로 두드렸다.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 더 연습했다.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런 말은 해주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말을, 반짝인다는 말을, 함께라는 말과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 전까지는 받아쓰기용 연습장에나 적어두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생기를 얻었다. 단언컨데 그때 나는 당신을 "좋아했다." 다른 누구보다 "좋아했다." 교사이면서 탐정인 당신을, 아버지와 같으면서도 다른 당신을 "동경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시절이기도 했다.

...사건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실패에 휘말려서 사람이 죽었다고도 했다.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일전에 받았던 탐정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고 무작정 당신의 집을 찾아갔다. 낡은 아파트였고 인터폰은 고장나있었다. 문을 한참 두드리고나서야 당신이 나왔다. 쉬어버린 목소리와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학교에는 언제 오시는건가요? 당신은 대답했다. 이제 돌아가지 않을거야. 나는. 왜죠? 당신은. 더 이상 갈 이유가 없으니까. 나. 제가 있잖아요. 당신은 체인 걸린 문 너머로.

네가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추리에 실패해버렸어. 사랑하던 사람도 죽어버렸어. 탐정로서도, 연인으로서도 나는 전부 실패한거야. 문을 열고있는 왼손에는 새끼와 약지가 통째로 없다. 그곳에서 언제나 가만히 빛나고 있던 반지. 그래도, 선생님은 아직... 선생님이시잖아요. 당신이 웃었다. 너, 내 말을 하나도 이해못했구나. 진실을 쫓는데도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데도 실패한 이 상황에서,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랑 말도 제대로 못 섞는 학생 따위와 피아노나 뚱땅거리며 놀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애초에 내가 네 엄마도 뭣도 아닌데 왜 계속 너를 책임져야 해? 중학생쯤 됐으면 알아서 행동할 때도 됐잖아! 이 넌덜머리나는 계집애야! 

문은 닫혔다. 복도 위쪽에는 소화기가 있고 맞은편 집 대문에는 작은 수레가 있었다. 철로 되어있긴 하지만 낡은 문이다. 그걸 써서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듯이 그렇게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처음에는 문 앞에 앉아 기다렸지만 이내 민폐라는 소리를 듣고 비상계단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입구가 보이는 자리였다. 몸을 웅크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있었다. 날은 추웠지만 추위에는 익숙했다. 몇 시간을 그러고 있었다. 당신은 보이지 않았고 날이 저물어 밤이 왔다. 웅크린 채로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동안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여자가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리가 어렴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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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어제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경비원들이 임시방편으로 덮어놓은 수건 아래쪽에 붉은색이 흥건했다. 내가 계단에 앉아있던 위치로 따지자면 직선 거리로 스무 걸음...쯤 떨어진 자리였다.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경비원 한 명이 다가와 몸을 일으켜주려는 것을 뿌리쳤다. 당신은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겨우 스무 걸음 떨어진 자리였는데. 문만 부수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차라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 팔다리를 부러뜨려놓았다면. 그래서 살려놓았다면.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방식이었고 당신에게만은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은 죽었다.  

...나는 스무 걸음 뒤에 있었는데...

생기를 얻었던 언어들은 피를 뒤집어쓰고 모조리 말라죽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몇 번째인가의 '어머니'가 이미 도망간 뒤였다. 저 사람처럼, 그 사람처럼, 분명 당신에게도 나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겠지. 이젠 종이에 불과한 '명함'은 갈갈이 찢겨 바람에 날려갔다.

다만 당신이 깜빡 잊고 음악실에 놔두고 갔던 안경만은 부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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