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 아오구 플래그 관련 단서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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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짱이 미쳤다.
아니지, 이건 미쳤다기보단 착란인가.
자칭 카노 씨는 명백히 눈의 빛을 잃은 아소 코지의 코앞에서 손을 흔들어보다 그만두었다. 사방이 암흑으로 꽉 차버린 탓도 있지만, 분명 지금 아소 짱의 눈에는 현실의 물건이란 무엇 하나 제대로 비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상대를 죽이겠다고 덤비거나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후자는 일단 그렇다쳐도 전자라면 팔을 부러뜨려서라도 조용히 시켰겠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한다. 지난 몇 년간 지고세포의 연구에만 골몰하며 지내온 카노 아오구, 본명 아오기 카나오는 착란에 빠진 사람을 다독이는 방법 따위 모른다. 지고천 연구소 내에서 직원 멘탈 케어 프로그램이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딱히 관심이 가지도 않았으므로 참가하지 않았다. 누가 들으라고 권유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카운셀리의 '카'말고는 모른다. 그나마 한 글자라도 아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오기 '카'나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소 짱이 착란에 빠져서 뭔가를 중얼중얼하고 있어도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어쩜 좋아~ 위기일발이네, 아소 짱!"
"…도망가. 껍데기 안쪽이 우주의 말랑한 부분."
"하지만 카노 씨는 아소 짱의 든든한 아군이니까~ 아소 짱이 얼마나 기분나쁜 소리를 하던 도망가지 않고 곁에 있어줄게! 아, 혹시 감동해버렸어?"
"세상의 틈바구니는 레몬색. 쭉 뜯어서 갈변한 천조각?"
"그래그래, 착하게 손잡고 갈까?"
안 그래도 말도 없이 여기저기 중얼중얼 쏘다니려던 것을 팔로 꽉 붙들고 있던 참이다. 그 자세 그대로 손을 잡으면 미지근한 온기와 땀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소 짱, 긴장했어? 농담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말그대로 정신나간 어휘일 뿐이라 다소 흥이 식는다. 그럼에도 카노 아오구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앞을 비췄다. 무너진 건물 잔해나 바닥에 퍼진 피웅덩이가 빛을 받아 밝아졌다.
"사락사락 전기충격."
"정말이야. 전기충격기가 있으면 빠직! 하고 아소 짱 머리에 제정신이 돌게 해줬을텐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지하 2층 서쪽 복도에서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면 세포를 투여받은 직원들이 지내던 간이생활처리실이 있으니 거기서 약물을 좀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파편을 피해 나아가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뒤를 돌아본 아오기 카나오는 동굴처럼 뻥 뚫린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아소 코지를 발견했다. 그 입술이 중얼중얼 무언가를 뱉는다.
"개."
"또 그 소리야, 아소 짱? 아무것도 없는걸 직접 눈으로 봤잖아."
"개, 멍멍."
손을 잡아끌려고 해도 오히려 동물관리실 쪽으로 다가가려 한다. 아소 짱, 정말 성가신 타입이구나. 아오기 카나오는 그렇게 말하곤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스마트폰의 불빛 속에서 휘청휘청 셔터 쪽으로 다가간 아소 코지가 한쪽 뺨을 셔터에 꾹 눌렀다. 꼭 뭔가를 들으려는 듯이, 혹은 뭔가가 들려온다는 듯이.
"카노 씨 애 돌보기는 질색이라구~"
되는대로 주섬주섬 가운을 벗는다. 뒤이어 스마트폰을 거꾸로 바닥에 놓은 카노 아오구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기이한 조명 속에서 아소 코지의 머리에 제 피투성이 가운을 뒤집어씌웠다. 불시에 머리부터 천으로 감싸이게 된 아소 코지가 불투명한 시선으로 아오기 카나오를 바라보았다.
"짠~ 이러면 이상한 소리 안 들리지? 이상한 것도 안 보이지? 이대로 가자!"
"유채꽃."
"여기 그런 건 없어~ 아소 짱. 알겠지? 발을 멈추지 마, 돌아보지 마, 생각하지 마."
손가락을 세 개 접으며 유쾌하게 선언하고 스마트폰을 다시 주워올려 길을 나선다.
어둠 속으로 향하는 그 걸음을, 아소 코지는 천천히 따라왔다.
제시 문장 : [발을 멈추지 마, 돌아보지 마, 생각하지 마.] By 콩나물님
문장 제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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