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도♀ :미카코
앙리♂ :앙리스케(애칭은 앙리)
=======================================================
최근, 미카코는 앞머리를 핀으로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머리가 길어져서 눈가를 찌르는데 미용실에 가서 자르자니 조금 아깝다고 그렇다고 자기가 자르자니 이상해질까봐 무섭다는게 대외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스스로도 그 말 속에 또래 소녀들이 가질만한 멋내기 의식이 섞여들어가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차마 말하기 남부끄러워서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미카코도 등교전에 와이셔츠가 삐져나오거나 치마가 구겨지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구두에 진흙이 묻거나 먼지가 쌓여 볼썽사나워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점에서는 천상 소녀인 것이다. 게다가 그녀와 주로 어울려다니는 것은 또래의 소녀가 아닌 두 명의 '소년'이다. 엔간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에야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는게 당연하겠지.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그녀의 소꿉친구의 키다 마사오미였다.
"오, 미카코 머리스타일 바뀌었네?"
"머리스타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앞머리를 올린 것 뿐인걸?"
"그래도 바뀐 건 바뀐거지! 아아, 이 러블리 큐트한 미카코의 모습에 나는 하트 브레이킹 할 것 같아-"
"…!!! 오, 오버하지마, 바보 마사오미!!"
갑작스레 외모를 칭찬받은 바람에 당황한 미카코가 주먹으로 옆구리를 후려친다. 제법 아플 것 같은 타격음이 났지만 정작 맞은 본인인 키다 마사오미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듯 천연덕스레 미카코의 반대편에서 걸어가는 단발의 또 다른 소년에게 말을 건넸다.
"오버가 아니라고- 앙리스케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미카코에게 굉장히 어울려."
키다는 그렇다치고 앙리에게까지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던 미카코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리다 얼굴을 푹 수그리며 말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그것이 미카코가 수줍으면 튀어나오는 버릇이라는 걸 알고있는 키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 걸어갔고, 조금 걱정스런 눈으로 미카코를 바라보던 앙리도 앞서가는 키다가 보내는 손시늉에서 상황이 그리 심각하진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빨리 했다.
=
이윽고 방과 후.
가방을 챙겨 언제나처럼 키다들과 함께 하교하던 미카코는 갑작스레 키다가 꺼내든 두 개의 봉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포장의 문양으로 보면 학교 근처에 있는 유명한 팬시점의 물건인 모양이다. 그런데 왜 이것을 자신에게 전해주는 것인가. 그것을 물었던 미카코는 그 다음에 이어진 키다의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머, 머리핀을 사왔다고?"
"그-래! 마이 엔젤 미카코가 이런 재미없는 블랙 똑딱핀을 쓰다니 믿을 수 없는 일!! 그런고로 나와 앙리스케는 점심시간에 학교를 빠져나가 근처 팬시점에서 미카코에게 어울릴만한 핀을 하나씩 골라 사가지고 돌아온다는 지상 천명을 시도한 것이다!!"
"점심시간에 그런 짓을 했단말야? 그것도 앙리군까지!?"
미카코가 시선을 돌리자 안경을 쓰고있는 단정한 소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늘 자신은 점심시간에 학급위원일이 있어서 빨리 점심을 먹고 곧장 교무실로 내려가긴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점심을 다 먹었던 시점에서 오후 수업시작까지 남아있던 시간은 대략 25분 남짓이다. 물론 힘껏 달리고 신속히 고르면 아주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겠지만, 키다는 둘째치고 언제나 조용히 책만 읽을 것 같은 이미지의 앙리스케까지 그 모험에 동참했다는 말에 미카코는 잠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앙리군이 체육에도 소질이 있다는건 알고있지만 교복은 달리기에 적합한 옷차림이 아니다. 그제사 왜 앙리가 수업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는지 이해한 미카코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방과후에 같이 사러가도 됐잖아. 일부러 이럴 필요까진…."
"NONONO!! 그래서야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지!"
"사, 사랑?!"
"그래….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과제.
누가 미카코에게 더 어울리는 물건을 빠른 시간내에 알아낼 수 있는가 하는 시련!!"
"참고로 시간은 동점이라서 판정 불가야. …미카코가 고른 쪽이 승리."
키다의 당당한 외침 뒤에 앙리가 점잖게 덧붙인 말에 미카코는 새삼스레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두개의 포장을 내려다 보았다. 붉은 줄무니 포장지에 싸여있는 두개의 머리핀은 아직 윤곽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무언의 기대를 보내고 있는 두 쌍의 눈동자. 그 반짝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에 고개를 숙인 미카코는 일단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포장을 하나씩 풀어보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몸을 숨기고있던 머리핀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처음으로 느낀 것은 순수한 감탄이었다.
먼저 포장이 풀린 하나는 노란색 병아리가 검은 머리핀 끝에 앉아있는 형태였다.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채 졸린듯 눈을 지긋이 감고있는 병아리는 금방이라도 잠들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더해 노랗고 동그란 머리 끝에 조그맣게 피어나있는 세잎클로버가 웃음을 자아낸다. 통상적인 네잎 클로버가 아닌 것은 제작자가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일까. 노란 병아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미카코는 이윽고 남은 하나의 포장을 풀었다.
검은 가지 끝에 피어있는 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겹겹이 싸인 꽃잎은 모두 붉은 색이었고,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활짝 피어나있어 저절로 사람의 시선을 그쪽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가지를 이루는 검은 몸체에는 흐드러지는 붉은 꽃잎을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완만한 적색 곡선이 수려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방금 전의 노란 병아리와 비교해보자면 다소 성숙한 느낌이 물씬 피어난다. 두 머리핀을 손바닥 위에 나란히 올려두자 적색과 노란색이 더욱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제사 미카코는 자신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하나를 고른다는 건 하나를 버린다는 의미고, 그건 동시에 키다군이나 앙리군 중 한명의 성의를 평가절하하는 일이 된다. 상상만으로 마음이 껄끄러워진 미카코는 머리핀이 올려져있는 손바닥을 꼭 쥐어 두 개의 머리핀을 동시에 붙잡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던 두명의 소년이 갑작스레 마주친 시선에 눈을 깜박였다.
"…난 둘 다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두개 다 선택할래."
마치 어린아이의 욕심같은 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게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미카코는 여기에서 의견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둘 다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고, 키다군도 앙리군도 소중한 친구니까. 미카코의 선언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문득 키다 마사오미가 웃음을 터트리며 미카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그 손이 떨어져나왔을 때, 키다의 손끝에는 미카코가 아침에 달고나왔던 똑딱핀이 붙잡혀 있었다. 근처 문방구에서 싸게 구입한 제품이다.
"미카코는 욕심쟁이구나-."
"…이 정도야 괜찮잖아…."
키다의 말에 조금 쑥쓰러워진 미카코가 부루퉁하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이번에는 앙리가 조용히 미카코의 손바닥을 펴내어 거기에 쥐어져있던 붉은 머리핀을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앙리가 고른 물품이었던 모양이다. 미카코가 눈으로 그 모습을 쫓는 사이 앙리의 손가락이 미카코의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일에 미카코는 일순 경직했고, 키다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앙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머잖아 똑딱핀이 고정되어있던 자리에 붉은 꽃이 한 송이 피어났다. 뒤로 물러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 앙리가 보기 드물게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코, 어울려."
"고, 고마워… 엣, 마사오미?"
"훗, 나도 질 수 없지!!"
손바닥에 남아있던 노란 병아리가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머리핀이 하나 더 머리에 꽂히는 감각이 전해지고, 약간의 손질을 더한 뒤 좀전의 앙리와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선 키다가 권총모양으로 쥔 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며 자랑스레 입을 열었다.
"핫핫핫, 역시 나란 분의 초이스는 마블러스했어!! 한번도 보지 않은 앙리스케의 아이템과도 어울리니 말야!!"
"…………뭘 그리 대단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거야, 바보 마사오미."
뾰루퉁하게 중얼거리면서도, 미카코는 살짝 손을 뻗어 머리핀을 어루만졌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감각으로 꽃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병아리의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져 입가에 약간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웃음을 본 키다나 앙리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다른 쪽으로 회피하는 것도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있던 미카코는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아무튼…둘 다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어어, 만약에 하루라도 하고 오지 않는 날이 있다면 마구 괴롭혀줄테다!!"
"…그랬다간 볼펜으로 찔러버릴거야?"
키다의 너스레에 미카코가 싸늘하게 대답하고, 거기에 또 호들갑스레 반응하는 키다의 모습에 말없이 웃는 앙리스케.
언제나와 같은 하교길에서 미카코의 머리를 장식하는 붉은 꽃과 노란 병아리가 석양빛에 물들어갔다.
'2차 창작 > 듀라라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자미카♀]죽은 그대를 위한 파반느(中) (0) | 2017.12.20 |
---|---|
[이자미카♀]죽은 그대를 위한 파반느(上) (0) | 2017.12.20 |
[미카도 수]이것은 한 발 늦은 사랑의 이야기 (0) | 2017.12.20 |
[전쟁샌드]선배와 후배님들 (0) | 2017.12.20 |
[세르미카쿠즈]RUN DRIVE!! (0) | 2017.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