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잉 리퀘스트 글.
-막간 캐릭터(ㄴㅈ ㄹ)가 등장합니다.
이럴 줄 알았지. 아토 하루키는 천천히 생각의 결을 다듬으며 한쪽 발을 뒤쪽으로 뻗었다. 밤의 어둠이 완연한 하늘, 띄엄띄엄 놓여있는 가로등(심지어 하나는 깜박거린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공장부지의 뒷골목이란 도움을 요청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거친 숨을 내쉬는 남자가 서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그 사람의 손에 흉기가 들려있다면 안전성은 최소 허용치 아래로 빠르게 추락한다. 그러고보면 면식이 있는 얼굴이군.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차를 주차한 위치와 거기로 이어지는 최단 루트를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아토야마 씨군요."
"그래! 네놈의 빌어먹을 조사 때문에 가족을 잃은 아토야마다! 이름을 기억하는걸 보아하니 켕기는 구석은 있었던 모양이지!"
"몇 가지 정정하자면 사실관계를 숨기고 조사를 의뢰해온 건 당신이었고, 가족이 당신을 떠난건 당신이 가한 가정폭력 때문입니다. 더불어 저는 올바른 사회의 시민인지라 가정폭력범을 신고한 걸 실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름을 기억하는건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에게서 당신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자의식과잉도 이쯤 되면 웃을 수가 없네요."
"시끄러워! 뭘 주절거리고 자빠졌어 찢어죽일 놈이! 너 때문에 난 회사에서도 잘리고 애인도 도망가고 꼴이 말이 아니라고! 그 나불대는 혀를 갈짓자로……!"
"……쯧."
발치에 깡통 하나가 걸린다. 아토 하루키는 욕을 쏟아붓느라 정신없는 남자를 향해 빈 깡통을 차날리고는 허공으로 손을 들어 가볍게 까딱였다. 그것만으로 남자의 근처에 무성하게 자라나있던 들풀들이 순식간에 덩굴처럼 뻗어올라 남자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우선은 손목을 결박하고, 무릎께를 속박하여 이동의 자유를 빼앗는다. 그것만으로도 신체의 자유를 잃고 요란하게 쓰러진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을 벌렸다.
"뭐야! 뭐야 이거! 너 미친놈이야?!"
"누가 할 소리를."
남자를 속박한 것과는 별개의 덩굴이 천천히 뻗어나와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단단히 휘감는다. 인지를 뛰어넘은 풍경을 목격한 남자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가, 자신의 코 앞으로 다가온 아토 하루키를 발견하고 빠르게 핏기를 잃었다. 벌벌 떨리는 입술 사이로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이 자식, 입막음을 할 셈이냐!"
"미안하지만 당신같은 인간말종이 맞이할 결말은 법이 준비해두고 있거든? 지금 바로 경찰에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변명이라도 생각해보시던가."
"이익… 죽인다! 몇 년이 걸리건 너 반드시 찾아내서 죽여버릴거야!!"
"그럼 너도 죽는다."
어? 하고 아토 하루키는 핸드폰 자판을 누르려던 손을 멈춘다. 방금 들린 목소리가 자신의 것도 아니었거니와 눈 앞의 어둠 속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부서진 가로등이 비추지 못하는 어둠 저편, 누군가가 단단한 부츠를 신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보폭은 안정적이고 정확하며 빠르다. 발자국의 주인이 일상적인 폭력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오랫동안 지내왔음을 감지하게 만드는 발소리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 드러난 순간, 아토야마가 숨 넘어갈 듯이 기겁하며 버둥거렸다.
"뭐, 뭐야! 넌 또 뭐야!!"
그 점에는 아토 하루키도 동감이었다. 일본에서는 이질적인 연보라빛의 머리카락, 한 쌍의 붉은 눈. 그것들은 염색이나 컬러 콘텍트 렌즈, 혹은 알비노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으로 생각해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너덜너덜한 옷도 개인의 취향이라면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에게는 도저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얼굴이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피부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끔찍한 흉터나 화상이 남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의 피부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자의 얼굴은 달랐다.
왼쪽 눈은 크다. 마치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다. 하지만 오른쪽 눈은 가늘다. 마치 세상을 의심하는 군인의 눈동자 같다. 그 아래의 입술은 얼핏 웃는 것처럼 보였으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양쪽 눈가의 각기 다른 피부 주름을 따라가듯이 당겨지고 이완되어 일그러져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얼굴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얼굴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누군가가 억지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뜯어내고 정성스레 꿰매어 붙이지 않는 한 이런 얼굴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아토 하루키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일그러진 얼굴의 주인이 아토야마의 바로 앞에 서있음을 알았다. 심지어 검은 부츠가 그의 복부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 아토야마는 그대로 하루키의 뒤쪽으로 튕겨져나가 공장 부지의 철벽에 요란하게 몸을 부딪친 뒤 침묵했다. 기절한 걸까, 아니면 죽은걸까. 하지만 아토 하루키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야 뒤를 돌아보면, 이 일그러진 얼굴에게. 등을.
"착각을 피하기 위해 말해두자면, 난 폭력을 좋아하지 않아. 형제여."
일그러진 얼굴이 가볍게 몸을 추스리곤 입을 열었다. 아토 하루키는 무심코 그 한 줄의 말에 담긴 정보를 소화하려다 거의 기절할 뻔했다. 형제?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경고는 확실하게 남겨야지. 형제의 방식은 너무 물러. 보아하니 힘이 있는 거잖아? 그럼 저항도 못할 정도로 찍 눌러줘야 이치에 맞아. 안 그래?"
"…무슨 소리야? 당신은 누군데? 난 당신 같은 형제 둔 적 없거든?"
"하하, 하하핫!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마, 형제. 이 재회에 난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형체가 다가온다. 아토 하루키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능력을 써서 저지해야 한다. 아까와 같이 들풀들에게서 힘을 빌리려던 아토 하루키는 엮여올라가던 덩굴이 군용 나이프 하나에 쉽사리 찢겨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준비운동이라도 하듯 가볍게 풀을 찢어버린 형체가 말을 잇는다.
"형제의 능력, 조금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군."
"……아까부터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데… 난 외동이고, 설령 동생이 있더라도 당신같진 않거든?"
"돌아가면 어차피 다 알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 난 실력 하나는 확실해."
뭔가가 일렁인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 내부의 오리진 세포와 탐정의 감이 동시에 술렁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건 위험해.」「안돼.」「간격을 벌려.」「사로잡히지 마.」「도망쳐!」
그래서 아토 하루키는 그렇게 했다.
콘크리트를 부수고 지면이 원뿔 모양으로 솟아오른다. 그 사이로 덩굴식물이 마구 자라나며 돌과 흙으로 얽힌 감옥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감옥은 부서진다. 그러면 또 다른 지면이 솟아나 앞을 가렸다. 부서지는 소리. 지면이 우그러지는 소리. 아토 하루키는 온갖 소음을 뒤로 한 채 미친듯이 도망쳐, 자신의 차량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그대로 차 키를 꽂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시동 걸기를 세 번 정도 시도하는 동안 아토 하루키의 뇌는 뇌수째로 졸아붙을 뻔했다. 간신히 시동이 걸린 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둠을 달려나간다. 아토 하루키는 백 미러를 연신 살펴보며 시내를 향해 무작정 차를 몰았다.
삼 십 분 쯤 뒤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은 아토 하루키는 경찰에 해당 내용을 신고했다. 경찰은 그 자리에서 엉망으로 파헤쳐진 콘크리트 도로와 너저분한 파편, 그리고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용의자 아토야마를 발견하고 체포했다. 하지만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한 붉은 눈의 기이한 외국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경찰에게서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아토 하루키는 묘한 오한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정말로, 정말로 싫은 예감이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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