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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미카도 수]비오는 날의 세가지 상황

<키다미카의 경우>

 

아침에는 분명히 하늘이 맑았다. 미카도는 자취방의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처음에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 판단이 조금 불안해진 것은 등교길에 반대편 하늘을 뒤덮고있는 두껍고 뭉실뭉실한 회색구름을 목격한 다음이었고-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낀 미카도는 그 길로 재빨리 자취방으로 돌아가 접이식 우산을 챙겨나왔다. 덕분에 학교에 아슬아슬하게 지각할 뻔하긴 했지만, 그것때문에 우산을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구물구물한 회색 구름에 점령당한 하늘 아래에서 오후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기의 습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둑어둑한 주변상황탓인지 평소에 비해 더 짙어보이는 녹색 칠판의 글씨를 따라 펜을 움직이던 미카도는 창문에 작은 물방을이 일렬로 늘어서는 것을 보고 순간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 직후 수없이 많은 빗줄기가 허공을 메우는 것을 목격한 순간에는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 살짝 안도하며 멍하니 빗줄기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보다 한 박자 늦게 창문을 바라본 급우 중 한 명이 '비온다!'는 말을 호들갑스럽게 외치는 소리에 맞춰 몇몇의 아이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상당한 아이들이 우산을 들고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키다군이나 앙리는 우산 들고왔으려나…?'

 

다행히 미카도의 자리에서 언뜻 보이는 앙리의 자리에는 길다란 장우산이 걸려있다. 키다에게는 수업이 마친 다음에 따로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카도는 볼펜을 따각거리며 우산을 들고오지 않은 아이들보다 월등히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

 

"요오, 미카도!"

"아, 키다군… 우산 들고있어?"

 

우산을 들고 온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우산을 들고오지 않은 아이들은 근심의 한숨을 내쉬며 삼삼오오 교실을 빠져나간다.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미카도네 반으로 건너온 키다에게 미카도가 질문을 던지자, 키다가 언제나와 같은 몸짓으로 가볍게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없지!"

 

왜 거기서 '당연히'라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미카도, 너는 모르겠지만 이 학교에는 차밍한 나의 매력에 빠진 여자아이들이 대략 40명쯤 된다고? 그 아이들 중에는 일상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보고싶지만 용기가 부족해 말을 걸지 못하는 샤이 걸도 존재하지! 그런 아이들이 나에게 한번쯤 말을 걸어볼 수 있도록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절대로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룰이다!"

"…? 미안, 무슨 소릴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우산을 빌렸다는거야? 라는 미카도의 의문에, 키다는 가볍게 으쓱이고는 지금부터 빌리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를 하며 아직까지 하교하지 않고 교실에 남아있던 몇몇 여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멀리서 듣기에는… 그러니까 일전의 헌팅때처럼 미카도로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모양인지, 가차없이 자리에서 일어서 키다에게서 멀어져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카도는 이후로도 그런 상황이 세번 정도 반복되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치지도 않네, 키다군은."

"그러게…."

 

그냥 우리랑 같이 쓰고가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접이식 우산과 앙리의 장우산을 흘끗 바라본 미카도는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산의 소유자는 자신과 앙리 두 명. 우산을 들고오지 않은 사람은 키다 한명.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두 사람 중 한명과 우산을 같이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여기서 여자아이를 노리는 일이 많은 키다라면 어쩌면 앙리의 우산을 빌릴지도 모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미카도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교실 저편의 키다에게 외치고있었다.

 

"키, 키다군! 내가 빌려줄게!"

"오, 정말이냐 미카도? 하지만 나는 기왕이면 앙리가 더 좋은데-"

"에… 나?"

"아, 안 돼! 그게 그러니까…."

"하항, 알 만 하다. 미카도. 그러니까 너는-"

"마, 말하지 마!"

 

때마침 막 네번째의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간 키다가 웃으면서 미카도의 자리로 걸어와 미카도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턱 걸치며 하려는 말을 미카도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막아내는 동안, 앙리는 '두 사람은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나저나 미카도도 제법인데- 네쪽에서 먼저 나를 불러주다니."

"…나, 난 그냥…."

"네이네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교길, 결국 미카도의 의도대로 접이식 우산 신세를 지게 된 키다는 그렇게 말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옆쪽에서는 앙리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지만 장우산의 범위라던가 키다_미카도_앙리라는 포지션, 그리고 그 사이의 빗소리때문에 지금 평소보다 톤을 낮춘 키다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위치가 가까운 탓에 행여나 앙리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미카도는 자신의 옆쪽에서 걸어가는 키다를 흘끗 바라보았다. 자신이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산을 들려준 키다의 교복 어깨쪽에는 빗방울의 흔적이 짙게 새겨지고 있었다.

 

"…저기, 키다군? 어깨 젖고있는데…."

"응-? 이 정도야 괜찮아."

"하지만…."

"괜찮다니까?"

 

히죽히죽 웃으며 미카도의 어깨를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가는 키다의 보조에 맞춰 걸어가다가, 미카도는 한쪽 손을 뻗어 키다의 한쪽 어깨를 끌어당겼다. 끌어당겼다, 기 보다는 그 교복 위에 그 이상의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감싸안았다는게 맞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미카도의 그런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짓던 키다는 미카도의 어쩔 줄 모르는 시선과 약간 빨개진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그 어깨를 끌어안고있는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곁에서 나란히 걸어가던 앙리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두 사람, 정말 사이좋구나."

"그렇지- 뭐, 악연이지만 말야!"

"아하하…."

 

웃음으로써 쑥스러움을 떨쳐내려 노력하며, 미카도는 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의 키다마저 약간 붉어져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이자미카의 경우>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먹구름이 비를 뿌리고 있는 탓이다. 미카도는 약간 열린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빗소리와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학급일지의 내용을 메꿔나갔다. 학급위원의 일이 조금 쌓여있어 그것을 처리하고나니 어느샌가 시간이 상당히 지나가버려, 아이들의 대부분이 하교해버린 학교에는 전체적으로 한 꺼풀의 침묵이 감겨져있었다. 평소에는 왁자한 학교도 사람만 없어지면 이렇게나 조용한 장소가 되는구나. 그런 감상을 느끼며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느긋하게 펜을 움직이고 있던 미카도는 멀리서 복도를 걸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복도쪽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가 물건을 놔두고 간 걸까.

복도를 걸어오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나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카도는 다시 학급일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2교시 담당 선생님 성함이…."

 

드르륵.

 

"미  카  도  군ㅡ."

"긴다이치 미카도… 얼레?"

 

펜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교실의 앞문에 서있는 오리하라 이자야. 예상치 못한 전개에 미카도가 멍해져있는 사이 교실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온 이자야는 미카도의 바로 앞자리에 있는 걸상을 빼내 앉았다. 드르륵하고 걸상이 나무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고, 의자에 반대로 앉아 등받이 부분에 두 팔을 걸터올린 이자야는 신발로 교실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도 오랫만이네- 반가운 기분이야."

"…이자야씨? 어째서 여기에 계세요?"

"비가 오잖아? 미카도군에게 우산씌워주려고."

 

이자야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 쥐어진 우산을 들어올렸다. 이자야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않게 화사한 노란색을 띄고있는 그 우산을 실로 자랑스런 표정으로 들고있는 이자야를 바라보다가, 미카도는 이걸 말해도 괜찮은걸까 싶은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전 우산 들고왔는데요."

"알아. 하지만 보여줄래?"

"…? 보여드리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미카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그럭저럭 오랫동안 써 온 물건이라 손잡이부분이 약간 닳아있는 검청색 우산이었다. 이자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우산을 받아든 다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뒷편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미카도가 여전히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이자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미카도의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멈춰선 이자야가 빙글 몸을 돌렸다. 한 손에는 방금 전 미카도가 건넨 우산이 아슬하게 붙잡혀있었다.

 

"우선, 나는 미카도군을 때리는 취미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네?"

"-대신에 이걸 취미로 할래."

 

툭, 하고 이자야의 손끝에서 우산이 떨어진다. 그 소리와 이자야의 대사, 바닥에서 튕겨오르는 모습이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든 미카도가 눈꺼풀을 깜빡거린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던 머릿 속에서 문득 어떤 기억이 섬광처럼 치고 올라왔다. 그것은 류가미네 미카도가 이 라이라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길거리에서 일어났던 사건. 그때와는 아이템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전개방식이 비슷한 현재 상황에 당황한 미카도가 의자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이자야를 말리려했지만-

 

"…이자야씨, 잠깐 기다려주세ㅡ"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성대하게 한 발 늦고 말았다.

 

=

 

그렇게 얼마간 이어지던 처절한 파괴의 메들리가 끝난 뒤, 한눈에 보기에도 형태가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우산을 교실 한쪽 구석으로 냅다 걷어차버린 이자야가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큼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질렸어. 관둘래."

"………."

 

미카도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교실 한쪽에서 침묵하고 있는 자신의 우산(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딱히 애착이 있었다거나 얽힌 추억이 있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아끼던 우산이었는데. 조금 우울해진 미카도가 한숨을 내쉬는 동안, 어느샌가 미카도의 앞 자리로 되돌아온 이자야가 걸상의 등받이에 두 팔을 올린 채 미카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카도군."

"…무슨 일이신가요."

"우산, 없어졌네."

"그러게요. 이자야씨가 부숴버렸네요."

"같이 쓰고갈래?"

 

그 질문에 미카도가 대답을 보류하자 이자야가 그 위에 우산을 턱하니 올려놓았다. 이자야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노란색의 접이식 우산. 그리고는 마치 대답을 재촉하듯이 우산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카도는 학급일지의 마지막 칸을 채웠다.

 

"아니라고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것도 마저 부술거야."

"부술거면 차라리 저 주세요."

"나랑 같이 쓰고가면 줄게."

 

미카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셨나요?"

"미카도군은 노란색이 어울리잖아."

 마지막의 대화는 조금 핀트가 맞지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뭐, 상관없겠지.

 

"그럼 현관에서 기다리세요. 이거 갖다놓고 갈테니까."

"싫어. 미카도군이랑 같이 갈건데?"

"………마음대로 하세요…."

 

빗줄기는 당분간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시즈미카의 경우>

 

역시 비가 올 것 같은 상황에서 다른 곳에 들리는게 아니었어.

 

미카도는 그런 생각을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으며 비 내리는 거리를 달렸다. 내렸다 멈췄다가를 반복하던 변덕스러운 빗줄기는 미카도가 서점에 들어가기 이전보다 훨씬 굵어진 채 거리에 쏟아지고 있어서 빗방울에 맞은 웃 아래의 피부가 따끔거린다는 착각이 일 정도다. 비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달리다 다른 사람과 두어번 정도 부딪칠 뻔한 미카도는 이대로 갔다간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와 부딪치겠다 싶은 마음에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비를 피할만한 장소를 찾아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부연 물안개가 끼어있는 주변에는 마뜩찮은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초조해진 미카도는 임시대체용 가방으로 머리를 가린 채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어떤 골목길 안쪽에서 비교적 비에 젖어있지 않은 벽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후아… 살았다."

 

살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성급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비를 있는대로 뒤집어 쓴 바람에 교복의 상하의는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상태고 설상가상으로 오는 길에 두어번 정도 물웅덩이를 밟아버린터라 운동화 속에도 빗물이 그대로 들어가버려 질퍽질퍽하기 짝이 없다. 내일 아침까지 제대로 말릴 수 있을까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가리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미카도는 어디선가 담배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누군가가 버린 꽁초의 담배불이 온전히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 분명 이 근처에서 누군가가 피우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혹시 불량배가 근처에 있는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슬그머니 옆쪽을 돌아본 미카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흐겍…."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황급히 양손으로 막는다. 그래도 반쯤 흘러나간 목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어서 그 소리를 들은 남자-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이쪽을 흘끗 돌아보는 것까지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말 그대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침묵 속에서 한동안 그야말로 비에 젖은 생쥐꼴인 미카도를 바라보던 시즈오는 다시 비오는 거리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제서야 간신히 입을 막은 손을 떨어뜨린 미카도는 갑자기 코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담배냄새를 맡고 기침을 내뱉었다.

 

"콜록, 콜록… 콜록!"

 

…그것도 그냥 한번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기침이 끈질기게 두번이고 세번이고 이어지는 바람에 종국에는 아예 시즈오쪽으로 등을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겨우 호흡을 안정시킨 미카도는 다시 벽에 등을 기대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 순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담배를 물고있던 시즈오의 입에서 담배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미카도는 뒤이어 그 손에 휴대용 재떨이가 들려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담배를 전부 피운걸까, 아니면 혹시 자기때문에 일부러 담배를 꺼준걸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머뭇머뭇 시즈오를 관찰하던 미카도는 시즈오가 그 담배 한 개비를 꺼내려다가 그만두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 사람은 자신때문에 일부러 담배를 끈 것이다!

 

"저어… 죄송합니다."

"…됐어, 어차피 피울 생각도 없었으니까."

 

방금 전 담배를 꺼내려고 하다가 멈춘 행위와는 모순되는 행동이지만 미카도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았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 침묵이 흐르고, 이전과는 달리 쉽게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빗줄기를 올려다보던 미카도는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보니, 너 전에 이자야 녀석이랑 같이 있었지."

"네? …아, 네…."

"왠만하면 그런 녀석이랑 가까이 안 지내는게 좋다."

"…알고있어요…."

 

알고있지만 어째서인지 그쪽에서 미카도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는게 문제다. 거의 언제나 자신의 하교길에 얼굴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일전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자주 가는 서점 안에서 자신을 향해 반갑게 웃어보이는 이자야 때문에 심장이 내려앉을뻔했던 기억을 회상한 미카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시즈오는 아무 말 없이 그런 미카도를 묵묵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빗줄기는 점차 수그러들었고, 이 정도라면 얼마 안 있어 비가 완전히 멈추리라는 생각에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손에 든 미카도는 교복의 상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떠올리고 서둘러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끄집어냈다. 그 폭우 속에서 교복 주머니안에 들어있었을 뿐인데도 휴대폰은 표면에 약간의 습기가 찼을 뿐 대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였다.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미카도가 문득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느낀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시즈오가 입을 열었다.

 

"그거, 잠깐 줘 봐."

"에, 에…."

 

무슨 의도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거절해도 의미가 없다. 미카도는 그저 그가 자신의 휴대폰을 부술 생각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빌면서 시즈오의 손에 자신의 휴대폰을 올려놓은 다음 그가 무엇을 할 지 가슴 졸이며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카도의 긴장어린 시선과는 달리 시즈오는 휴대폰의 자판을 몇 번인가 누르고는 휴대폰을 도로 미카도에게 돌려주었고, 그 화면에 찍혀있는 일련의 숫자를 본 미카도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숫자들은 마치 누군가의 휴대폰 번호처럼 일렬로 늘어서있었다.

 

"…다음에 또 그 이자야놈이 보이면 연락해라. 바로 날려버리러 갈테니까."

"아… 가, 감사합니다."

 

미카도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시즈오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설레설레 저어보이고는 이제 완전히 빗줄기가 그치기 시작한 거리쪽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그가 걷는 방향을 따라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미카도는 그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오의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한 뒤 천천히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비가 그친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