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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퍼스트 위시(2016)

난 여차하면 널 죽일 수 있어 지금은 못하지만

"이렇게 예쁜데 왜 독을 가지고 있는걸까?"

아깝다는 듯 중얼거리는 앰버의 손가락의 식물도감의 한 페이지를 쓰다듬는다. 줄기부터 잎모양, 꽃의 생김새에 이르기 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려진 페리윙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야. 독을 가지고 있으면 초식 동물들이나 사람이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그건 알지만... 자기를 보호하려고 품은 독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독초라고 구분당하고 손가락질 받는다니 불쌍하잖아. 그러려고 태어난게 아닐텐데." 

디기탈리스, 벨라돈나. 조금이라도 독을 가진 식물에는 어김없이 붙어있는 빨간 표식은 초심자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코랄은 굵은 글씨로 적힌 독성 글자와 그에 따른 해독법을 훑어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물에게는 의식이 없어, 누나."
"아냐. 식물에게 말을 걸어주고 마음으로 키워주면 그에 보답하듯 튼튼하게 자라나준다고 했단 말야."
"누가?"
"그리다니아에서...."

...까지만 말하고, 앰버는 부자연스럽게 입을 오물거렸다. 코랄은 딱히 재촉도 무엇도 하지 않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튼, 독초라고 해서 혼자 놔둔다는건 너무해!"

두꺼운 식물도감이 순식간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덮힌다. 코랄은 그 엄청난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이내 푸스스 웃어버렸다. 샐쭉해진 얼굴의 앰버가 웃음소리를 듣고는 코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뭐야, 왜 웃는건데."
"음, 그게... 누나가 재밌어서."
"와아, 그런 말을 하는게 요 입인가~?"

그대로 볼을 꼬집혔다. 세지도 아프지도 않지만 눈을 꼭 감은 채 앓는 소리를 내던 코랄은 앰버가 미끄러지듯 손을 놓은 뒤에야 제 뺨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분명 독초는 이런 걸 피하기 위해 독을 품고 있는 걸거야."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자업자득이지 뭘."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새로 땋은 머리의 끝부분에 꽂아넣은 복수초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코랄은 땋은 머리를 조심스레 앞으로 넘겼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더라도, 식물이 식물인 이상 누군가가 자신을 꺽거나 장식으로 쓰는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당신에게는 유감이지만요."

노란 복수초를 향해 농담조로 말해도 대답은 없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므로, 코랄은 괘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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