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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레이하루]그 무대에 꽃다발을 던지고

-연출과 이소이 레이지X연극과 아토 하루키 AU

-비전공자입니다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시시한 말로 시작해보자.

 

"널 사랑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남자, 아니면 여자? 혹은 그런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영역의 성별? 어쨌건 그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그건 어떤 표정일까. 웃는 얼굴일까, 우는 얼굴일까, 고백에는 당최 어울리지도 않는 짜증난 얼굴일까.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존재도 필요한다. 그가 살아있던 죽어있던 비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사를 읊는 이와 그걸 듣는(혹은 듣는 쪽에 놓이는) 이 사이의 호흡, 침묵, 분위기, 그 무형을 향해 비춰지는 빛과 흐르는 음악, 닫히는 커튼의 움직임 같은 거니까.

 

그게 나, 나고야 예술대학 연출과를 다니고 있는 이소이 레이지가 배우고있는 것이다.

 

"레이지 군이 연출과를 와서 다행이야."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검까?"

"이제 2학년인데도 무대 앞뒤를 종횡무진 돌아다니잖아."

 

보통은 무대 의자 상태를 점검하거나 리허설 음향 장비를 점검하는 등 잡일을 맡는 정도가 전부인데. 그렇게 말하며 무대 아래에서 웃는 것은 연극과의 전설이라고도 불리우는 '취급주의' 아토 하루키 선배다. 나는 무대에 설치되어있는 구조물의 대략적인 내구도를 체크하는 작업을 끝내고 허리를 들었다. 

 

"전 무대를 돌아다니는게 체질이거든요. 이것저것 채워넣고, 이동 경로를 생각하고, 조명을 어떻게 조절할까 생각하는 걸로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흐음, 연기를 해보자고 생각한 적은 없고?"

"없네요. 대체로 얼굴 근육이 죽어있어서."

"아깝다."

"그게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임까."

 

방긋방긋 웃는 얼굴에 그렇게 태클을 건다. 하루키 선배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상대에게 별 것 아니라는 듯한 장난을 걸어오곤 하니, 흐름에 휘말려들어가지 않도록 신중해야한다. 내가 하루키 선배를 대할 때에는 특히나 그렇다.

 

"그치만 내 연기를 보고 반한 얼굴을 한 사람이 있으면."

"…있으면?"

"무대 위로 끌어올려, 좀 더 가까이 바라보고 싶어지는 법이잖아."

"제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간 관객들의 원성이 장난아닐텐데요."

"지금은 올라가 있잖아."

 

시선이 마주친다. 아토 선배의 눈은 살짝 붉은 기가 도는 나뭇결의 빛깔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지 섬뜩하고, 섬뜩하면서도 다정한 시선. 지금껏 몇 번이고 그 시선에 마음이 울렁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음은 훌륭하게 두근거리며 고동소리를 높였다. 무대를 내려가는 계단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내려갈 수 없었다. 거기에 아토 하루키 선배가 서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선배는 다음주 공연을 위해선 푹 쉬어야 할 시간 아닙니까?"

"화제 돌리기가 서투르네. 괜찮아, 이번 배역에는 밤을 새는 정도의 경험도 필요하거든."

 

이번 공연은 창작극이다. 「아소 코지」라는 이름의 탐정이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해나다가 자신이 가진 치명적인 비밀을 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라던가. 참고로 그 연극의 주역이 누구인가 하면 지금 느긋하게 무대 위로 올라오는 아토 하루키 선배되시겠다. 어떻게 말릴 사이도 없이 무대 위로 올라온 선배는 세트가 장치된 무대를 돌아보았다. 그 걸음이 우아하여, 마치 현대무용의 연습장면 같기도 했다.

 

"오백명은 될걸요."

"뭐가?"

"하루키 선배의 연기에 반한 사람이요."

 

선배는 조금 마른 웃음소리를 내다 기침했다. 아, 너무 신경쓰지 마. 목이 좀 말랐을 뿐이거든... 그렇게 말하는 하루키 선배지만 잔기침은 계속 이어진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나가서 물이라도 사오겠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하지만 하루키 선배는 들고있던 편의점 봉투에서 뭔가를 꺼내 느긋하게 빨아마셨다. 자세히 보니 캐릭터 상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딸기 우유다. 허탈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우유를 다 마신 하루키 선배가 팔을 벌려보였다. 짜잔, 완치야.

 

"그런 완치법도 있나요."

"레이지 군도 한 번 해봐. 효과 좋아."

"다음에 꼭 시험해보죠."

"좋아, 그러면 무슨 이야기였더라."

 

스텝을 밟듯이, 하루키 선배가 가까이 다가온다. 마른 몸에, 180cm의 장신,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한 팔다리와 금빛으로 물들인 짧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신은 이 사람을 만들 때 단 한 번의 붓칠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아, 그래. 레이지 군. 난 동생이 있는데 말이지."

"얘기가 어디로 튀어버린검까?"

"일단 들어봐. 그 아이, 무대 위에 있는 나를 정말 좋아하거든."

"하루키 선배의 연기는 누구라도 좋아할 수 밖에 없죠."

"칭찬 고마워. 그치만 말야, 내 동생은 관객으로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냐. 가족애와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하루키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촬영장의 세트에 앉는다. 일상적인 옷을 입고있는데도 세트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주변 환경에 그대로 녹아드는 카멜레온이나 문어가 떠올랐다. 이 사람에게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슴다."

"그럼 단적으로 물어볼까. 레이지 군은 감동적인 연기를 펼친 배역을 사랑하게 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

"썩 바람직한 형태는 아니네요. 허상을 보고 시작한 사랑은 허상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섬세한 답변 고마워. 다시 말해, 그런거야."

 

흐음, 그런건가.

3초 정도 생각하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대 위의 하루키 선배를 보고 반한 사람은 배역을 향한 동경심, 연모의 감정을 선배 개인을 향한 애정과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면해봤자 의미는 없다. 그런 뜻임까."

"레이지 군은 머리회전이 빠르네. 혹시 탐정이야?"

"탐정 역은 아토 선배죠."

"그랬네."

 

하루키 선배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걸 보고있자니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그치만 한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는데요."

"뭔데?"

"왜 저와는 같이 무대에 오르고 싶으신거죠?"

"음~ 조금만 스스로 생각해봐. 맞추면 달달한 거 줄게."

"달달한 거라니."

 

간식거리에 주체적으로 나설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다구요. 그렇게 투덜거려봤지만 하루키 선배는 완고하다. 별 수 없이 머리 속을 조금 더 굴려보기로 했다. 선배는 배역에 반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지양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는 선배를 보고 반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선배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 또한 좋아하지 않는 범주의 인간에 들어가는게 당연하다. 헌데 선배는 나를 무대에 세워 확인하고 싶은게 있다고 했다.

 

"…혹시 일종의 사고실험을 행할 생각이라던가."

"아닙니다."

"통 알 수 없는 이들의 머릿속을 검증해보려는 생각이라던가."

"내가 카노 선배야?"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검증해보고 싶다던가."

"오, 비슷했어."

 

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뱉어낸 말이 뜻밖에도 합격 판정을 받고말았다. 덕분에 오히려 더 알 수 없게 되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선배가 기지개를 쭉 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소이 레이지 군에게 힌트 하나. 아토 하루키는 이소이 레이지 군이 여기 있다는걸 알고 왔답니다."

"저를 찾아온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군요."

"응. 그리고 힌트 둘. 아토 하루키는 사람을 볼 때에는 꽤 신중하게 보는 타입이랍니다."

"…저를 신중하게 봐서 뭐가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지막 힌트~."

 

약간의 침묵이 가슴을 이상한 감각으로 메운다. 마치 자신이 이제까지 말한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허공을 바라보던 하루키 선배가 문득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착각일까, 아니면 실제로 열이 있는걸까. …조금 볼이 붉다.

 

"이소이 군."

"네."

"나 연하 취향인가봐."

"…."

"이렇게까지 했는데 모른다면, 그냥 여기서 일어나서 나갈까 싶은데."

 

저도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나가고 싶습니다. 문득 치고 올라오려는 말을 꾹 내리 누른다. 하루키 선배와 마찬가지로 열이 오른 볼을 문지른다. 선배는 팔짱을 낀 채 쭉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뺨을 걸쳐 귀까지 따스한 색이 되어가는 것이 보일 지경인데도. 아아, 젠장. 이런 것까지 봐버렸는데 꽁무니 빼고 도망갈 수도 없잖아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곤 입을 열었다.

 

"하루키 선배."

"응."

"저한테 반하셨나요?"

"응."

 

담담한 대답에 현기증이 일었다. 이마를 한손으로 짚고 하루키 선배를 바라보면, 선배는 이미 미소지으며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양팔을 벌려보이고 있다. 아아, 정말이지. 오늘 이 시간, 이 무대에 서있었던 순간부터 하루키 선배의 시나리오에 사로잡혀있었던 건가. 하지만 좋아한다는 기분에 역으로 침식당하는 듯한 이 감각은, 싫지 않다. 

 

선배 가까이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가 벌려진 품에 안긴다. 선배는 키득이는 소리를 내고는 내 고개를 잡아올려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가느다란 숨결과 함께 뒤얽히는 혀로 안쪽을 훑는다. 선배는 적극적으로 나온 것 치고는 움직임이 조금 느렸다. 그것이 어쩐지 마음을 동하게 해, 몇 번이고 파고들어 어루만지며 소리가 새어나오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키스하다 겨우 떨어져나오고서야 보니, 선배의 숨은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분명 나도 비슷하겠지.

 

"레이지 군."

"네."

"키스, 달았어?"

"거의 녹을 뻔했네요."

 

선배는 키득키득 웃고는 나를 안고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근데 의외야. 레이지 군, 키스 잘 하는구나."

"…이제와서 묻는 말입니다만, 설마 즉흥극하는 기분으로 말한 건 아니시겠죠."

"나 그렇게까지 연기에 모든걸 바치는 타입은 아니거든?"

 

그리고 「아소 코지」 씨는 설정상으로는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이야. 나도 이미 잘 알고있는 사실을 말하고, 하루키 선배는 내 몸에 기대듯이 안겨왔다. 이런 말을 내가 하는 것도 좀 분하긴 하지만, 약간 키 차이가 나는 덕분에 안겨오는 각도가 딱 좋다. 

 

"그런데 하루키 선배. 대체 저의 어디에 반하신건가요?"

"기념비적인 첫키스 하고나서 하는 말이 그거야?"

"무드 깨부숴서 죄송하네요."

 

하루키 선배가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따뜻한 숨결이 목을 간지럽혔다.

 

"일 년 전에, 레이지 군이 저질렀던 짓 기억해?"

"아, 총공연 직전에 메인 조명 전원선을 뽑아버렸던 것 말씀이신가요."

"그~래, 음향이 어쩌고 하면서, 설비에 문제가 있으니 이대로는 공연할 수 없다고 했잖아. 덕분에 온갖 욕은 다 들어가면서 말야."

"실제로 스피커에 잡음이 섞여있었으니까요. 우리가 만족할까는 둘째치고 관객들에게는 실례라고 생각해서."

"응, 그때 반했어."

"그런 걸로?"

"그런 걸로."

 

하루키 선배가 천천히 손을 잡아온다.

 

"나는 제법 무대를 사랑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걸 욕먹어가면서 지켜주려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두근거린다고."

"그야, 하루키 선배가 설 무대인데 그 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선배는 갑자기 아무 말도 않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어리광을 부리듯 이마를 부벼왔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뭐가 스위치가 된 건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선배가 기분좋아보이니 그걸로 충분한가. 오늘은 바람이 차가우니 돌아갈 때는 손을 잡고 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온기가 맞닿아있는 동안, 조용히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