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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논커플링]11월, 사자자리 유성우가 서글프더라도

세포신곡 자유주제 합작 : https://cell-of-empireo-collaboration.postype.com/series

합작 주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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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금세기 최초의 우주 쇼가 펼쳐질 전망입니다. 매년 11월 17일과 18일 사이에 찾아오는 사자자리 유성우가 그 주인공인데요. 일본 국립천문대의 발표에 따르면 오는 17일 저녁 7시와 18일 새벽 2시에 각각 유성우의 극대기가 관측될 것으로 예상되며……」

 

일기예보를 듣기 위해 미리 틀어놓은 TV 뉴스에서 캐스터가 열띤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아토 하루키는 된장국과 밥, 간단한 채소 반찬 몇 가지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를 하며 멀리서 들려오는 뉴스 캐스터의 말을 경청했다. 평소 같으면 그리 신경 쓰지 않을 방송의 내용이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난 밤 어느 도로에서 추돌사고가 있었고 어디서는 새로운 법률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고, 하는 소식을 전하던 뉴스에서 별스럽게 밝은 목소리로 유성우 이야기를 하는 탓인지도 몰랐다.

 

「모쪼록 21세기의 첫 번째 유성우를 기대해주세요!」

 

하루키는 문득 부엌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았다. 오늘은 2001년 11월 12일 월요일.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면 손가락 여섯 개가 접힌다. 하루키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싱크대 수도에서 흘러나온 물이 둥근 나무그릇 안에 찰랑찰랑 차올랐다.

 

* * *

 

“유성우?”

“응, 21세기 최초의 유성우라던데.”

 

방과 후 청소시간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새로운 달이 찾아올 때마다 분단별로 청소담당 구역이 바뀌기에 인적 드문 음악실 앞 복도를 빗질하게 된 하루키는 자신과 짝을 지어 같이 청소를 하고 있는 루이에게 아침에 본 유성우 이야기를 꺼냈다. 환기를 위해 어디라 할 것 없이 활짝 열어둔 복도 창문으로 찬바람이 밀려들어온다. 하루키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복도 한쪽에 모아둔 먼지를 쓸어 담았다. 루이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러고보면 타구리도 오늘 아침에 유성우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었지.”

“헤에, 타구리가 별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그런 낭만적인 녀석이 아니다. 단순히 「21세기」 「첫」 「우주쇼」 라는 단어에 흥분한 거겠지. 그럴만한 나이니까.”

“루이,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그럴만한 나이 아냐?”

“그건 너도 보러가고 싶다는 뜻인가?”

 

어, 하고 하루키가 고개를 든다. 상대적으로 무게가 나가는 청소도구인 물걸레를 들고 빗질이 끝난 바닥을 닦아내던 루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닦인 안경 너머의 시선은 담담하여 속마음을 잘 알 수 없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진다. 하루키는 그걸 정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서있다가 가볍게 웃었다.

 

“왜, 데려가 주려고?”

“못할 건 없지.”

“응?”

“마침 17일은 토요일이지 않은가. 우리 집은 통금 시간이 있긴 하지만 친구와 같이 별을 보러가고 싶다고 하는데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꽉 막힌 곳도 아니다. 타구리도 같이 간다고 하면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지.”

“으응?”

“유성우 관측은 주로 도시에서 떨어진 야산이나 평원에서 이뤄진다더군. 날이 추울테니 따뜻한 방한복과 장갑, 목도리 등을 챙기는 편이 좋아. 운전은 아버지에게 부탁하지. 요샌 별다른 일정이 없다고 알고 있으니 수락하실 거다.”

 

그냥 장난으로 던진 말이 갑자기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돌아와, 그대로 직격당한다. 비 오는 도로에서 얼쩡대고 놀다가 갑자기 지나가던 차가 일으킨 물보라에 폭삭 젖어도 이 정도로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여태껏 접해본 적 없는 전개 앞에서 아토 하루키의 사고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아, 어, 그치만. 그치만 말야? 하루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말을 버벅였고 오토와 루이는 무엇도 재촉하지 않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힘차게 공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말 해도 괜찮아?”

“안 될 건 없지. 이런 건 일반적인 ‘주말 약속’ 아닌가?”

 

하루키는 일반적인 ‘주말 약속’이 어떤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경험이 여러모로 부족한 탓이다. 다들 이렇게 하나? 그냥 따라가면 되는 건가? 하지만 다른 집 사람들이 다 같이 별을 보러 가는 자리에 생판 남인 내가 따라간다는 건 이치에 안 맞는 소리 아닌가?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과 가정과 예상이 휘몰아친다. 그리하여 역시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났을 무렵이었다.

 

“하루키, 넌 유성우를 본 적이 있나?”

“……없어.”

“하늘에서 유성이 비처럼 떨어지는 건 꽤 장관이라고 하더군. 기대해도 좋을거야.”

 

아냐, 됐어. 난 별에는 관심도 없는걸.

어째서인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정은 차차 조율하도록 하지. 넌 일단 따뜻한 옷과 모포부터 준비하도록.”

“혹시나 해서 묻는데 날 보온팩이랑 같이 침낭에 통째로 넣어버릴 생각인 건 아니지?”

“그거 좋은 아이디어군.”

“야.”

 

빗자루를 들고 있는 손으로 장난스레 루이를 툭 치면 상대방이 픽 웃어보인다. 운동장에서는 누가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지 배가 찢어져라 웃는 소리와 함께 누구인지 모를 선생님이 ‘이 녀석들!’하고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날은 쌀쌀하지만 이토록 평화로운 오후 4시에, 친구와 음악실 앞 복도에서 유성우를 보러갈 약속을 하고 있다. 그 사실 하나로 가슴이 울렁인다. 손을 공연히 쥐었다 피고 싶어진다. 소리 내어 웃고 싶어진다. 갑자기 뚜렷한 목적이라곤 없는 부산스런 행동을 취하고 싶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청소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뒤에야, 아토 하루키는 자신이 들떴음을 알았다.

 

* * *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빗줄기가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까지 이어지던 비는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에는 말끔하게 그쳐, 오후가 다되도록 새파란 초겨울의 하늘이 잘 닦인 거울처럼 빛났다. 드높은 푸른색에 흰 얼룩 몇 조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하루키가 창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정원을 쓸고 있던 아토 토모코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가니, 하루키?”

“네. 슬슬 나가면 오토와 씨의 차가 딱 맞게 도착할 것 같아요.”

“그래그래, 하루키에게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이건 오토와 댁 아버님에게 선물이라고 하고 드리렴. 알겠지?”

 

아토 토모코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미는 갈색 종이봉투 앞에서 하루키는 잠시 침묵했다. 돌이켜보면 하루키가 기억하는 한, 자신과 할머니가 하룻밤 이상 서로 떨어져 시간을 보낸 일은 없다. 그 객관적인 사실이 이제와 새삼스레, 친구와 함께 별을 보러 간다는 설레임과는 전혀 다른 비중으로 하루키의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없는 사이에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눈치 채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그런 아이의 불안감을 마치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토 토모코가 작은 손을 맞잡았다.

 

“걱정 말고 다녀오렴.”

“할머니….”

“모처럼의 떠들썩한 행사인데 친구랑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니. 돌아오면 어떤 풍경이었는지 꼭 얘기해주렴. 기대할 테니까.”

“……네, 다녀올게요.”

 

하루키는 자신이 맨 가방과 두꺼운 상의, 그리고 오토와의 아버지에게 건넬 선물까지 꼼꼼히 체크한 다음 현관문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자 금새 몸을 감싸는 차가운 공기가 이제부터 있을 일을 예고하듯이 마음을 간질거리게 했다. 기분 탓인지 내딛는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게 이어진다. 약속한 대로변에 도착하여 손목시계를 보고서야 자신이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것을 알게 된 하루키는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헛기침을 하곤 뺨을 문질렀다. 얼마쯤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진회색 자가용이 다가오며 짧은 경적소리를 냈다. 뒤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키 형~!”

“타구리! 그렇게 몸을 내밀면 위험하잖아.”

“안전벨트 했으니까 괜찮아!”

“전혀 안 괜찮은걸.”

 

으히히, 하고 타구리가 웃는 사이 운전석 쪽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내렸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 오토와 루이의 아버지였다. 순간 인사를 드려야할지 선물을 먼저 드려야할지 망설이던 하루키는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묵직한 가방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그래. 준비 단단히 하고 왔구나.”

“이건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뭐? 하하, 그래. 고맙게 받으마. 일단 짐은 나한테 주고 타라!”

“어서 옵쇼!”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이 타구리가 차문을 열어젖힌다. 가방을 넘긴 뒤 종이봉투를 부스럭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하루키는 타구리를 가운데에 놓듯이 차 오른편 좌석에 앉은 루이를 발견했다.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 오토와 루이가 하루키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받아다 제 다리 앞 공간에다 놓는다. 그 사이 하루키가 밖에서 옮겨온 차가운 공기가 방향제 냄새가 은은하게 남은 차 안을 맴돌았다.

 

“조금 늦었군. 미안하다.”

“별로 안 기다렸는걸. 괜찮아.”

“타구리가 이것저것 가져가고 싶다고 소란을 피워대서 말야.”

“거기서 내 탓으로 돌리기 있어?!”

“아하하, 뭘 챙겨왔는데?”

“라디오랑 간식이랑 망원경이랑 천체지도!”

“별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도 말이지.”

“유성우나 별이나 그게 그거지!”

 

타구리는 아무래도 이번 유성우 관측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모양인지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아기 새처럼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같은 형제인데도 둘은 정말 다르구나. 국도를 타고 한창 이동할 무렵 하루키가 그렇게 말하자 타구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사람이랑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줘! 타구리, 방금 그건 무슨 뜻이지?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다 잘 어울려서, 하루키는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황급히 감췄다.

 

교외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것은 딱 저녁 여섯 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오후 7시의 유성우보다는 아무래도 새벽 2시가 더 뚜렷하게 보이죠.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숙소 인근에 마련된 야외 관측장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철조망이 둘러진 외길이니 헤맬 걱정은 없어요. 하지만 깊은 밤에는 위험하니까 반드시 어른과 함께, 손전등을 키고 이동하세요. 하루키는 바람 부는 방향에 있는 그 길을 바라보았다. 운동이라곤 하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 * *

 

알림이 울린다. 하루키는 자리에 누운 채 미간을 찌푸렸다가, 소리의 출처가 제 방의 시계가 아니란 걸 벼락같이 깨닫고 눈을 떴다.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오토와 루이가 알람을 끄고 협탁 위에 벗어두었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잠기운에 잠긴 목소리에 깜짝 놀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가 답했다. 새벽 1시.

 

제일 신나서 마지막까지 사부작거리던 타구리는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키는 크게 숨을 들이쉬다 내쉬며 자고 있는 타구리를 흔들어 깨운 뒤, 긴 기지개를 키며 단잠에 빠져있던 근육을 깨웠다. 새벽 유성우 관찰을 위해 오후 9시라는 이른 시간에 잠에 들어야 했던 몸은 오늘따라 왜 이리 제멋대로 구냐고 항의하는 것 마냥 찌뿌둥했다. 체온으로 딱 알맞게 데워진 침대는 벗어나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기껏 차를 얻어 타고 여기까지 와놓고서 그냥 침대에 있겠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지라, 하루키는 얌전히 밤공기 속에 양 발바닥을 내려놓았다. 오싹한 감각이 순식간에 몸을 타고 기어올라왔다.

 

낮은 속삭임, 옷을 갈아입는 소리, 점퍼의 지퍼를 당기고 장갑을 끼고, 살짝 건조한 공기에 기침한다. 따뜻하게 데워진 콘수프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의 문을 열면 낮과는 사뭇 다른 기색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에 단단하게 껴입은 옷가지가 눌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목도리와 장갑과 두터운 상의로 동그란 윤곽을 가지게 된 세 사람은 오토와 아버지의 인솔에 따라 야외 관측장으로 이동했다. 널찍한 평지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거나 누운 채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선객이 많구만.”

“금세기 최초의 유성우잖습니까. 자식분들이신가요?”

“예에, 막내 녀석이 보고 싶다고 어찌나 졸라대는지.”

“하하하, 오늘 밤은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완전 기대하고 있습니다!”

 

힘찬 타누리의 대답에 주위로 웃음이 번져나간다. 자연스럽게 오토와의 자식 중 한 명이 되어버린 하루키는 이걸 정정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농담처럼 받아넘겨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아 넉살 좋은 이와 오토와 겐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루이가 하루키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가자, 하루키. 타구리가 벌써 자리를 잡으러 갔어.”

“엇, 어어? 벌써?”

“그래, 벌써 저쪽까지 가버렸군.”

 

위험하잖아! 그런 말을 하며 쫓아가 보면 타구리는 용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거기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직 새벽 2시가 아니므로 하늘에서 총총히 빛나는 것은 별들과 달뿐이다.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로 옆에서 딱 하고 단단한 것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뒤늦게 셋을 따라온 루이의 아버지가 타구리의 이마를 때린 소리였다. 이마를 맞은 타구리가 볼멘소리를 내며 투덜거리는 동안 은빛의 넓은 돗자리가 펼쳐진다. 셋은 자신들의 신발로 돗자리의 각 꼭지점을 단단히 고정한 뒤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든든하게 입은 옷가지는 그대로 깔개가 되었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은 뒤 하늘을 올려다보면 주변에 자라나있던 나무들이 시야의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무엇에도 가로막히지 않은 밤하늘이 쏟아질 듯이 펼쳐진다. 어둠에 아직 익숙지 못한 눈동자는 바쁘게 초점을 맞춰가며 별을 보기에 가장 적합한 시야를 만들려 노력했다. 들이마시는 숨결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차가웠지만 신기하게도 달게 느껴졌다.

 

여름에는 대삼각형, 겨울에는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근데 그 별들이 어디에 있는 무슨 별이더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별은 멀고, 작고, 반짝인다. 그 빛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주위가 우주와 같은 색의 어둠에 잠겨, 한없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라디오! 옆에 누워있던 타구리는 짧은 소리와 함께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숙소를 나오면서 가져온 종이가방을 뒤적였다. 안에서 나온 것은 건전지를 넣으면 작동하는 휴대용 라디오다. 평소에도 자주 쓰는 모양인지 전원을 키고 주파수를 조정하는 솜씨가 아주 능숙했다.

 

“심야에도 라디오 방송을 해?”

“당연하지! 아, 여기 나온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타구리는 라디오를 셋의 머리맡에 놓고는 냉큼 자리에 누웠다. DJ와 게스트의 대화는 중간부터 시작되어 맥락을 잘 알 수 없었지만, 유성우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이야기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오늘 새벽에는 금세기 최초의 유성우인 사자자리 유성우가 찾아온다고 해요. 정말 특별한 날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닐까 싶은데요. 어쩌면 별을 기다리시면서 이 라디오를 들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낭만적이네요~ 요나카 씨는 유성우를 보신 적이 있나요?」

「네, 3년 전에 스케줄이 비는 틈을 타서 그 해의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러 갔었죠.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이렇게 스튜디오 안에 있어도 그때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답니다.」

「말하자면 20세기 마지막 유성우였군요.」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결코 닿을 수 않고, 어쩌면 먼 옛날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머나먼 별들의 빛이, 그날만큼은 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지요. 그건 아름다우면서도 섬찟하고, 슬프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습니다.」

「어쩐지 알 것 같아요. 지금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이 무엇을 하고 계시건, 한 번 쯤은 이렇게 상상해보시면 어떨까요. 유성우는 저 먼 하늘에서, 우주가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손을 흔들어주는 신호라고.」

「마츠키 씨가 멋진 말을 해주셨네요. 슬슬 유성우가 내릴 시간일까요? 아름다운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며 곡을 띄워드립니다. 바헬벨의 《캐논 변주곡》.」

 

바이올린 소리가 공기 중으로 미끄러진다. 그 순간에 하루키는 하늘을 가르면서 떨어져 내리는 첫 번째 빛을 보았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기에 눈꺼풀을 깜박인 다음 순간에는 사라져있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별이 꼬리를 끌며 떨어진 흔적이었다. 이어서 피아노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게 신호탄이 되는 것처럼 어딘가에서 환호 소리가 들렸다.

 

별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 * *

 

새벽 3시가 지나서야 잠들었기에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하루키는 크게 하품을 하고는 루이와 타누키와 함께 덮고 잠들었던 이불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 가득히 들어오는 햇살이 어쩐지 낯설었다. 옆을 돌아보면 곁에는 타구리만 있을 뿐이다. 또 루이만 먼저 일어난 건가. 하루키는 타누키의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상의를 걸친 뒤 문을 열었다. 루이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난간 앞에 서있었다.

 

“루이.”

 

부르면 상대방이 돌아본다. 하루키는 신발을 반만 꿰어 신은 채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바람은 차갑지만 해가 떠올라있는 덕인지 어젯밤처럼 매섭지는 않다. 잠옷 위에 두터운 상의만 걸치고 나온 모습을 본 루이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너 그러다 감기 걸린다.”

“날 얼마나 약골로 보는 거야? 이 정도는 괜찮아.”

 

하루키는 부러 힘을 주어 말하고는 루이가 서있는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슬쩍 올려다본 하늘은 푸른빛과 구름을 머금은 채 유성우가 언제 벌어졌냐는 마냥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멀리서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는 차들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장소만 아니었더라면 평소와 똑같은 아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제는 정말 굉장했지.”

“그래. 네가 말을 꺼내준 덕에 귀한 경험을 했다.”

“말을 먼저 꺼낸 건 타구리잖아.”

“결심하게 해준 건 너니까.”

 

하루키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 루이가 픽 웃는다.

 

“난 그렇게 동생을 위해주는 성격이 아니라고.”

“뭐라고 반응해주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넌 때때로 무척이나 간단한 것을 물어보더군.”

 

불어오는 바람은 맑다. 얼핏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 속에서 오토와 루이가 말했다.

 

“그냥 솔직하게 네 감정을 말하면 된다.”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나? 나는 너의 친구다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의외로 무거워서 좀처럼 혓바닥 위로 올라서질 못했다. 하루키는 루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긴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불어오는 바람이 드러난 발목을 휘감았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일단, 고맙다고 해도 될까?”

“앞으로 노력한다면.”

“노력해볼게.”

“좋아.”

 

아침 햇살은 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비추고 산자락 저 멀리 건물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하늘의 별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먼 풍경이었다. 어딘가의 나뭇가지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귄다. 뉴스는 어제의 유성우를 얼마나 자세하게 전해주었을까. 하루키는 오래된 책의 책등을 쓸듯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왠지 말야. 예전에도 그렇게 별을 봤다는 기분이 들어.”

“그래?”

“응, 기억이 나지 않는걸 보면 내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실수다. 이건 말하지 말 걸 그랬다. 하루키는 가슴이 꾹 눌리는 듯한 감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다함께 이번 유성우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어.”

“그것뿐인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장난스럽게 건네려던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는 숨을 들이쉰 채 오토와 루이를 바라보다가, 먼 풍경을 내려다보다가, 난간 위에 올려진 제 팔과 그 끝에 이어진 손등과 손가락과 손톱을 응시하다가.

 

주먹을 쥔다.

 

“미안.”

“사과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껏 이렇게 같이 와줬는데.”

“그렇다고 네 감정까지 강요할 수는 없지.”

 

햇빛이 환하다. 그래서인지 그림자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루키는 제 손가락에 잠긴 짙은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듯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언어가 서서히 스며 나왔다.

 

“어째서 괴로운지 모르겠어….”

“그럴 수 있다.”

“분명 즐거웠는데, 쓸쓸하고, 서글프고, 그립고, 그리워서.”

“그럴 수 있어, 하루키.”

“왜.”

 

“왜 나만 두고….”

 

말은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다. 난간을 붙잡은 채, 그 아래로 구겨진 몸 위로 내리쬐이는 햇살이 무상했다. 감은 눈꺼풀 너머가 속절없이 붉다. 하루키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냥 오지 않았더라면.”

“하루키.”

 

실핏줄이 퍼진 어둠 속에서, 곁으로 다가와 몸을 숙이는 기척이 느껴진다. 하루키는 차가운 쇠 난간에 이마를 기댄 채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여지껏 네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응.”

“그렇지만 어제의 유성우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응.”

“너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나?”

“…응.”

“그런가. 슬픔이 배인 것이라도, 아름다운 것을 거듭해서 보다보면 언젠가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있잖아, 여기선 괜찮아질 거라고 확실히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네 의지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치사하게. 하루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면 약간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오토와 루이가 있다.

 

“안 괜찮아지면 어쩔래?”

“그럼 다른 걸 찾아보지.”

“뭘로?”

“무지개라던가.”

“흐음.”

“오로라는 어때.”

“멀어.”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두 사람 분의 그림자가 나란히 늘어졌다가 숙소 문을 열고 나온 타구리의 부름을 받고 움직였다. 늦은 아침식사 메뉴는 아토 토모코가 보낸 잼과 빵으로 만들어진 토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