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엔딩 이후의 전개입니다. 그다지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루키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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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오토와 루이는 그 일자에 맞춰 휴가를 냈다. 사업장의 다른 누구도 아닌 영업소장이 직접 내는 휴가였기에 거부 의사를 밝히는 직원은 없었다. 요 한 달간 그 휴가 일정에 맞춰 진행된 모든 중요한 일들이 마무리된 차였고, 애초에 정기휴가도 제대로 쓰지 않는 영업소장이 드물게 직장에 나오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주일 정도는 더 휴식을 취하셔도 된다고요! 코테츠의 넉살 좋은 말에 오토와 루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오래 비우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휴가가 시작된 화요일 아침. 오토와 루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맡 위로 비스듬하게, 맑은 날 특유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 풍경에 감탄하는 일 없이, 안경을 집어 들고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는 단출한 세간이 놓여있고… 그리고 아무도 없다. 비틀린 원을 그리던 걸음이 멈춘다. 루이는 텅 빈 집안에서 옅은 숨을 들이마시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간단한 식사를 한 뒤에는 집 안을 청소한다. 루이는 작은 먼지떨이와 걸레를 들고 집안 이곳저곳의 먼지를 털고 닦는 세심한 작업을 반복했다. 물론 창문은 활짝 열어두었다. 현관문도 열어두었다. 누군가가 근처를 서성인다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혹여 몰래 안을 살펴본다면 안에 누가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도록.
청소는 점심 무렵에 끝났다. 오토와 루이는 먼지떨이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더러워진 걸레를 깨끗이 빨았다. 회색으로 변한 물이 하수구를 따라 흘러간다. 분명 비누로 깨끗이 씻었는데도 손끝에는 약간의 먼지 냄새가 남았다. 루이는 그걸 만지작거리다 다시 한번 손을 씻었다. 천천히, 신중하게.
집안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놓여있다. 오토와 루이는 푸른 물뿌리개를 준비한 뒤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물뿌리개 안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면서 가볍던 무게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늘은 행운목과 산세베리아에게 물을 주어야 하지. 알로카시아의 잎은 닦아주어야 하고, 뱅갈 고무나무의 흙 상태를 확인하고…. 할 일을 조용히 복기하는 사이 물뿌리개가 묵직해졌다. 루이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물뿌리개를 들었다.
식물을 관리하는 것은 퍽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이 다른 누군가가 남긴 식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토와 루이는 문득 제 앞에 놓인 화분 하나의 잎사귀를 응시한다. 그가 돌본지도 7년이 되어가는 포인세티아의 붉은 빛이 선명했다.
입술이 벌어진다.
다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
화요일은 집 안을 청소하고 관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수요일에는 모자란 생필품을 채워 넣고 약간 손이 가는 요리를 해두었다. 하루 이틀 정도 식더라도 데우면 금세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은 금방 만든 음식을 먹여주고 싶지만, 모든 상황이 그렇게 때를 맞춰 착착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잖은가. 루이는 선풍기나 에어컨의 작동 상태가 불량하지는 않은지, 인터폰의 접속이 정상적인지 등등을 확인한 다음 옷장을 열고 유카타 한 벌을 꺼냈다. 무늬 없는 감색의 남성용 유타카.
그 소맷자락을 천천히 쥐어본다.
입을 주인이 없는 옷자락이 납작하게 구겨졌다.
루이는 그 옷자락을 세세하게 다림질한 다음 벽걸이형 옷걸이에 잘 걸어두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감색 옷감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누군가를 손짓해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날은 집안에서 식사를 했다. 목욕을 하고 몸을 닦고 나와 방의 불을 끄고 잠들기까지, 오토와 루이는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집 앞 도로를 달려가는 차량의 엔진 소리 정도가 들렸을 뿐이다.
잠잠한 밤이 지나갔다.
*
7월 7일이 되었다. 오토와 루이는 유카타와 핸드폰을 챙긴 다음 조금 이른 오후에 집을 나섰다. 가장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인근의 상점가였다. 더운 여름 기운을 날려버릴 정도의 기세로 연이어 장사를 준비하는 장사꾼들의 목소리와 벌써 들뜬 아이들의 환호성이 뒤섞인다. 목을 타고 미지근한 땀이 흘러내렸다.
오토와 루이는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노점들을 구경하지 않았다. 대신에 상점가의 모퉁이나 어두운 구석,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휴식처 사이를 살펴보았다. 노점상의 뒤편에는 벽을 등지고 온갖 짐과 도구들이 쌓여있어 사람이 있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던 탓이다. 아직 이른 시각, 어둡고 한적한 곳만 골라서 살펴보는 남자를 상점가의 사람들이 조금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 금방 잊어버렸다. 그에게는 누군가를 위협할만한 거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은 탓이다. 점점이 이어지는 걸음 사이로 신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따라붙었다.
…불꽃에 소원을 빌었어, 너와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몇 년 전 유명한 가수와 아티스트가 콜라보레이션하면서 만들었다는 영화 주제곡은 그 해 오리콘 차트를 휩쓸다시피 하고는 매년 칠월 칠석마다 전국 각지에서 재생되는 유명곡이 되었다. 어떤 운명적 사건으로 칠월 칠석에만 만날 수 있는 애틋한 연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또한 상당한 호평이었다고 한다. 물론 오토와 루이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딱히 로맨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근방의 상점가는 세 군데다. 오토와 루이는 그 세 군데를 빠짐없이 모두 돌았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중간에 그를 알아차리고 올해도 수고가 많으시다며 인사를 건네오는 상인들도 있었다. 루이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는 어떤 사람을 보지 못 했느냐고 물었다. (저와 비슷한 키에, 머리는 금발… 어쩌면 갈색이고, 척 봐도 호리호리한 남성입니다. 이 사진을 봐주세요.)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머리 속을 곰곰이 뒤져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올해도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구만요. 그렇게 말하며 상품을 몇 개 건네주는 손길을, 루이는 담담히 거절했다.
신사 앞 광장으로 향할 무렵에는 하늘이 이미 어둑어둑했다. 이곳은 매년 칠석 축젯날의 저녁 8시마다 열리는 불꽃놀이가 하이라이트였기에, 계단참에서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만 루이는 대로변을 향하지 않고, 계단을 살짝 벗어나면 나오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은 십 년이 훌쩍 넘었을 정도로 먼 옛날에, 하나뿐인 친우와 실컷 축제 속을 헤매다가 찾은 좁은 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길은, 때때로 마을 장난꾸러기들의 모험 루트로 이용되는 듯했다.
그 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풍경이 탁 트인 장소가 나온다. 이른바 숨겨진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여기에서 보는 불꽃놀이의 풍경이 다른 어디서 보는 것보다 화려하고 멋지단 것을 안 뒤로 두 사람은 언제나 여기서 불꽃을 보았고….
구석에 누군가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오토와 루이는 누가 제 머리채를 통째로 뽑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흐트러진 갈색 머리에 잎사귀나 잔가지가 붙어 몹시 지저분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발소리를 들었는지 울음소리가 멈췄다. 웅크려진 몸이 천천히 펴진다. 루이는 그걸 숨도 들이쉬지 못하고 쳐다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정도로 퉁퉁 부은 눈을 한 아이가 루이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도."
"도와주세요…."
목이 쉴 대로 쉬어 거칠어진 목소리였다. 루이는 천천히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어 앉고는 작은 몸을 단단히 안아 들었다. 사람과 체온이 닿자 겨우 안도했는지 아이는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 고립되었었던 것일까, 날은 여름밤인데 아이의 몸은 싸늘했다.
보호자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축제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느라 거의 사색이 되어있던 부부는 루이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못하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려서 이대로 찾지 못하면 어쩌나 정말로 걱정했어요, 다친 데도 없다니 정말로 은인이세요! 처음에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부부는 아이를 찾은 안도감 때문인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이내 자신들이 무언가 보답할 일이 없는지 물어왔다. 루이는 그걸 거절하지 않고 품에 넣어두었던 사진을 꺼냈다. 혹시 이 남자를 본 적 있으신가요? 부부는 그야말로 사진에 구멍을 낼 기세로 쳐다보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찾느라 계속 정신이 없었는지라, 통 기억이 안 나네요."
무리도 아니다. 루이도 그들에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후일 꼭 보답을 하겠다는 부부에게 자신이 업무상 들고 다니는 명함을 건넨 뒤 미아보호소를 떠났다. 시간은 8시에 가까워지는지, 신사 앞 광장은 이제 불꽃놀이를 구경하려는 인파들로 빈틈없이 채워져서 꼼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루이는 광장을 이루는 대로변을 살짝 빠져나와, 드높은 침엽수림으로 이루어져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걸었다. 불꽃놀이를 보기에는 최악의 장소였지만, 역으로 불꽃놀이를 보는 사람들을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펑, 하고 첫 번째 불꽃이 펼쳐진다. 모든 사람들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고 때로는 핸드폰을 치켜드는 가운데 오토와 루이는 군중의 면면들을 눈으로 훑었다. 눈이 빠질 정도로 바라볼 필요는 없었다. 그가 찾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 비해 키가 훤칠하게 높은 데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불꽃놀이가 끝났다.
…이 불꽃이 지더라도 너를 잊지 않을 테니까…
축제의 파장은 밀물 때를 맞이한 파도가 밀려 나가는 것처럼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루이는 사람들이 신사를 떠나려면 반드시 거쳐 갈 수 밖에 없는 입구에 오래도록 버티고 선 채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축제 음식이나 자신들이 먹은 쓰레기, 장난감 뽑기 등에서 얻은 가면이나 전리품 등을 한가득 안아 들고 떠드는 이들의 얼굴은 더없는 활기에 차 있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곡조를 흥얼거리는 목소리도 여럿 있었다. 루이는 그걸 따라 부르지 않았다.
뺨에 와닿는 공기는 덥다. 오토와 루이는 자신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
"루이, 무슨 소원을 빌었어?"
너는?
"나? 나는 별거 없어."
너는 무엇을 빌었어?
"……."
들려줘, 하루키.
"아, 정말. 알았어! 말해주면 되잖아!"
네가 바라는 것을.
"…앞으로도… 루이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썼어."
나도 이루어주고 싶어.
"시시하지?"
시시하지 않아.
"잊어버려도 돼."
잊지 않아.
"잊어버려."
하루키.
"루이."
나는 너를.
"이제 기다리지 마."
*
아토 하루키가 지고천 연구소로 떠났을 때, 루이는 그가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연구소가 하루 만에 폭파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을 때에도 어딘가에 살아있으리라 여겼다. 성인 남성의 실종 신고는 거의 수사에 돌입하는 일이 없음을 알면서도 신고를 했던 것도 어딘가에서 상처를 입었거나 기억을 잃었을지 모를 하루키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종이란 단어는 삶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루이가 그걸 알게 된 것은 이번에 발견된 미연고 시체를 확인해보겠느냐는 전화를 받은 날의 일이었다.
안치실은 싸늘했고, 숨결마저 얼어붙을 것 같았고, 얼굴을 가린 천이 걷히는 순간에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고.
"하루키가 아닙니다."
그런 말을 7년간 반복해왔다.
희망은 무엇보다 큰 고문이었으나 동시에 유일한 빛이었다. 오토와 루이는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아토 하루키가 살던 집을 자신이 매입하여 그대로 들어가 살았다. 친우의 세간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필요 최소한도의 옷과 생필품을 챙겨 들어간 삶은 원치 않는 일상이 되어 천천히 말라붙었다. 혹시나 하루키가 근처를 지나가면 금방 알 수 있도록, 현관 앞 명패에는 전 주인의 이름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채워 넣었다. 어느 날 갑작스레 이게 대체 뭔데?! 하고 뛰어들 친우를 조금은 기대하면서.
잠들 때에는 현관문 앞에 메모를 붙여두었다.
행여 집을 찾아온 하루키가 힘없이 떠나지 않도록.
집의 전화번호도 핸드폰 번호도 바꾸지 않았다.
행여 겨우 닿은 실마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런데도 시간은 막을 수 없었다. 하루키의 실종신고를 넣은 지 7년째가 되던 올해 4월. 오토와 루이는 제 친우가 실종선언을 받고 실질적인 사망자로 처리되리란 통보를 받았다. 그건 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규칙이었다.
아아, 하지만.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축제가 완전히 파한 것은 10시 무렵이었는데 돌아왔을 때에는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오토와 루이는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려다, 문 앞에 자신이 붙여둔 메모를 보았다. 행여 비에 젖거나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앞뒤로 코팅하여 테이프로 단단히 붙인 종이에 쓰인 내용은 간결했다.
『아토 하루키에게.
금방 돌아올 테니 기다려줘.
-오토와 루이.』
방은 어둡다. 루이는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자신이 집에서 챙겨온 것 중 가장 사적인 물건을 꺼내 들었다. 작은 케이스가 열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윤곽이 희미한 불빛을 받아 빛난다. 만약 하루키가 무사히 2015년의 생일을 맞이했더라면 선물과 함께 건넬 예정이었던 반지는 여전히 한 점 얼룩 없이 조금 따뜻한 금빛을 띄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루이는 아직 하루키를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이번에야말로 그 반지를 건네고 말 것이므로.
칠석이 저물었다.
누구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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