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론즈브라우라는 나라에 셋째 왕자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룬왈드.
그 왕자님에게는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가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죽음에 몹시 매료되어있다는 것.
둘은, 그에게 정해진 미래를 보는 힘이 있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자의 잔인한 성품만 신경쓰느라 그의 예지력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왕자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보았던 일이 일어나면 일어났으려니, 하고 무심하게 넘길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두고 역시 기분나쁜 왕자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분좋은 꿈을 꿨습니다.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검과 총을 쥐고 이 세상의 것이라 믿기 힘든 요마들을 베어넘기고 또 베어넘기는 꿈이었습니다.
주변에는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요마에게 목이 날아가거나 심장이 먹히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죽음이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칼로 베어도 베어도 끝나지 않는 죽음이었습니다. 서늘하게 자신의 목줄기를 노리는 죽음이었습니다.
꿈에서 깬 왕자는 달아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문지르며 그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기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왕자는 답답하기만 한 왕성을 벗어나 소용돌이의 요마를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레지멘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입대 허가를 받은 날에는 늘상 침묵하던 그답지 않게 소리 높여 기뻐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체 모를 고양이를 대동하고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왕자님은 한없이 선명하고 잔인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은 레지멘트가 사라지는 꿈이었습니다. 소멸하는 꿈이었습니다.
소용돌이를 없애기 위한 중요한 작전을 펼치던 작전부대는 소멸. 남은 인원은 요마에게 먹히거나 기적적으로 도망쳐 살아는 꿈.
실로 잔인하게도, 왕자님은 살아남는 쪽에 끼인 채 왕국까지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꾸었던 날 아침, 왕자님은 울지도 체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아, 이렇게 되버리는건가, 한번 곱씹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교관에게 잠깐 말을 걸어보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머리를 두드리고 떠나갈 뿐.
동기에게 말을 해보아도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며 등을 한바탕 얻어맞았을 뿐.
결국 그는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이, 무언가에 휩쓸려가듯 왕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깊은 밤, 여로의 도중에 몸을 누인 왕자님은 또 꿈을 꾸었습니다.
돌아간 왕성에 두 형님은 없습니다. 병든 선왕을 대신해 왕좌에 앉은 그를, 가신들은 결코 환영해주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제국에서 쏘아올린 전쟁의 불꽃이 일렁입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으로부터 연합국의 지원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검을 쥐고 그 불꽃을 향해 나아가고, 나아간 다음, 사지가 갈갈이 찢겨 너절한 몸뚱이만 남아 성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런 것인가.
눈을 뜬 왕자님은 울지도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왕자님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거동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사라진 아랫턱에서 피거품을 부글부글 토해낼 수 있을 뿐입니다.
몸의 통증을 막기 위한 약물은 왕자님을 끝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빠뜨렸습니다. 거기서 왕자님은 자신의 최후를 보았습니다.
우선 그의 하나 남은 신하가 그에게 철로 된 사지를 선사합니다. 그는 그 사지를 이용해 가신단을 죄 죽여버리고는 유폐당합니다.
유폐당한 그를 죽이는 것은 그의 어머니인 마루라입니다.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사이즈의 나이프가 그의 몸을 유린하면 그걸로 끝인 것입니다.
이따금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아니, 시작하지도 않은 듯한 현기증이 왕자님을 꾹 내리눌렀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왕자님은 그저 침대에 누워 몽롱한 정신으로 현실이 될 꿈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왕자님은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기계의 눈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몹시 기괴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그 손으로 직접 목숨을 끊어주겠지요.
유감은 없었습니다. 되려 어서 해치워줬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설핏 의식을 잃으면, 이제와 의미도 없을 과거의 일들이 자꾸만 부글부글 솟아오릅니다.
그것은 과거 레지멘트에 있었던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일이니 이제와 현실이 될리도 없고, 그러니 의미도 없는 꿈들.
그런데도 떠오릅니다. 그 날의 대화, 실없던 웃음, 토해내던 숨소리, 요마를 베어내던 감촉과 말없이 내리쬐이던 햇빛. 그 사이의 얼굴들.
그룬왈드는 삐걱이는 눈꺼풀을 깜박이며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 못할 정도로 범람하며 번뜩이는 조각들을 응시했습니다.
이따금 그들이 정말로 자신과 접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현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같았습니다.
그런걸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왕자님은 모릅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왕자님은 계속 계속 이름도 모를 그것들을 응시하며 어머니가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피거품을 토하면서, 그르렁대면서.
이윽고 문이 열립니다. 왕자님은 불현듯 디 아이 작전에 나가기 직전 자신을 마구 쓰다듬던 교관의 목소리를 떠올렸습니다
(걱정마. 이런 힘든 훈련이란 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전부 좋은 ……거리가 되는 법이라고. 알겠어, 그룬왈드?)
추억……………?
언제나 미래만을 보고 체념하며 살아왔던 왕자님에게는 너무나 설익은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여지껏 기억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왕비는 조용히 걸어들어와 몇 마디의 말을 건넵니다. 왕자님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습니다. 추억, 추억, 교관의 말이 거미줄을 칩니다.
늘어진 거미줄에 기억이 걸려서 반짝거립니다. 같은 옷을 입고, 등을 맡긴 채, 함께 싸웠던 기억들. 목소리. 그건, 그것은 이다지도….
왕비는 몸뚱이만 남은 가슴에 나이프를 꽂았습니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왕자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터진 핏줄에서 새어나온 붉은 물은 눈가를 타고 죽 흘러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