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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고스트 메신저

[꼬강강림(투림)]비어있었다

-별다른 대사표시가 없습니다.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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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한데.

뭐가요?

이 어항, 아무것도 안 들어있잖아.

 

강림은 샤프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흘끗 어항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요상한 복장(그는 그것이 전투복이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강림이 보기에는 굉장히 요상했다) 대신에 셔츠와 바지만을 입고있는 강림도령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어항을 들여다보는 그의 뒷모습에 짧게 혀를 차는 소리를 던진 뒤, 강림은 다시 책상 앞에 펼친 숙제로 정신을 집중하며 짧게 대답했다.

 

그게 뭐요.

뭔가를 키우려고 놔둔거 아냐?

그거 원래부터 있던건데요.

근데 왜 안 키워?

귀찮아서.

 

반쯤은 진심인 대답. 그와 동시에 뚝하고 부러져버린 샤프심을 두번 정도 눌러빼내던 강림은 그전에 그렇게 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해 얼굴을 들이미는 물고기형 영충을 발견하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영충의 얼굴로 샤프의 끝부분을 들이댔다. 영혼이니 물질적인 공격에 타격을 받을리도 없건만 야단스럽게 양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뒤로 도망친 영충은 노선을 바꿔 어항을 들여다보고있던 강림도령의 등 뒤로 숨었다. …어째 저 아저씨가 온 다음부터 이 집에 있던 영충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저치에게 몰려간단말이야. 사실 제일 가까이해선 안되는게 바로 저 녀석일텐데. 강림이 그런 생각을 하고있자니 자신의 배쪽으로 숨어든 영충을 발견한 그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너는 이미 이 녀석들을 키우는 셈인가.

…누가 그딴걸 키운데요?!

왜, 귀엽잖아.

그거 아저씨가 할 대사가 아닌것 같거든요?

이게 자꾸 누구더러 아저씨래?

 

울컥한 모양인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강림이 채 반응할 사이도 없이 그의 머리에 가벼운 꿀밤을 먹였다. 덕분에 아까 전에 뽑아낸 샤프가 또 뚝 부러지면서 인내심의 끈도 같이 끊어진 강림은 그가 때리는 바람에 욱신거리는 정수리를 한 손으로 감싸안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림도령을 향해 소리쳤다.

 

아, 아저씨니까 아저씨라고 하지!!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 어항에 집착하는건데!! 사실은 자기가 뭐 키우고 싶어서 그러는거 아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울컥해서 내뱉는 말은 거의 척추반사에 가깝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마음에 없는 말일수록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거나 상처를 후벼파는 등의 부가효과를 낳아버리는 일이 잦은 법인지라, 이성이 끊어진 상태에서 소리쳤던 강림은 강림도령의 표정이 예상 외로 크게 흔들리고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수업시간에 갑자기 불려서 얼결에 찍은 답이 정답인 때와 같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 기분은 약 콤마 3초만에 만면에 떠오르는 비웃음으로 모조리 승화되었지만.

 

뭐야. 찍은건데 진짜에요?

시, 시끄러!! 그게 뭐가 나쁘냐!!

푸하하, 아저씨 진짜 웃긴다!!

웃기긴 뭐가 웃겨!!

 

속내를 들킨게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는지 그는 얼굴을 붉히며 숙제도 내팽개치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강림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딴에는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웃음을 그치게 만들 속셈이었던 것 모양이었지만 이미 스위치가 들어가버린 강림은 웃음을 멈추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웃어제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창피함이라기보다 분노로 얼굴을 물들여가던 그는 이윽고 강림이의 목을 졸라버리려는 듯이 팔을 뻗었지만 그보다 먼저 눈치를 채버린 소년이 미꾸라지처럼 몸을 빼내버리는 바람에 강림도령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웃음소리가 궤적을 그리며 울려퍼졌다.

 

이 꼬맹이가 진짜!!

분하면 잡아보시던가-

 

강림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 넣어두고있던 소울 폰을 잽싸게 꺼내들었다. 뒤를 돌아본 그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장 안색을 바꾸며 이쪽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보다는 강림이 버튼을 눌러버리는 것이 먼저였다.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조금 전까지만해도 강림의 방안에 있던 강림도령의 모습이 사라졌고, 화면에 찍힌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던 강림은 문득 바람이 창문을 덜컹이며 흔드는 소리를 듣고 흠칫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약간 어질러진 자신의 책상과 난리통 와중에 흐트러져버린 침대시트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방안에 있던 영충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텅 빈 어항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쩐지 멍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림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부들부들 몸을 떠는 소울 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아랫층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그것을 침대로 내던지고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부우웅, 부우웅거리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방에 울려퍼졌다.

 

=

 

강림이의 반에는 양어장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둔 아이가 있다. 부모의 직업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등학교의 묘한 규칙에 따라 금붕어나 열대어를 키우려고하는 아이들 몇몇이 그 아이를 따라 돌아간 뒤 다음날 아침에 자신이 키우기로 한 물고기 사진을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또 그 본인이 이번에 자신의 양어장에 새로 들어온 물고기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물론 물고기는 커녕 일반적인 동물을 키울 생각도 없었던 강림은 교실 뒷자리에서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지만….

 

퐁당, 하는 물소리와 함께 금붕어 몇 마리가 어항속에 사뿐히 내려섰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가벼운 우려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한번 스위치를 넣자 보글보글거리며 자그마한 산소방울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산소공급기의 모습과 다소 살풍경한 어항 속을 헤엄쳐다니는 색색의 금붕어들을 바라보던 강림은 슬쩍 어깨를 으쓱이고는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전원이 꺼진 채 침묵하고있는 소울 폰을 쥐어올리고, 다시 전원을 넣은 다음 카메라가 어항쪽을 향하도록 세팅한 뒤 버튼을 클릭. 단순한 동작과 함께 바깥으로 튀어나온 강림도령은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풀썩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된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리가 풀려서 나와요?

아무것도 없는데에서 그냥 있기만 하는게 얼마나 기운빠지는지 네가 알아?

모르는데요.

이걸 그냥… 응?

 

인상을 찌푸리고있다가 뒤를 돌아본 강림도령의 표정이 단숨에 바뀐다. 자신에 대한 분노도 잊어버린 듯이 어항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던 그가 어항 표면에 양손을 대고 얼굴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뒤에서 죽 지켜보던 강림은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리는 한숨을 내쉰 뒤 양어장에서 받았던 금붕어 사료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쥐고 걸음을 옮겼다. 강림도령은 이마가 어항 유리에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안을 헤엄치는 금붕어들을 눈으로 쫓고있었다. 어찌나 집중하고있었던지 강림이가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그의 머리 위에 얹어버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였다.

 

금붕어 처음 봐요? 앞으로 얘네 먹이는 아저씨가 주세요.

……뭐? 네가 산거잖아.

아저씨때문에 산거니까 아저씨가 책임져야죠! 아니면 굶겨죽이시고 소환수 삼으실래요?

말 한번 이쁘게 하는구나. 그래, 내가 주면 될 거 아냐!!

 

그렇게 외치면서 강림의 손에 의해 자신의 머리에 올려져 있던 비닐봉투를 나꿔채간 그는 안에 들어있던 포장지를 뜯어내어 안에 들어있던 사료를 살짝 손으로 덜어냈다. 동작이 매끄러운 것이 아주 싫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어항 안으로 먹이를 뿌리면서 즐거워 보이기까지하는 그의 모습을 슬쩍 흘겨보던 강림은 그에게서 등을 돌린 채 가방 속에 담겨있던 숙제를 꺼내 책상으로 던졌다. 조금 있다가 아랫층의 할아버지와 업무를 교대해야하니 간단한 숙제는 미리 끝내두는 편이 차라리 속편했다. 그렇게 강림이가 샤프를 손에 쥐는 것과 동시에 어항에 먹이주기를 끝낸 강림도령이 말했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분거냐?

…아까 제 말 안 들었어요? 아저씨가 하도 졸라서 그런거잖아요.

나는 조른 적 없거든?

아무튼 지금 제일 좋아하는건 아저씨 같은데요.

시끄러. …………근데 잉어는 없었냐?

잉어덕후같으니.

꼬마야, 맞을래?

 

우당탕, 하고 한바탕 방 안이 소란스러워진다. 어제의 경험 때문인지 냉정하게 거리를 재며 이쪽을 노려보는 강림도령을 피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선 소년은 그의 공격을 피해 좁은 방 안을 달리며 생각했다.

 

…이건 전부 당신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미 한없이 익숙해져있던 '비어있는 것'에 대한 새삼스런 허전함을 느낄 일도 없었을테고 그 허전함으로부터 전해지는 고독감에 뒤늦게 휩싸일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대한 압박감에 짓눌려버릴 일도 없었다. 설령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도 거기서 비롯된 여러가지 감정에 심장이 사로잡혀버릴 일도 없었다. 당신이, 당신이 없었더라면.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마음조차 알지 못했을텐데.

 

그러니까 하다못해, 이 정도 심술은 부려도 괜찮겠지.

 

…꼬마, 방금 뭔가 말했냐?

아저씨가 잘못 들은 거겠죠.

 

강림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더 이상 비어있지않은 등 뒤의 어항에서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물방울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