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 하루키 + 세오도아 리들
-세포신곡 나츠마츠리 합작 참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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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주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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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대나무에 쪽지를 매다는 것으로 무엇이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부는 바람에 대나무잎이 파닥인다. 그건 얼핏 수많은 새들이 하늘로 날개짓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깃대에 매인 깃발들이 일제히 펄럭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색색의 탄자쿠들이 줄에 매인 채 허공을 빙빙 맴돈다. 아토 하루키는 제 뺨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땀을 느릿하게 인식했다.
“이 세상은 행복해질까, 아니면 더 끔찍해질까?”
어쩌다가 이런 화제로 이어졌을까? 그리 필사적이지 않은 질문은 플라스틱 그릇에서 녹는 얼음알갱이처럼 금새 형체를 잃었다. 아토 하루키는 냉기에 젖은 왼손을 구제하려는 듯이 오른손에 든 스푼으로 얼마 남지 않은 빙수를 퍼올려 입 안에 밀어 넣었다. 한 알갱이만큼의 냉기와 과일 시럽의 맛이 점막에 스며들었다.
“세오도아 씨는 염세주의자인가요?”
“설마, 나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걸.”
“그럼 인간혐오?”
“네거티브하게 말하지 말아줘. 이건 지적 호기심이니까.”
“호기심인가요.”
오물오물. 얼음조각을 씹는다. 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텐데도 세오도아 리들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의 손에서 뭔가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붉고 반질반질한 그것은, 두 번 관찰할 필요도 없는 사과 사탕이다. 손님의 치아 건강을 염려한 가게 주인이 사탕을 건네주면서 한쪽 귀퉁이를 미리 깨준 덕에, 표면 일부에 거미줄 같은 잔금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축제 등불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일단 대나무가 귀한 자원으로 취급받겠죠. 그리고 특정한 자격을 가진 이들만이 대나무에 접근한 권한을 얻을 테고요. 그 외의 사람들은 대나무에 대한 진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믿지 못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이네.”
“밑바탕부터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요. 그런 사회가 좋을지 나쁠지는 잘 모르겠네요. 만약 대나무를 위해서라면 법률을 무시하고 인명을 경시해도 되는 곳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하루키는 법치주의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서요.”
빙수를 한 입 떠서 다시 입 안에 넣는다. 유카타, 혹은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각자 떠드는 소리와 가게에서 힘차게 호객하는 소리,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한 물 간 대중가요의 음색이 섞이며 묘하게 마음을 웅성이게 만드는 BGM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레이지는 축제를 잘 구경하고 있을까. 망할 아버지야 신발 끈이 끊어져 맨발로 걸어다니게 되더라도 알 바 아니지만. 녹은 빙수를 꿀꺽 삼키고 그릇을 내려다보면 투명한 그릇 바깥에 이슬이 송송이 맺혀있었다.
“세오도아 씨는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나요?”
“글쎄, 의외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
“그건 좀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요?”
“난 지구관리부서의 직원이 아닌걸.”
세오도아가 어깨를 으쓱인다. 하루키는 픽 웃어버리고는 갈 곳 없어진 플라스틱 스푼을 입에 물고 고개를 들었다. 칠석제를 맞이하여 만들어진 각종 하리보테가 높은 곳에서 흔들렸다. 문득, TV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캐릭터라던가 상점가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가게의 로고 사이로 유난히 커다란 별 장식이 눈에 띄었다. 그 아래에는 철제로 만들어진 원형 틀이 있고, 그 틀을 빙 두르듯이 늘어선 여러 개의 줄에는 종이학이 줄줄이 매달려 장관을 만들었다. 틀림없이 꽤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품을 들였겠지. 하루키의 시선을 눈치 채고 같은 방향을 보았는지 세오도아가 오, 하고 짧게 탄성을 냈다.
“굉장한 양이네. 축제가 끝나면 어떻게 되려나.”
“세오도아 씨.”
“응?”
“소원을 빌어본 적, 있나요?”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하루키는 젖은 플라스틱에 불과해진 스푼을 텅 빈 그릇 안에 담고는 난간에 천천히 허리를 기댔다. 저 멀리 축제음식을 든 한 쌍의 커플이 탄자쿠 매달린 대나무를 향해 손을 뻗고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 노란 종이 두 장을 단단하게 매달았다. 그 안에는 필경 그들이 스스로 쓴 소원이 적혀있을 터다. 이윽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네.”
“칠석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소원 정도는 있어.”
“있는가 여부가 아니라, 그게 이루어지도록 무언가에게 빌어본 적이 있냐는 뜻이었어요. 신이든 천사든 악마든… 별에게든.”
나이 어린 아이들이 다리를 가로지르며 씩씩하게 웃는다. 약간 뒤쪽에서 보호자로 보이는 이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유카타 차림의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이 가고픈 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상점가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멈추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말씀 드립니다. 현재 미호시라는 아이를 보호중이니, 보호자께서는 속히 상점가 1번 출구에 있는 안내 사무소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방송은 약간의 잡음을 내고는 끝났다. 세오도아는 사과사탕을 들지 않은 손으로 주머니를 짚었다가, 짚은 사실 자체를 없는 사실로 하고 싶은 사람처럼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 손에 까만 장갑이 끼워져 있다. 시간이 해가 저문 저녁이라 해도 7월의 열기는 만만치 않은 것일텐데도 꿋꿋이 하이넥을 입고 축제 자리에 나타난 자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이뤄진다고 생각해.”
“그러므로 무엇에게도 빌지 않았다?”
“지금은 그래.”
“과연.”
금 간 사과사탕이 또 빙그르르 돌아간다. 하루키는 막연하게, 이 사람이 결코 그 사과를 입에 대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금이 갔거나 깨져서가 아니다. 그는 무언가의 영역을 깨고 들어가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배려심이고, 달리 보면 무관심이며, 뒤집어 보면… 자신에게 결코 다가오지 말라는 선전포고다. 플라스틱 컵에 맺혀있던 이슬이 이제는 미지근한 온도를 머금고 손가락 아래로 흘러내렸다.
“사람은 소원을 이루는 것만이 삶의 전부일까요?”
바람이 불어온다. 대나무 잎들이 맞부딪치고 스치며 또 한 번 거대한 소리를 냈다.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에게는 일생일대의 소원이 있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야말로 피가 나는 노력을 해왔어요. 그러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죠.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소원을 이룰 수 없었어요.”
“가슴 아픈 이야기네.”
“그렇다면 그때까지 살았던 그 사람의 인생은 의미가 없는 걸까요.”
“…….”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인생은 그냥 비참하고 서글픈 걸까요.”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 탄자쿠 보지 말라고 했잖아! 대나무 숲 언저리에 서있던 아이가 빽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보호자로 추정되는 키 큰 남성은 아이가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지 잠깐 얼어있다가, 서툰 웃음소리를 내며 아이를 안아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아이는 그 팔을 찰싹 때리고는 등을 돌리고 선 채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형체가 되지 못한 슬픔이 무너져 내린다. 주위 사람들이 그 모습을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갔다.
“한때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이야기거든요. 그때 이런 말을 들었어요. 소원은 이뤄지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 설령 이루지 못한 소원이라도 그걸 위해 노력한 시간과 추억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과정 중시적인 말이네.”
“이런 건 싫어하시나요?”
“싫어하진 않아.”
하지만, 역시, 소원은 이루어지는 게 좋잖아. 옅은 말이 시끌벅적한 축제 공기 속으로 투명하게 녹아들어 사라진다. 하루키는 그 말이 세오도아 리들의 거짓 없는 진심임을 알아차렸다.
“너에게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을 거잖아?”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토 하루키는 그 말이 짚어내려는 윤곽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2015년 4월, 창문 하나 없는 건물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경과점들. 보통 사람이었더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을 조각들이 이제와 모빌처럼 빛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이뤄낸 한 가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토 하루키는 구태여 그걸 부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혼자 힘으로 이룬 건 아니었죠.”
비록 지금 이 순간에는 곁에 없다 해도, 그 면면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거니와 꺼려지는 일도 아니다. 아토 하루키는 플라스틱 그릇의 테두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세오도아를 바라보았다.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이방인은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사과사탕의 잔금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 사과 사탕이 느리게 회전한다. 잔금의 아주 작은 부스러기가 이제는 한계라는 듯이 투둑, 부스러져 내렸다.
“주변 사람을 좀 더 믿으라던가…그런 말을 하고 싶어?”
“까놓고 말해 세오도아 씨의 사정을 제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방진 발언은 그리 하고 싶지 않네요. 그렇지만, 뭐, 네. 너무 혼자만 끌어안지 마세요.”
소란스러움 속에서 침묵이 이어진다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다. 하루키는 주위의 떠들썩함이 자신들로부터 두어 발자국 정도 멀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세오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루키의 말을 듣고선 입술을 움직이지 않던 세오도아가 마치 무언가를 연기하듯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깜박임에 맞춰 붉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아토 하루키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얇은 입술이 드물게 웃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그건 안 돼.”
“이유는?”
“다들 미쳐버릴 테니까.”
“얼마나 무서운 소원인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소원일 뿐이야.”
“누군가와 그걸 함께 빌어본 적은 있나요?”
세오도아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몰아치는 바람에 대나무 잎들이 휘말렸다. 무명 실로 매달린 탄자쿠들이 키득거리는 것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달려가는 아이의 손, 비닐 속에 들어있는 주홍색 금붕어는 작은 공기 방울을 뱉어내며 동그란 눈을 굴렸다.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치며, 뒤쪽으로 흘러가는 찰나에 짧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너-말-야.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있는거야?
높은 바람소리가 난다. 뒤이어 남색 빛을 머금은 공기 중에 색색의 불꽃이 파열음을 내며 화려하게 퍼져나갔다. 상점가의 빛깔이 불꽃의 색에 맞춰 재조정된다. 사람들의 옷자락과 얼굴이 색색으로 물들며 마구 흔들린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환성이 끓어올랐다. 거기에 화답하듯이 연이어 폭죽이 터진다. 무지갯빛이 사방으로 터져 순간적으로 눌러 붙었다가 스러졌다. 색색의 빛이 선명해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검어져서, 마치 세상이 두 겹으로 나뉘어 버린 것 같았다. 건조한 파열음과 환성이 한데 녹아 뒤섞인다. 그 속에서 어두운 면에 적셔져 있던 세오도아 리들의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
얇은 목소리는 폭음에 금방 파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에게 재차 답을 요구하며 추궁하지 않았다. 세오도아도 하루키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만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불꽃을 바라보았다.
빛이 넘쳐흐른다. 동공이 수축했다.
탄자쿠들은 묵묵히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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