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세포신곡

[논커플링]트위터 조각글 모음 04

#01 트친이_주는_문장으로_연성하기 

 

1.

[문을 열어보니 아방수가 있었다.] 응, 이건 틀림없이 아방수我方樹지. 혼자서 생각하는 아토 하루키 앞에서, 방 침대에 앉아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던 오리진 알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온다. 슬리퍼를 신은 작은 발이 나무 깔린 마룻바닥을 작게 스치는 소리가 났다.

 

"왜 그래? 아토 하루키. 생각이 복잡해 보이는데."

"으음~ 그냥. 네가 이렇게 따로 움직이는 걸 보자니 신기해서."

 

오리진 알파는 가볍게 웃는다. 이소이 하루키의 모습을 한 그것의 머리 끝은 미미한 연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네 눈에만 보이는 일종의 가상현실 같은 거야.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증강현실, A.I같은 거랄까."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신기하네."

"현대 지식은 꽤 유용한 것도 있거든."

"그럼 오늘은 뭘 읽었어?"

 

아토 하루키가 오리진 알파의 키에 맞춰 무릎을 굽힌다. 시선이 맞게 된 알파가 가볍게 웃었다.

 

"『보유인자론』"

 

2.

[사람을 구성하는 것 중 제일 무거운 것은 이름이라고 했었나.] 과연 그런 말이 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며 알파는 하루키에게 『보유인자론』의 개요를 설명해주었다. 창작이니 작법이니 하는 것과는 인연이 없이 살아온 아토 하루키에게는 조금 알쏭달쏭한 이야기였지만, 이해가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세상의 상징, 기호가 담긴 이름은 그와 연관된 기호의 존재와 서로 얽히게 된다는 의미지 않은가.

 

"이를테면 무지개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라면, 주인공들의 이름에 색깔이 들어간다는 식인건가?"

"응, 비슷한 이야기가 되겠지."

"하지만 「조작적 인자 부여」같은건 좀 이해하기가 어렵네. 개명은 그렇다쳐도 세계의 정의를 안다는게 좀 뜬구름 잡는 소리같아."

"의외로 간단할지도 몰라. 이 세계는 희극인가 비극인가.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는건 어때?"

"너는 그걸 믿는거야?"

"흥미롭잖아."

 

그런가. 아토 하루키는 새삼스레 오리진 알파를 바라본다. 하기사 이소이 하루키가 그대로 자라났더라면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떨까. 결국 자신은 이소이 하루키를 무한하게 닮은 오리진 알파의 파생이지 결코 이소이 하루키 본인은 아니다. 하루키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끝낸 뒤 사과 조각을 입에 밀어넣으며 그 생각을 삼켰다.

 

"기왕이면 희극이 좋겠네. 모두가 웃는 이야기가 좋잖아."

 

…….

………….

…………………?

 

"그래."

 

뭐지. 방금 이상하게 침묵이 길었던 것 같은데.

의아해하는 하루키 앞에서 알파가 빙긋 웃었다.

 

3.

[써내려온 것을 지우개로 아무리 지운다고 한들 흔적은 남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아토 하루키는 아예 지워야 할 흔적이 있다면 찢어버리거나 여건이 안 될 경우 삼키는 쪽을 택했다. 그 메모를 그런 식으로 처분하지 않은 것은, 그게 타인에게 보여질 경우를 아예 상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메모 자체에 별다른 가치가 없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하루키…."

 

헌데.

 

"이건 뭐야…?"

 

이소이 사네미츠가 그 메모를 보고 저토록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는 것은 아토 하루키의 예상 외였다. 뭐라고 쏘아붙이거나 농담을 했다간 그대로 우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안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이지는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느라 지금 이 자리에는 없다. 하루키는 지금 이 상황에 놓인 것이 오롯이 자신과 사네미츠 뿐임을 인식했다.

 

"뭐냐뇨. 보다시피 그냥 내 이름의 한자를 파자破字해본 겁니다만."

"그, 그렇지만."

 

사네미츠의 떨리는 손이 메모의 일부를 가리킨다. 하루키는 거기에 적혀있는 인자因子란 단어를 알아보았다. 설마 저걸 보고 쇼크를 받은건가? 하루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보유인자론』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거기 재밌는 이론이 있어서 조금 따라해 봤어요. 그러고보면 작가 이름이「하라다 무테이」던데. 우리 집안과 관련있나요?"

"…………."

 

사네미츠가 입을 벌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토 하루키는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그대로 기절해서 큰 소리를 내며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02 첫번째로_멘션온_캐릭터가_두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상황에서_세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대사를_한다

 

대학을 졸업한 아이바 이부키가 나고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아이바의 숙부인 아이바 유스케가 지고천 연구소라는 신흥종교에 빠져 활개칠대로 활개치다가 의문사한 장소다. 친척일가 중에서는 이부키가 유스케에게 홀린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부키는 다정한 성격이었고 부모님의 말에 함부로 이견을 제시하지도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물론 도쿄에는 인프라도 일자리도 많이 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무 연고도 없는 나고야로 내려가는 것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현실을 도피하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을 본거지로 두는 오토와 탐정 사무소에 입사한 이상 나고야 지점으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계가 역전되어 도쿄가 본점 나고야가 지소가 되어있지만, 언젠가 그곳에 본점 못지 않은 규모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울 것이다…. 신입사원의 성장 포부같은 말을 친척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해줬는지는 알기 어렵다. 어쨌건 지난한 대립 끝에 부모님은 이부키의 손을 들어주었다.

 

네가 허투른 생각을 할 애는 아니지.

 

부동산 계약을 끝내고 본가로 돌아가던 길, 아버지는 운전석에서 긴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그 나이에 전학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기는 하다만.

 

"확실히 아이바 군의 이름을 봤을 때는 눈이 튀어나오도록 놀랐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오토와 탐정 사무소의 조사원 아토 하루키다. 현재는 아이바 이부키의 사수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의뢰인을 만나고 의뢰를 받아들일지 어떨지 소장의 의견을 묻기 위해 돌아가는 과정에서, 하루키의 권유로 작은 커피숍에 들른 참이었다.

 

"괜찮은거야? 몇 번이고 들은 말이겠지만, 도쿄 카미토모 대학생이라면 그곳에서 취업해도 좋았을텐데."

"음. 내가 이러고 싶다고 정했으니까. 몸으로 직접 부딪쳐보니 사무직에 가까운건 의외였다만."

"아하하."

 

카페는 조용하지만 따스한 분위기가 맴돈다. 다음에는 좀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러 방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이부키."

"아직은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끼네. 하지만 괜찮을거야."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부드럽고 씁쓸한 맛이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대가 나를 이끌어줄테니까 말야. 그렇지? 하루키 공."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어엿한 한 사람의 탐정이 되어줘."

"물론이지."

 

한담이 흘러간다.

하늘이 맑은 오후 4시였다.

 

*

 

[아이바]가 [아토 하루키]의 상황에서 [우츠기] 대사를 한다.

 

 

#03 진단메이커 소재

오늘 Mikyel의 연성 챌린지!

 

등장인물 : 「오토와 루이」

추천 연성 문장(택일) : 

A.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B. 『그 사람은 용서하겠지. 하지만 난 아냐!』

C.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shindanmaker #세오연

https://kr.shindanmaker.com/1064385

 

하루키가 웃길 바랐다. 하루키가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길 바랐다. 따라서 결과값을 두고보면 현재의 아토 하루키는 루이의 이상향에 알맞다고 할 수 있었으나.

 

"루-이."

 

장난스레 불려서 돌아보면 피투성이 옷의 하루키가 있다. 오토와 루이는 아주 조금, 제 옷을 대신 입혀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아토 하루키가 아닌 다른 무엇이기 때문이다. 천진난만하고 무구하고 순진한 무언가.

 

"배고프지? 삼각김밥 찾아왔어."

"네 몫은?"

"응?"

"네 몫은 어디 있느냐고 묻고있다."

 

하루키는 눈을 깜박이다가 웃었다.

 

"난 밥 안 먹어도 괜찮아."

"반 나눠먹기로 하지."

"내 말 듣고있어?"

 

다가가서, 두 뺨을 손으로 감싼다. 하루키의 붉은 눈동자가 의외의 것을 본 것처럼 커졌다. 손가락을 움직인다. 뺨에 붙어있던 피얼룩이 살짝 번졌다.

 

"너는 제때 끼니를 챙겨먹어야 해."

 

하루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멈추지 않아서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루이의 손끝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오토와 루이는 가벼운 한숨을 쉰다.

 

"당연한 부분을 잊는 버릇만큼은 정말 닮았군."

"....후후. 다음엔 사과라도 찾아와야겠네."

 

양 손바닥안에 즐거워하는 표정이 번진다. 오토와 루이는 그것을 「괴롭다」로 인식했다.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04

 

나나미 이즈는 걸을 수 있다. 당연하다. 두 다리가 멀쩡히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보폭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즈에게는 저보다 두 배 정도는 더 큰 운명공동체가 존재한다. 말인즉슨 미스미와 나란히 걸으면 이즈가 조금씩 뒤쳐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는 뜻이다. (하루노 시온은 보통 주인들보다 앞서 걸어가지 않는다) 이즈가 그와 손을 잡고 걷거나 안겨가는 것도 아니어서 격차는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이즈는 걷다 지쳐 다른 한 명을 소리쳐 부르거나 하지 않았다. 차이가 한 걸음 이상 벌어지면 미스미는 알아서 걸음을 늦췄기 때문이다. 이즈가 그걸 쫓아 걸어간다. 더 뒤에서 하루노 시온이 그걸 지켜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왠지 한 명이 모자란 기분이 든다.
이즈는 그걸 무시했다. 

 

#05 멘션온_캐릭터로_단문 

 

[오토와 루이]

대체로 남고생들의 여름 캠프란 떠들썩하고 멍청하기 마련이다. 저녁으로 만든 카레는 어느 조가 더 맛있다느니 장기자랑에서 누가 더 얼간이 같은 짓을 하는가로 뜨겁게 불타올랐다는 뜻이다. 그 열량의 반대급부인지, 새벽 3시의 캠핑장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고 밖으로 나온 오토와 루이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무언가의 구멍처럼 동그란 모양의 달이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루이는 무의식적으로 하루키의 이름을 부르려 하다가, 지금쯤이면 하루키 또한 숙소에서 자고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풀려있던 얼굴이 무감해진다. 오토와 루이는 젖은 손을 한 번 털어내고 숙소로 돌아갔다.


[야나기 니나]

대학교 동창의 결혼식이 있었다. 야나기 니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거기에 참석해, 동창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왔다. 적지 않은 친구들이 니나의 임용고시 합격과 초등학교 배정 소식을 순수하게 축하해주었지만, 대다수의 멤버들은 니나의 얼굴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얘, 나는 네가 제일 먼저 시집갈 줄 알았어…. 친구 한 명이 그런 말을 하다가 황급히 입을 막는다. 니나는 가볍게 웃고는, 어쩔 수 없지. 그런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동창들과 헤어지고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니나는 창문으로 흘러가는 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돌아와보면 현관은 어둡다. 니나는 거기에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이제 울지는 않기로 했으니까.

다만.

시곗바늘이 혼자 바쁘게 움직인다. 니나는 천천히 불을 켰다.

[이소이 하루키]

이소이 하루키의 침대 천장에는 별 모양 야광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버지인 하라다 미노루가 자리에 누워있을 때 심심하지 말라고 붙여준 것이다. 몸이 약하고 병에 잘 걸려서 늘상 침대 신세를 지는 하루키는 필연적으로 그 별들이 친숙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은 그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그럼 저기 큰 별은 엄마 별, 바로 옆에 있는 건 아빠 별, 그 사이에 있는 게 나. (헤헤) 저기 있는 별 세 개는 노아짱이랑 노아짱의 가족이고….

앗, 내 동생 별도 있어야 하는데! 별 것도 아닌 실수인데도 하루키는 허겁지겁 천장을 바라보며 동생에게 줄만한 별을 찾았다. 마침 세 가족의 별 한쪽 편에 살짝 외따로 떨어진 듯한 작은 별이 있었다. 그걸 동생별로 만들려다가, 문득 석연찮은 느낌에 눈을 깜박인다. 그 위치가 너무나도 외로워 보였던 탓이다.

그럼 내 별을 동생에게 주고 저 별은 나랑 친구하면 되겠다!
하루키는 어린 아이치고는 제법 영민한 생각을 하곤 헤실 웃었다.

별들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토 하루키]

여름 캠핑 숙소는 그리 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태평양처럼 넓은 것도 아니었다. 옆자리 친구가 휘두른 팔에 머리를 맞는 바람에 잠에서 깨버린 하루키는 크게 하품을 하고는 다시 잠들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를 가는 소리나 잠꼬대를 하는 목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와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새카맣기만 하다.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한 하루키는 주섬주섬 아이들의 잠자리를 벗어나 숙소 바깥으로 나왔다. 그 사이 얼핏 루이가 누운 자리를 보았는데 비어있었다. 잠이 안 와서 바깥을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아."
"엇."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문이 열린다. 하루키는 타이밍 좋게 문 밖에 서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깜박였다. 입구 바로 근처에 가로등이 서있는 탓에 세세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특징적인 녹색 머리카락과 안경은 틀림없는 루이였다. 루이, 거기서 뭐해? 물어보면 조금 후에 대답이 돌아왔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 그렇구나.

"너도 자다가 깼나?"
"옆 자리 녀석한테 머리를 맞아서 말야."
"어디 보자."
"아니, 다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루이는 하루키의 말을 무시한다. 하루키는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를 더듬어보는 루이를 그냥 방치했다. 숙소의 문이 닫힌다. 가로등 불빛 너머로 은은한 달빛이 가득했다.

"오늘 보름달이야?"
"그래."
"예쁘네."
"구경할텐가?"
"응."

근데 지금 몇 시야? 새벽 세 시. 우와, 얼른 보고 들어가서 자야겠다.
두 명의 소년은 그렇게 소곤거리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06 멘션_온_단어로_짧은_글_연성 

 

[계단] (화분조 고딩 AU)

 

사형장의 계단은 13칸이라고 한다. 학교의 동문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13칸이어서 학교에는 온갖 소문이 돌았다. 거길 올라갈 때는 계단 칸수를 세면 안된다느니, 새벽 2시에 거길 올라가면 귀신이 발목을 잡아서 나자빠진다느니, 비오는 날에는 거기서 미끄러져 죽은 학생 귀신이 나온다느니. 개중에는 13부터 하나씩 숫자를 빼면서 올라가다보면 마지막 계단에서 미래에 자신을 죽일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그 날 우츠기 노리유키가 그 계단을 거꾸로 세면서 올라간 것은 명백한 의사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개인적인 이유로 학교를 나오지 않은 날이었고, 무슨 조화인지 그 날 따라 제법 심신이 피로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와중에 자신이 내일 제출해야할 과제노트를 책상서랍에 두고온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숫자는 짧은 카운트다운이 되어간다. 마침내 제로를 속으로 외며 발을 디딘 노리유키는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기억 속의 괴담이 그제사 형체를 갖추고 떠오른다. 미래 나를 죽일 사람이라니, 정말 당치도 않지….

 

"뭐해? 우츠기."

 

고개를 들면 하라다 미노루가 신발로 갈아신은 채 이쪽을 보고있다.

노리유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교실에 노트를 두고왔노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지러 가자. 혼자 가기 쓸쓸하지?"

"누가 쓸쓸하다는 겁니까?"

 

노리유키는 핀잔을 던지듯이 말하곤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하라다 미노루가 그 뒤를 종종걸음쳤다.

 

[구름] (카노↔아소 포지션 체인지)

 

"구름을 본 지가 오래되었네요."

 

아소 코지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회의실 노트북의 얼마 남지 않은 전력으로라도 스마트폰을 충전하자는 대안책을 실행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아오기 카나오는 눈 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흘끔 바라보고는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쳐다본다. 27%. 아직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숫자다.

 

"카노 씨는 구름을 자주 보나요?"

"글쎄, 지나가다 보기는 해. 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렇군요."

 

아소 코지의 얼굴은 희미한 웃음을 가면으로 만들어 덧쓴 것처럼 일정하다. 아오기 카나오는, 자신 역시 깨끗하고 결백한 인간이라 말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미소가 상당히 가식적이라고 느꼈다. 헌데 그게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웃음이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여기 갇혀살기라도 했어?"

"어떨까요. 맞추면 나중에 홍차 타드릴게요."

"난 그런 고급 음료는 안 마셔."

"그런 말씀 마시고."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노트북의 전원이 나가버린다. 어라, 하는 아오기 곁에서 기기의 상태를 점검해본 아토 하루키가 짧게 혀를 찼다. 이건 전원이 완전 꺼졌네요. 카노 씨, 배터리 얼마나 남았어요?

 

"35퍼센트."

"스피드전이네요."

"그러게."

"힘내자구요."

 

아소 코지가 한쪽 주먹을 내민다. 아오기 카나오는 코웃음을 치고는 그 손을 손날로 내려쳤다.

 

[희망] (니나↔요우 포지션 체인지)

 

"니나… 니나, 어째서야?"

 

야나기 니나의 몸은 작고 힘도 강하지 않지만 쟈부치 요우는 그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 속 야나기 니나는 여전히 마음이 약하고 울음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야나기 사제를 자신의 기억 속 인물과 합치시키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요우, 그대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갑자기 헤어지자는 메세지만 보내고…!"

"그게 내가 당신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자애였어."

 

솔직하게 말하자. 이 지경에 이르러 쟈부치 요우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야나기 니나가 아직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으리라는 희망, 자신이 똑바로 처신하면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오리라는 희망, 니나는 누군가나 무언가에게 억울하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희망. 하지만 그 손에 들린 차가운 총 끝이 자신을 겨누는 시점에서 그 희망은 멀리 도망치고 말았다. 몸이 떨린다. 공포가 아니라. 끔찍한 무력감 때문이다.

 

"니나…."

"고마워, 쟈부치. 날 만나러와줘서."

 

일순, 옛날 그 미소가 보인 것 같았다.

 

"이 기억만은 지옥까지 가져갈게."

 

뒤이어 마른 소리가 들렸다.

 

[해바라기] (호스트 하루키 AU)

 

"여기 있었나요, 하루키 사제."

 

하츠토리 하루키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있다. 하루키는 화분의 흙을 매만지던 손길을 멈추고 정원 문간에 서있는 우츠기 노리유키를 바라보았다. 그는 평소 이곳을 자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여기까지 왔다는건 그에 준하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의미일까. 하루키는 손을 얼른 털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우츠기 대주교님."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요. 당신이 요즘 들어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들렀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이든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해요."

 

우츠기가 안뜰 근처의 벤치로 다가가 손짓한다. 곁에 앉으라는 뜻임을 이해한 하루키는 얼른 그 자리로 다가갔다.

 

"무언가 키우고 싶은거라도 있나요?"

"아… 음, 그게."

"편하게 얘기하세요."

"……해바라기를 키우면 어떨까 싶어서."

"해바라기."

 

흐음, 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소리가 난다.

하루키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버린 어깨를 움츠리다 슬쩍 우츠기의 눈치를 살폈다.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햇빛을 받아 활짝 피어난 해바라기 사진을 봤어요. 그게 너무 인상깊어서."

"과연. 하지만 해바라기는 일조량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이 아래에서 키우기는 힘들어요."

"역시, 그런, 가요…."

 

목소리가 저절로 기어들어간다. 우츠기는 빙긋이 웃어보였다.

 

"대신 해바라기 조화를 설치하도록 하죠. 무엇보다 생생한 것으로, 아주 정교하게."

"……."

"그러니 돌아갈까요, 하루키 군."

 

우츠기가 하루키를 사제가 아닌 '군'으로 부를 때는 대체로 정해져있다. 지고천의 사제로서가 아니라 어린 하루키를 타이르고자 할 때가 그랬다. 하루키는 우츠기가 언성을 높이지만 않았을 뿐 자신을 부드럽게 제지했음을 알았다. 아아, 역시 이 곳은 우츠기 대주교님이 기꺼이 여기지 않는 장소구나. 이 장소를 건드리는건 금기인거야. 하루키는 그런 생각을 재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츠기의 배려에 감사하는 목소리가 유리구슬처럼 굴러갔다.

 

"감사합니다, 우츠기 님."

"그래요, 하루키 군은 착한 아이군요."

 

머리가 쓰다듬어진다.

와중에 그 감각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