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2차 + 자캐

[혈계전선]미쳐버린 소녀는 안개의 도시에서 춤춘다

도시의 이름은 헬사렘즈 롯. 3년 전까지만 해도 "뉴욕"이라 불리웠던 이 도시는 단 하룻밤만의 "이상현상"에 의해 깨끗이 삼켜져 지금은 심층부가 짙은 안개에 뒤덮인 별개의 장소로 변모했다. 하지만 현대 문물의 정점을 이루고 있던 도시를 뒤덮고 있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날 밤 이전까지는 인간의 상상으로만 치부되었던 온갖 기괴한 생물과 명료히 설명될 수 없었던 신비현상,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마도과학과 중상모략을 비롯한 온갖 이계의 문물이 뒤섞임으로써 도시 헬사렘즈 롯트는 이계와 현세의 경계를 이루는 긴장지대로 거듭난 것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 뿐. 그러한 것들이 이 도시가 아닌 외부로 뻗어나가게 된다면, 평범한 인간으로 가득한 현세는 틀림없이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키고 만다.

그런 도시 속에서 세계의 패권을 쥐려 꿈틀대는 자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자들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기만 한 소년, 레오나르도 워치는 후자를 위해 설립된 조직 "라이브라"의 일원이었다. 안 그래도 목숨이 부족한 이 도시에서 일부러 라이브라에 투신한 소년의 목적은 "신들의 의안"과 맞바꿔 교환당한 여동생- 미셸라의 시력을 되찾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년은 자신의 시력은 물론 생명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라이브라에 소속된 지 어언 일 년이 다 되어갈 즈음, 애완동물 소닉을 어깨에 올린 채 본부로 올라온 레오나르도는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앉아 자그마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라이브라의 리더 크라우스를 발견하고 그대로 굳었다. 물론 그가 프로스페어라는 게임을 즐기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리 놀랍지 않다. 작은 화면을 응시하는 눈이 무섭도록 진지한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다. 익숙지 않은 것은 크라우스가 아니라- 그 곁을 지키고 앉은 다른 누군가였다.

갈색 피부. 짧게 자른 머리만큼이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레오나르도에게 등을 보인 채, 클라우스가 앉아있는 고풍스런 책상 위에 보란 듯이 길게 드러누워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책상 근처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는 흰색 샌들은 분명 그녀가 책상 위로 올라가면서 벗어버린 것이리라. 깨끗하게 맨발인 점까지 포함해 차마 뭐라고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노골적인 포즈였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크라우스의 얼굴이 평소보다 배는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분명 착각이 아니다. 당황한 레오나르도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상황을 정리하거나 해결해줄만한 인물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여자에 환장하는 재프가 있었더라면 최소한 저게 누군지라도 알 수 있었을텐데. 

"……."
"………."
"……………."

레오나르도가 침묵하고, 크라우스가 침묵하고, 소녀가 침묵하는 침묵의 삼중주. 소닉마저 묵직한 공기에 짓눌려 가만히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시계 초침 소리가 도리어 어색함을 더한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서 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도 저도 다 못 본 체 하고 그냥 나가버려야 할 지 고민하던 레오나르도 앞에 불현듯 누군가가 나타난 것은 초침이 몇 번 더 제자리 돌음을 한 뒤의 일이었다.

"이런, 카산드라. 도련님을 방해하면 안되지요."

길베르트 F. 알트슈타인. 비밀결사 라이브라의 멤버이자 라인헤르츠 가문에 소속된 집사는  소녀의 노골적인 기행이 그리 놀랍지도 않은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아 책상 위에서 번쩍 들어 올린 뒤 근처의 소파에 앉혔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동작인걸로 보아 한두 번 해본 느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소녀는 라이브라의 멤버…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길베르트 씨…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요?"
"아, 레오나르도 씨 오셨습니까. 이분은 카산드라입니다. 두 분은 이번에 처음 만나보시는 거겠군요."
"미야옹."

아니, 거기서 평온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보시는 거겠군요. 라고 하셔도 말이죠.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보고 고양이 소리를 내셔도 말이죠. 어디까지나 눈이 좋을 뿐인 일반인에 불과한 저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거든요. 저는 여기서 뭐라고 반응해야하는 겁니까. 그렇군요, 하고 납득하면 되나요 아니면 더 파고들어서 태클을 날려야 하는 건가요. 길베르트 씨,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는 것 마냥 그 아이에게 샌들 신겨주지 마세요. 크라우스 씨. 모니터만 뚫어져라 응시하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그게 아니면 누가 제발 이 상황 좀 설명해줘. 진짜, 누구라도 좋으니까.

…그리고 레오나르도의 간절한 마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또 다시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아-아, 피곤하다 피곤해. 하여간 잔챙이들일수록 지 주제도 모르고 더 날뛴다니까. 망할 새끼들."
"재프씨!! 솔직히 말해 당신 끔찍하게 못 미덥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 물 가릴 때가 아니네요! 부탁이니까 저에게 이 상황을 좀 설명해주세요!!!"
"이 자식이 들어오자마자 뭐라는 거야! 귀찮으니까 떨어져! 그리고 누가 못 미덥다는거야! 눈이 좋다고 해서 오냐오냐해주니까 아주 기어오르는구만?"
"일전에 목걸이 찾아주면 뭐든 들어준다던 술집 아가씨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아주 하루종일 매달린건 어디에 누구셨더라! 됐으니까 저 카산드라란 사람이 누군지나 설명해줘요!"
"멍청아! 그건 입이 찢어지더라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엉? 카산드라?"

의미 없는 입씨름을 벌이던 재프가 소녀의 이름을 읊조린다 싶더니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소파에 완전히 드러누워 버린 소녀는 팔걸이에 턱만 걸친 상태로 입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 카산드라냐?"
"네, 길베르트 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흐응, 그래?"

그렇다면야… 하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선 재프의 다음 말은, 조금은 상식적인 전개를 기대했던 레오나르도의 마음을 철저히 배신하는 것이었다.

"우쭈쭈, 착하지 이리온."

이 인간도 글렀다아아아아!!
그쪽도 그 말 듣고 쫄랑쫄랑 오지 말아요!! 진짜 고양이냐고!

레오나르도의 마음 속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소파에서 꼬물꼬물 일어난 소녀가 재프의 코 앞까지 타박타박 다가온다. 그 순진무구한 발걸음에 누군가를 의심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재프의 갈색 손이 소녀의 짧은 백발을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 한 순간, 실로 눈 깜박할 사이에 두 사람의 손이 빠르게 맞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냈다. 아니, 정확히는 소녀의 손에 들린 너클과 재프가 뽑아든 피의 검-이라고 해야 옳겠지. 그 일격을 시작으로 터무니 없이 빠른 공격이 다섯 번정도 이어졌다가 끊어진 뒤, 단숨에 거리를 벌린 소녀가 사납게 입술을 비틀어올리며 둔한 붉은 빛 주먹으로 재프를 겨냥했다.  

"어딜 감히 함부로 만지려들어?"
"그래, 나올 줄 알았다- 이 마더 컴플렉스 새끼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수께끼가 늘어나고 말았다. 완전히 권외로 밀려난 레오나르도가 마른 침을 삼킨 순간, 뒤늦게 그를 인식한 소녀가 재프를 경계하는 자세 그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너. 못보던 얼굴인데."
"아, 저는…."
"그 녀석은 신입이다. 네놈들은 처음 보겠지."
"신입?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만 하잖아. 라이브라도 다 죽었구만."
"저기…."
"죽은건 네놈 눈깔이겠지. 아, 설명이고 뭐고 귀찮으니까 빨랑빨랑 덤벼- 이 망할 폭력중독녀야!"
"오냐 그래 오늘 이빨을 다 부숴주마 이 빌어먹을 원숭이 새ㄲ "저기이이!!!" "아 망할 뭐야!!"

혼신의 힘을 다한 목소리에 소녀가 버럭 성질을 토하며 고개를 돌린다. 바로 조금 전까지 크라우스의 책상 위에서 뒹굴거리거나 길베르트에게 들어올려져 버둥거리던 소녀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거친 말투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이 방에 계속 있었던 레오나르도조차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의심이라는 개념을 허락하지 않는다. 착각 따위 일어날 수도 없다. 오로지 진실과 본질만을 꿰뚫어버리는 <신들의 의안>에 의한 시야는 그만큼 절대적이며 부정할 수 없는 결과만을 관측한다. 그렇기에 레오나르도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대체 안에 몇 명이 있는건가요? " 

그 순간 소녀의 황금빛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열받아있던 사람이 이성을 되찾았다던가, 냉정해졌다던가하는 차원이 아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갈색과 백발의 거죽을 그대로 둔 채 내용물만 쑥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녀의 양손을 감싸고 있던 너클도 어느샌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당신, 이름이 뭐죠?"
"레오나르도 워치입니다."
"그래요, 레오나르도 씨. 방금 한 말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설명이고 뭐고… 보였어요."
"무책임한 발언이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보이고 만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조금 전의 '카산드라'에서 재프와 맞붙기 시작한 순간에 한 번, 그리고 조금 전 시선이 순식간에 식은 순간에 또 한 번. 총합 2번의 "교체"에서 <신들의 의안>은 그녀의 체내에 달라붙어있는 진흙과도 같은 무언가를 포착했다. 마치 수없이 많은 인간이 짓이겨져 하나의 액체가 된 채 진득하게 흐르고 있는 듯한, 기묘한 "무언가"를. 지금도 무언가가 꿈틀, 하더니 머리 쪽에 있던 무언가가 위치를 바꾸었다. 이걸로 세번째 "교체"인 셈이다. 

"보였나요?"
"네. 사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흐음."
"…저기, 설명 좀 해주지 않으실래요? 여기에 오고난 이후로 대체 뭐가 뭔지 납득이 안 가서…."
"아- 젠장, 설명해주마, 이 불쌍하기 그지없는 어린 백성아."
"아니, 거기서 왜 당신이 튀어나오는 건데요. 재프 씨. 솔직히 당신 필요없거든요. 어디로 좀 가줬으면 하거든요?"
"시끄러워. 네놈 덕분에 저기 폭력녀랑 한바탕 신나게 치고박아보려던게 물거품이 됐잖냐. 나는 심심풀이를 해야겠다."
"폭력녀 폭력녀 하지 마시죠. 그 아이는 로베르타입니다."
"알게 뭐냐, 이 빌어먹을 다중인격자."

상대가 자신보다 어린 여자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재프. 그 상대도 아랑곳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대응하는 가운데, 레오나르도는 도중에 튀어나온 단어 하나에 눈을 깜박였다.

"…다중인격?"
"그래. 이중인격이니, 지킬 앤 하이드라느니 하는 그거 있잖아. 그거야 그거."
"에, 그치만 저 사람…."
"그래, 한 두명 정도가 아니지. 저 멀쩡한 얼굴 안에는 말야, 무려 수십도 넘는 인격들이 우글우글하고 있다고."
"정확하게는 약 178개체입니다."
"백…?!"

터무니없다. 너무 터무니 없어서 순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백하고도 칠십에 여덟. 한 반에 30명 정원이라고 친다면 6개 반에서 2명이 부족한 정도고, 그전에 라이브라의 멤버조차 백 명을 넘게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이 소녀에게 백 명도 넘는 인격이 들어가 있다고?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게나 냉정할 수 있는지가 의아할 정도다. 보통 하나의 몸에 여럿의 인격이 있으면 서로가 몸의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 아니던가?

"뭐 보통은 그런 모양이지만, 저희는 좀 특수한 경우라서요. 억지로 어머니의 몸을 빼앗을 생각은 없거니와, 애초에 주어진 역할이 다릅니다."
"…어머니? 역할?"

조금 이질적인 단어에 레오나르도가 의아해할 사이도 없이, 그제사 프로스페어 대국을 끝낸 크라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모습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상대와의 대국에 깊게 감동한 눈치였다. 매일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프로스페어 대국을 즐기면서 매번 저렇게 감동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뒤이어 레오나르도를 비롯한 세 명에게로 시선을 돌린 크라우스는 자신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소녀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카샤인가? 오랫만이로군. 프루는 좀 어떤가?"
"어머니는 여전하십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부탁하지."

잠시, 침묵이 있었다. 크라우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소녀가 그쪽으로 몸을 돌린 탓에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 침묵이었다. 어라, 그러고보니 좀 전에도 이거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하고 레오나르도가 자신이 막 왔을 때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재프가 그의 어깨를 꾹 누르며 속삭였다.

"어때, 골때리는 녀석이지?"
"178중 인격인 사람이 저렇게 멀쩡하다는 점에서 경외와 공포를 동시에 느낍니다."
"그래. 하지만 인격의 수는 솔직히 중요한게 아냐. 저런 정신분열증 환자가 왜 언덕 위의 하얀 집이 아니라 이 라이브라에 소속되있는지 아냐?"
"…모르겠는데요. 뭔가 특별한 인격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인격이 문제가 아냐. 그놈들이 가진 능력이 문제지." 
"능력?"

그래, 하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소녀의 등을 손가락질 하는 재프.

"예를 들자면 방금 나온 '로베르타'라는 인격. 이 놈은 아까 봤다시피 너클을 써서 싸우는 놈이야.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인격은 거대한 낫을 쓰고, '안켈'이란 인격은 석궁을 쓰지. 그 외에도 장검, 워 해머, 메이스같은 중세 무기에서 리볼버, 기관단총, 머스킷 건같은 현대 무기에다 여기 헬사렘즈 롯에서만 볼 수 있는 생체 병기를 사용하는 인격도 있어. 하나같이 숙달된 놈들이지. 그런데 말야, 놈들이 자기 무기를 어떻게 꺼내는지 알아? 죄다 자기 피를 써서 연성해. 즉 한 명의 인격이 하나의 혈제 무기를 뽑아낼 수 있다는 소리지. 더불어 예전에 라이브라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저 계집애의 인격중 80%가 전투가능한 인격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냐?"
"…저 사람 안에 적어도 백사십명 가량의 혈제 무기 연성자가 있다…?"

"그래, 그리고 더 골때리는건 말야."
"아직도 남았어요?!"
"그래, 아까 들었지? '어머니'라는 말. 그건 저 육체의 본인격을 가리키는 말이야. 지금은 나리랑 얘기하고 있지만, 보통은 잠들어있는 놈이지. 그런데 그 놈이 몸의 주도권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자기 안에 있는 인격이 사용하는 모든 혈제 기술을 쓸 수 있어. 그것도, 해당 무기를 쓰는 인격이 무기 안에 담기는 형태로 말이지."
"…………………………."
"흔히 말하는 에고 소드 같은 느낌이지. 만약 주인격을 발견하고 구해준게 나리가 아니었더라면 꽤 성가신 적이 됐을걸."
"……불합리해…… 밸런스 붕괴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죠……."
"멍청아,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사람의 인지를 벗어난 일이 뭐든지 일어나는 헬사렘즈 롯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저 눈만 좋은 일반인에 불과한 자신에 비하면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눈이 타들어갈 듯한 스킬 보유자다. 슬쩍 크라우스와 문제의 소녀를 돌아본 레오나르도는 그 순간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잽싸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돌렸지만, 아무래도 늦은 모양이다. 이쪽으로 타박타박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자신의 바로 앞에서 멈춘다. 별 수 없이 고개를 든 레오나르도 앞에서, 백발의 소녀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 들었어. 신들의 의안, 보유자."

묘한 억양에,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 
예고 없이 뻗어온 손가락은 레오나르도의 눈꺼풀을 비집어 열었다.

"들은, 대로, 네. 예쁘다, 파랑."
"가… 감사합니다…."
"엘리자베스, 좋아해. 이런 거. 분명, 도려내고, 싶어해."
"그건 좀 참아주시면 안될까요! 제 눈인데요! 그전에 무서워요!"
"그러니까, 조심, 해. 엘리자베스, 나오면, 분명, 눈, 노릴거야."
"…좀 봐주세요."
"네, 이름. 레오, 나르도, 워치. 나, 프루. 모두의, 어머니. 우리, 인사, 하자."
"깔끔하게 무시하기인가요…. 뭐… 잘 부탁드립니다. 프루씨."
"응. 잘 부, 탁해."

맞잡은 손은, 바짝 긴장한 레오나르도의 손에 비하면 의외로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