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기타

[메달리스트]신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더라도

Mikyel 2025. 6. 15. 16:09

-아케우라지 츠카사+카미사키 히카루 (NCP논컾)

-원작 10권 시점에서 20년 정도가 지난 배경입니다.

-언급되는 것을 포함한 미래 설정은 날조입니다.

-스포일러는 없으나 메달리스트 10권까지 보신 후의 감상을 권장합니다.


 

요전에 영화를 봤어요.

 

카미사키 히카루의 목소리는 얼핏 담담하다. 색채로 비유한다면 선명하고 아름다운 라임 그린에 약간의 잿가루가 섞인 그린 그레이일까. 하지만 회색빛은 녹색의 명도를 낮췄을지언정 그 속의 채도는 깎아내지 않았다. 히카루 본인도 자신의 삶에 섞여든 탁한 색채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빛光을 품은 이름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제 이름대로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무슨 영화?

예수가 나오는 거요.

 

아케우라지 츠카사는 행운, 행복, 혹은 불행 중 어느 단어로도 규정하기 어려운 인연 끝에 히카루의 여정을 육성으로 전해듣는 몇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빙판 위에서 모두를 압도하고, 경악시키고, 온기 한 점 없는 경기장에서 분노와 증오와 경외와 질시를 쉴 틈 없이 피워내며, 경기를 끝낼 즈음에는 모든 이를 꽃잎이 터져나간 꽃줄기처럼 침묵하게 만들었던 천재. 

 

그 천재가 이제는 피겨 스케이트화를 신지 않는다. 빙판 위는 커녕 그 근처에서도 머무르지 않았다. 카미사키 히카루의 삶은 지상을 거니다가도 때로 지하를 파고들었고 내킬 때에는 바다를 건넜으며 그보다는 좀 더 잦은 빈도로 하늘을 날았다. 혹시 장래 우주여행 계획은 없니? 츠카사의 비실용적인 질문에 히카루가 깔깔 웃었다.

 

(우주는 이미 가본 적 있는 것 같으니까 흥미없어요.)

 

카미사키 씨, 세간의 상식을 알려줄게. 예수가 나오는 영화는 수두룩하단다.

진짜요? 그 사람 완전 슈퍼스타네요!

 

히카루가 타인을 향해 스타라는 말을 담는 것이 해괴하게 들리는 건 발화자 본인이 스타 수준을 넘어선 (물론 슈퍼스타의 개념도 포함하여) 인물이기 때문이다. 츠카사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케케묵은 말을 꺼내드는 대신 영화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물어보았다. 몇 가지 문답이 오고간 끝에 카미사키 히카루가 본 영화의 성향이 파악되었다. 성경 배경의 사실적인 영화. 고증된 생활상, 정설에 가까운 사건, 엄숙한 대사, 그와 비슷한 비중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고통과 유혈.

 

보기 힘들진 않았어?

영 거북하면 화면 살짝 가리고 봤어요.

스킵해서 넘겨도 될 텐데.

그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왜냐면 그는 정해진 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도망칠 수 없는 빙판 위에서 살아왔던 자이기 때문이다. 오직 도망치지 않을 마음을 먹은 자들만이 그 자리에서 날아오를 최소한의 자격을 얻는 하얗고 냉엄한 무대. 그 광활함은 어쩌면 영화가 비춰지는 스크린을 닮았고 화가가 마주해야 할 캔버스를 닮았다. 이제는 선수를 은퇴하고 빙상을 떠난 히카루가 오래된 영화를 보고 가끔씩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랜 삶을 산 자가 문득 제 살에 남은 흉터자국을 쓸어보는 반추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는 더 즐거운 듯 보이니 다행이었다.

 

혹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잘 몰라. 카미사키 씨는 알고 있어?

영화 보고나서 찾아봤죠. 약 1.2키로. 그러니까 1,200미터에요.

호오.

빙판 위의 저라면 5분내로 여유롭게 주파할 수 있었을 정도.

 

'빙판 위의 저'라는 말은 지금 현재의 카미사키 히카루가 피겨 스케이트 신발을 신고 빙상에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동사가 과거형으로 변환되는 것도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어떤 호의로도, 어떤 애원으로도 더 이상 빙상에 세울 수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히카루의 말은 정확히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겨냥했고 츠카사의 머릿속은 약 이십년 전으로 속절없이 회귀했다.

 

아득한 상념 속을 천재의 검은 궤적이 예리하게 긋는다. 시간과 맥락과 인지를 뛰어넘은 섬찟함이 단숨에 예루살렘의 땅 위에 착지했다. 마른 흙과 풀이 가득한 자리에 재앙처럼 한기의 흉터를 남기며 질주하는 과거의 빛. 츠카사는 오랜 시간 다져온 현실감각을 활용해 그 환상에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럼에도 햇살 아래서 들이마시는 숨결이 살짝 서늘했다.

 

십자가를 지고서도 그만큼 속도를 낼 수 있겠어?

버리고 가야죠.

전제조건을 맘대로 바꿔버리네.

전 예수가 아니니까요.

 

골고다 언덕을 오른 예수는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에 매달린다.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힌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속에서 오랫동안 괴로워하다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물론 신도 아니고.

당연하지.

빛나는 이름을 가졌을 뿐인 인간이에요.

이름에 대한 자각은 있었구나?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하도 써먹어서.

 

하지만 카미사키 히카루 선수는 부활하지 않는다. 빙판은 부활이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차갑고 지나치게 빛나며 누구의 눈물에도 녹아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선수만이 빙판의 광막함을 깎아낼 수 있다. 1초도 초과될 수 없는 엄중한 시간과 한 순간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판정과 무구한 응원과 격려와 말라비틀어질듯한 염원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차갑게 빛나며, 결코 녹아내리지 말고, 자신과 함께 숨쉬라고 감히 요구하는 2분 40초. 혹은 4분.

 

따라서 그 위에서 내려온 자는 더 이상 은빛 무대를 예비받지 못한다. 예비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 빙판은 자신과 감히 춤추지 않기로 한 자들에게는 더 이상 호흡을 맞춰주지 않으니까. 무수하게 거듭해온 노력도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힘을 빼는 순간 쏜살같은 속도로 밀려나가 멀어진다. 다만 한결같이 빛난다. 아무리 선명해도 지상에선 절대 닿을 수 없는 별처럼.

 

(정말이지 몸서리쳐지는 이야기야.)

(이러니 우주여행에 관심이 없어지는 거지.)

 

덕분에 좋은 구도가 생각나서 스케치중이에요!

종교화가로 활동해보려고?

 

츠카사는 조금 진지하게 질문해본 건데 히카루는 또 깔깔 웃는다.

 

예수가 피겨 스케이팅 하는 그림을 누가 종교화로 보겠어요!

 

그건 그렇군. 맞장구를 치면서도 츠카사는 자신이 생각한 의견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만약 네가 정말로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예수를 그렸을 때 주변의 반응이 떨떠름하다면, 그건 신성모독적인 내용 탓이 아니라 그 스포츠에 한해서는 네 자신이 이미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신이라 한들 소원의 속도보다 빠를 순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다. 츠카사는 핸드폰을 덮고 기지개를 편 뒤, 자신의 제자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마저 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