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 하루키 + 세오도아 리들 / 세포신곡 크리스마스 합작 참가글
크리스마스 합작 주소 : https://5iilqstqpkttkcr.wixsite.com/coe-christmas
합작 주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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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납치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세오도아 리들은 흐릿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떨구지 않는 하늘과, 먼 산의 풍경과, 그 사이에 마치 웅크리듯이 자리 잡은 건물의 윤곽을 차례대로 시야에 담았다.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낙엽은 너덜너덜하고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은 날카롭지 않은 대신 몹시 차갑고 눅눅했다.
내려가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았다. 그나마 산중에 차량이나 사람이 지나간 듯한 흔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던 탓이다. 이 단체가 (물론 확증은 없었지만, 이 정도의 규모라면 단독범행은 될 수 없다고 세오도아는 추측했다) 추적자를 미리 알아차리기 위해 여기저기 CCTV를 설치했다면 그것도 피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10분 정도 움직였을 무렵, 세오도아는 신음했다. 레이지나 애니였다면 지금쯤 곧장 돌파해서 입구에 도착했을 텐데. 물론 나름대로 각오는 다지고 온 산행이지만 역시 난관은 난관이다. 조금 빨리 준비해오는 편이 좋았으려나. 아냐, 그래도 약정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짐을 추스르는 세오도아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입김이 새어나왔다가 스러졌다.
건물 벽을 기어 올라가는 담장이 덩굴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공기 중의 습도가 더더욱 진해져 있었다. 역시 비가 내리려나. 며칠동안 감금당한 상태에서 빗줄기를 맞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좋은 경험이 아닐 텐데. 깊이 눌러쓴 모자를 고쳐 쓰던 세오도아는 건물의 뒷문이 열리는 걸 확인하고 굵은 나무둥치 사이에 빠르게 몸을 숨겼다. 참으로 감질나게도 문을 연 장본인은 곧장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웠다. 세오도아는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 어떤 것을 깨달았다.
담장이 덩굴이 문 틈새에서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누군가가 밖으로 나온다. 자박, 하는 발소리가 선명했다. 세오도아는 그 시점에서 은신 같은 건 집어치우고 곧바로 뒷문을 향해 다가갔다. 회백색 하늘을 올려다보며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가만히 서있던 이가 그 인기척을 눈치 채고 고개를 내렸다. 살풍경한 배경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금빛 머리카락이 무거운 바람에 휩쓸려 흔들렸다.
“세오도아 씨.”
기온이 낮은 날에는 공연히 목소리가 깊이 울리곤 한다.
“안녕, 하루키. 몸은 어때?”
“괜찮아요. 좀 피곤하네요.”
“좀 피곤하다고? 그거 꼼짝도 못하겠다는 거잖아.”
세오도아의 넉살에 하루키가 희미하게 웃는다. 문 너머의 복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흘끗 등 뒤를 확인하는 시선을 눈치 챘는지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의 사람들은 다 기절했어요.”
“수가 많지 않았나봐?”
“열 댓 명 정도.”
“적은 수가 아니잖아.”
“기절하면 다 똑같죠.”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는가 싶더니 콜록, 하는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세오도아는 핏자국 가득한 하루키의 옷을 바라보다가 등에 매고 있던 짐을 내렸다.
“다 기절했다면 잠시 숨 좀 돌려도 되겠네.”
“아, 묘하게 짐이 많다 싶더라니 혹시?”
세오도아는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웃어보였다.
“물 마실래?”
* * *
숲 속에서 돌아온 아토 하루키는 꼬박 잠만 잤다. 중간에 깨어도 물만 마시고 다시 방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아무래도 거기서 이래저래 많이 겪었던 모양이지. 전문 탐정은 아닌 세오도아라지만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세오도아는 하루키를 깨우지 않고 자질구레한 잡일들을 처리했다. 이를테면 집안의 먼지를 턴다던가,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식빵을 구워서 잼과 함께 먹는다던가, 집안 곳곳에 놓인 식물들에게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하나하나 잎을 닦아준다던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키가 말을 건 것은 약 사흘만의 일이었다.
“우와, 깜짝 놀랐네.”
“죄송합니다. 엄청 집중하고 계시는 것 같길래.”
“이제 좀 일어설만해?”
“덕분에요.”
“난 전~혀 한 게 없는데.”
“담배 안 피우셨잖아요.”
“…….”
“안 피우셨죠?”
하루키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세오도아는 항복한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보였다.
“어제 1층 베란다 쪽에서 잠깐 피웠습니다.”
“흡연꾼.”
“냉정하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
“네, 죄송합니다. 실내로 들어가는 문은 닫아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가요. 선처하지요.”
단번에 용서해준다고 말해주지 않는 점이 하루키답다고 말해야 하는 부분일까. 세오도아가 뺨을 긁적이는 사이, 천천히 다가온 하루키가 아까까지 헝겊으로 정성스럽게 잎이 닦이고 있던 스킨답서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이 제법 다정했다. 마치 어떤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오늘 며칠인가요?”
“어제가 22일이었으니까~ 23일이네.”
“12월 23일?”
“응. 이브의 딱 하루 전이야.”
“아슬아슬했네요.”
“아하하. 안되면 내가 편의점에서 케이크라도 사올까 생각했었어.”
“환전했어요?”
“앗.”
“일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유로를 받아도 곤란할 뿐이에요.”
“그러게. 그 부분을 잊고 있었어. 하루키는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데, 뭔가 준비한 게 있어?”
“있죠.”
“뭔데?”
“크리스마스 케이크요.”
11월 달부터 미리 예약했어요. 조금은 뿌듯한 어조로 말하는 하루키의 얼굴에는 상처도 피멍도 없다. 세오도아는 그걸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선물은?”
하루키의 얼굴이 잠깐 굳는다. 세오도아는 하루키와 연락이 끊어진 일정을 대충 계산해보았다. 다소 넉넉하게 계산해 보더라도 하루키가 평범한 일상을 보냈을 마지막 시간은 12월 13일 전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에는 딱 알맞은 시기지만, 안타깝게도 하루키는 불의의 습격으로 그 시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괜찮아요, 전 오리진이니까.”
“우와~ 능력 남용~.”
아토 하루키에게는 식물에 관해서는 무적에 가까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 * *
시간이 흘러서 세상 만물이 변하는 것 같아도 의외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토 하루키는 그걸 오토와 루이가 마지막 숨결을 내쉬고 5년이 지난 뒤에 알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천천히 세상을 떠나고 이소이 레이지와 이소이 사네미츠가 천수를 다했을 때에도 그리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언젠가 다시 만나자. (물론 아버지에게는 상당히 험악한 어조로 전달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에는 애니도 츠바이크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 참, 곤란하네. 늘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LDL의 리더는 그런 말을 하며 웃었다. 말 한 마디만 잘못 닿으면 산산히 부서질 것 같은 표정으로.
하여, 남은 두 사람은 약정을 세웠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한 번은 연락을 취할 것. 연락을 취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면 따로 말해줄 것. 특히 기념일에는 입에 발린 말이라도 나눌 것. 별다른 언질 없이 연락이 끊어진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찾으러 가겠음.
사유.
모처럼 비슷한 체질끼리 만났는데 삭막하게 지낼 순 없잖아요?
그러고 보면 하루키가 제일 처음 그런 말을 꺼낸 게 언제였더라. 시간이 늦은 탓에 선물은 다음날 아침 일찍 준비하기로 하고 손님방에서 다시금 하룻밤을 지낸 24일 아침. 세오도아 리들은 이제 익숙해진 천장의 나이테 무늬를 바라보며 새삼스런 생각에 잠겼다. 레이지랑 사네미츠가 아직 살아있었던 때던가, 아니면 그… 이후였던가?
상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루키가 거실로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 하루키.”
“잘 주무셨나요, 세오도아 씨.”
“응, 일본에 올 때마다 매번 신세지는 곳이니까.”
“그건 다행이네요. 아침식사로 스프랑 빵을 준비할 건데 괜찮으세요?”
“식빵은 내가 다 먹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냉동 생지와 오븐이 생겼답니다.”
짧은 웃음. 뚜껑을 딴 생수를 냄비에 따르는 소리. 인덕션의 전원이 들어가는 소리. 물이 조금씩 끓어오르는 소리. 냉장고의 문이 열렸다 닫히고, 냉동 생지가 알맞은 처치를 거쳐 오븐 안으로 들어간다. 하루키가 부엌일을 손님에게는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탓에, 세오도아는 자신이 하루키의 부재를 깨닫고 일본까지 날아오기의 과정과 그 사이에 있던 소소한 발견들을 말하며 잡담을 이어나갔다.
“아, 오븐이 있으면 파이도 만들 수 있겠네.”
“네, 세오도아 씨의 특기는 애플 파이였던가요.”
“재료만 있다면야.”
“그럼 오후에는 장을 보러 갈까요.”
어차피 케이크를 찾으러 나가야 하고요. 하루키가 스프를 끓이고 노릇한 빵을 굽는 동안 최소한의 예의로 식기를 준비하고 따뜻한 우유를 끓이던 세오도아는 그 말에 조금 손끝을 멈췄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접시의 각도를 조금 조절했다.
“그렇네. 하루키가 중간에 쓰러지는 건 아닌지도 봐야하고~.”
“죄송한데 저 이제 그렇게 약골 아니거든요?”
식사가 끝난 것은 오전 10시 반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이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며 만류하는 하루키를 대신해 간단히 그릇을 씻고 식기세척기에 넣은 세오도아는 별 생각 없이 거실로 발길을 옮겼다가 어느 화분 앞에 조용히 서있는 아토 하루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손끝에 가느다란 보라색 꽃잎이 살랑이고 있었다.
“…….”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식물에게 향하는 사과의 말일 것이리라고, 세오도아는 추측한다. 단순한 지레짐작은 아니다. 그 한쪽 손에 들려있는 원예용 손가위 때문이다.
삭, 하고 연약한 것이 날카롭게 잘린다.
“…아, 끝나셨나요.”
“응. 요즘은 기계가 있어서 편하네.”
“정말이에요.”
하루키는 조금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식물의 줄기를 살짝 쓰다듬었다. 지난 세월동안 쌓인 반복적 경험을 통해 그 화분에서 자라는 것이 반혼초임을 알고 있는 세오도아는, 충분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에 가볍게 물었다.
“사네미츠의 몫?”
“네.”
가느다란 손가락이 반혼초 외에도 하얀 데이지 꽃과 푸른 제비꽃을 솜씨 좋게 섞어 작은 꽃다발을 만든다. 전날 능력 남용이라고 놀렸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숙련된 손길이었다. 분명 언젠가에는 꽃줄기를 엮는 게 서툴러서 조화로 몇 번이고 연습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던 기분이 드는데.
분명 익숙해진 거겠지.
언제 준비했는지 그럴듯한 포장지로 작은 줄기들을 감싸고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리본으로 꽃다발을 완성한다. 세오도아가 그릇을 씻는 동안 또 다른 사람의 몫을 먼저 완성했는지, 테이블 한쪽에는 붉은 제라늄과 하얀 야생화가 알맞게 섞인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그게 누구의 몫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조합이 늘 바뀌네.”
세오도아가 건넨 말에
“꽤 재미있거든요.”
하루키는 담담하게 답했다.
* * *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는 과연 거창했고 온갖 일루미네이션과 시즌 장식으로 가득하여 마치 이대로 영영 이브를 축하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하루키가 케이크를 미리 주문했다는 가게는 그런 들뜬 분위기의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아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인 덕인지 내부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아마 다들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붐빌 거예요. 일찍 와서 다행이네요. 가게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온 하루키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세오도아는 하늘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제법 쾌청한 날씨였다.
“눈은 안 오려나 보네.”
“이런 크리스마스 이브도 있는 법이죠. 일기예보 상으로는 내일 모레까지 맑을 거래요.”
케이크 가게에 들리기 전 마트에서 생필품과 요리 재료들을 사들인 덕에 자동차 뒷좌석에는 속이 든든하게 채워진 장바구니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 건 또 언제 챙겨본거야? 세오도아는 농처럼 말을 건네고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수석에서는 케이크 상자를 안고 올라탄 하루키가 이미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전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세오도아가 운전하는 하루키의 차는 붉은 신호에 걸렸다. 여기로 올 때의 경험에 의거에 추측한다면 다음 청신호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오도아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몸의 긴장을 약간 풀고 좌석에 기댔다. 옆에서 하루키가 작게 하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해?”
“별 것 아니에요.”
“하루키는 매번 꾹꾹 참으니까 걱정이란 말이지.”
“보통 성인의 인내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냐, 하루키는 너무 참는다고.”
닫힌 창문 너머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의 음이 흘러들어온다.
하루키는 짧게 웃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루키.”
“네.”
“슬퍼?”
신호는 바뀌지 않는다.
“…때때로 모든 일이 꿈같이 느껴져요.”
“그렇구나.”
“가끔은 보고 싶고요.”
“응.”
“매일 그립죠.”
“과연.”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요. 그래서 버틸 수 있고요.”
장바구니에는 빵과 야채를 비롯한 약간의 식재료. 거기에 밀가루와 사과와 시나몬과 버터가 들어있고
“세오도아 씨는.”
바지락조개와 파스타 면과 화이트 와인과
“어떤가요?”
코코아 가루가 들어있다.
“……………………………아, 마도.”
“아마도?”
“괜찮아, 나는.”
“늘?”
“…….”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가끔은.”
“네.”
“후회해.”
“무엇을요?”
“많은 것을.”
푸른 하늘에서 기적같이 무언가가 내리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이라는 듯이 드디어 신호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아아, 정말. 왜 이런 괜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거야.”
“그거야 뭐. 매번 꾹꾹 참는 것 같으셔서 걱정되는 바람에.”
“……나 참.”
하루키는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정말 완고하고 성가시구나! 화풀이처럼 뱉은 말에 옆자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이제야 아셨나요?
* * *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요.”
“뭘?”
“감사인사요.”
장을 보고 돌아와, 나름의 상차림을 준비하고 요리를 진행하는 동안 창 밖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어느덧 어둑해져 있었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애플파이를 지켜보느라 여념이 없던 세오도아가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하루키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뒤였다.
“구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세오도아 씨가 아니었으면 거기서 탈출하는데 정말 애먹었을 거예요.”
“……마음은 알겠으니까 이제 고개 들어줄래. 뭔가 민망해.”
“감사인사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오토와 씨에게서?”
“할머니에게서요.”
두 사람 모두 대식가인 편은 아니었기에 음식은 간소하게 준비되었다. 그래도 봉골레 파스타,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갓 구워낸 빵은 상당히 테이블을 차지해서, 하루키는 불단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어디에 둘지 상당히 고심해야 했다. 애쓰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던 세오도아는 하루키가 가져온 또 하나의 액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예전에 LDL분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어요.”
“어, 엑. 거짓말~. 난 전혀 몰랐는데.”
“그야 세오도아 씨는 사진 얘기만 나오면 정색하고 도망가시잖아요.”
“그랬긴 하지만…. 우왁, 진짜 옛날 때잖아.”
“반갑죠?”
“……그러게.”
사진 속 면면들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보다 조금 더 젊고, 환하게 웃고 있다. 세오도아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그 액자의 테두리를 매만지는 사이 오븐에서 요리가 완성됐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애플파이는 조금 식히는 편이 좋겠죠?”
“응. 그건 내가 옮길 테니까 하루키는 앉아있어.”
“케이크는 자정에 오픈할게요.”
“크리스마스 케이크니까 당연하지.”
저녁 8시 즈음에 시작된 저녁식사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무리되었다. 그 남은 시간, 하루키와 세오도아는 앨범에 남은 사진이나 외장하드 메모리에 보관된 영상 같은 것을 함께 재생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것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얼핏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있었다. 우와, 시간 빠르네. 하루키 안 피곤해? 세오도아의 질문에 하루키가 웃고는 대답했다. 선물은 줘야죠.
이소이 가의 가족사진 앞에 꽃다발과 와인 한 잔이 나란히 놓였다. LDL과 하루키가 찍은 사진 앞에는 세오도아가 직접 술을 따랐다. 애니나 츠바이크는 낯간지러운 이벤트를 싫어하지만 술은 엄청 좋아하니 괜찮을 거야. 그런 말과 함께.
자정을 3분 남긴 시점에서 밖으로 나온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아담한 사이즈에 딸기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엄~청 크리스마스 느낌이네.”
“시즌 상품이니 개성은 확실해야죠.”
“하루키는 이상한 데에서 단호하다니까.”
“아, 방금 25일로 넘어갔어요.”
“벌써? 음, 메리 크리스마스. 애니, 츠바이크.”
“메리 크리스마스, 레이지. …그리고 망할 아버지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발화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고는, 이내 쑥스러움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정작 세오도아 씨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 못했네요.”
“됐어~ 나도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걸.”
“그런가요. 그럼… 원하는 사진을 한 장 드릴까요?”
“저기, 그렇게 되면 나는 하루키에게 줄 게 없잖아.”
“제 목숨을 구해준 답례라고 치세요.”
그리고 디지털 데이터 같은 건 외장 하드에 있어서 얼마든지 보내드릴 수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는 하루키의 등쌀에 밀려 세오도아는 방금까지 웃으면서 보았던 앨범이나 갤러리들을 조금 다른 기분으로 바라보았고.
“음… 이걸로 할까.”
“예전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사진이네요.”
“응. 나도 이때 사진이 있긴 하지만 이 각도는 없거든.”
“그럼, 드릴게요.”
“고마워 하루키. 그리고 좀 새삼스럽지만.”
“새삼스럽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메리 크리스마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화이트 와인이 담긴 잔이 맞부딪쳐 짤랑인다.
눈도 비도 내리지 않은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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