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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기타

[둥굴레차!/현오은찬]짐승의 마음 인간의 마음

-현우은찬 전제.

-현오>>>>>>>은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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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는 자기 동생과 주작의 후계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의 이빨을 숨길 줄 아는 사냥개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를 함께 놔두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건 이를테면 아기가 멋모르고 개의 코를 꼬집거나 털을 움켜쥐었을 때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낀 사냥개가 행여 아기의 여린 살갗에 이빨자국을 남길까 염려하는 것과 같았다. 현우가 다른 사신 후계자들 중에서도 주작 후계자에게만큼은 유독 애정을 품고있다는 것도 그의 걱정을 부추겼다. 만에 하나 주작 후계자가 다른 속셈이라도 품고 있다가 발각이라도 된다면 현우는 그에게 품었던 애정만큼 침착하게 그를 찢어죽이리라. 그런 상상을 하노라면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뭉쳐 흘러내렸다.

 

현오가 현무 가문의 정보망을 이용해 이번 주작 후계자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으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현오는 주작 후계자의 이름과 나이, 학력같은 기본적인 사항 뿐만 아니라 대대로 여자가 후계자였던 주작가문에서 남자의 몸으로 붉은 털을 가지고 태어난 그가 어릴 적부터 가문의 주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사실과(당연한 일이었다. 주작의 주술은 음기가 있어야 비로소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그로 인해 주위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주작 후계자의 증거의 붉은 털은 제 운명을 잊고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조차 막아왔겠지.

 

주작 후계자의 정보가 실린 종이를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현오는 제 마음이 그를 향한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물결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밝게 웃을 수 있고, 남에게 결코 모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니. 적어도 현무가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바로 그 점이 현우가 주작 후계자에게 제 마음을 바친 이유일테지. 그리고 어쩌면, 무시하는 이들을 공포로 짓밟고 군림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차가운 마음에 주작의 불꽃이 깃들어 온기를 줄 지도 모른다. 현오는 막연한 희망에 숨죽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주작이 가진 불꽃의 힘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을까. 어느 사이엔가 현오는 주작 후계자가 제 동생과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을 수천의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하얗게 달궈진 바늘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의 심장을 찌르며 날뛰었다. 심할 경우에는 숨도 쉴 수 없었다. 그 뜨거운 바늘이 주작의 불꽃에 담금질된 연심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 현오는 다른 어느 때보다 절망했다. 그래도 그의 심장에 옮겨붙은 주작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사그라들지 않았다. 현오는 다른 누구보다 주작 후계자의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제 동생을 질투했다가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갇혀 오랫동안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만약 이 부적절한 감정을 현우가 깨닫는다면 나는 그 아이의 형으로서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없다. 그래도 그 아이를 위해 살고 싶어지겠지. 현우는 나를 제 손으로 죽여버리거나 그 아이를 자기만 볼 수 있는 곳에 숨겨버릴거야….

 

어느 쪽에게는 현오에게는 지옥이다. 

차마 들킬 수 없어 조심조심 내뱉는 한숨마다 새까만 탄내가 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