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기타

[보르조이 기획/가미]유메닛키, 마지막 페이지(中)

Mikyel 2017. 12. 28. 13:13

 

그리하여 그 다음에 도착한 장소는 까딱 잘못했다간 시력이 마비될 정도로 현란한 색채를 지닌 생물체-이걸 생물체의 범주에 넣어야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지만-들이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가미가 여기에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 기억에 머릿 속을 더듬어보는 사이, 자전거에서 내린 마도츠키가 특정한 벽에 달려있는 지퍼 무늬의 무언가를 인정사정없이 식칼로 쑤셔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굉장하다. 이건 완전히 식칼마스터 마도츠키잖아.

 

벽이 피를 흘리며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틈새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다른 생각으로 애써 회피하다가, 가미는 마도츠키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왜 그래?"

 

마도츠키가 식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자신이 방금 만들어낸 피투성이 틈새를 가리켰다.

 

"…설마 나보고 들어가라는 건 아니지?"

 

비정하게도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에엑?! 진짜로?! 저런거 절대로 무리야!! 완전 안된다고!! 어떻게 저런 데를 들어가?!"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죽을각오로들어가겠습니다 그러니까제발식칼을제쪽으로향하지말아주세요마도츠키씨."

 

앞에는 피투성이 틈새, 뒤에는 피묻은 식칼을 들고있는 소녀. 그야말로 지옥에 던져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가미는 피투성이 틈새를 석연찮은 눈으로 바라보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이윽고 몸에 축축하게 젖은 비닐같은 것이 질척하게 감겨들어 그 불쾌한 감촉의 기습에 견디다 못한 가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그 감촉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떨어져 나갔다. 정말이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촉에 부르르 몸을 떨고, 가미는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딘가의 골목과 닮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미가 있는 공간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너머의 공간. 역시 여기에선 계단을 올라가는게 정석이겠지.

 

그리고 가미가 계단 중간쯤을 오르다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그곳의 벽에 그려져있던 그림(같은 것)이 갑자기 계단의 손잡이로 한쪽 손을 불쑥 내밀었다.

 

"…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대로 전광석화의 속도로 계단을 올라 위쪽의 벽까지 곧장 줄행랑. 달리던 속도 그대로 벽에 맞부딪치고 난 다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가미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뭐뭐뭐뭐뭐뭐… 대체 뭐야?!"

 

계단의 그림- 아니, 생물체는 한쪽 팔을 손잡이에 늘어뜨린 채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딱히 아무 행동도 하고있지는 않지만 지금의 가미에겐 저런 생물의 존재 자체가 이미 초특급 공포다. 마침 근처에 문이 보여 일단 여기로 나가고보자는 생각에 손잡이를 잡은 순간, 머릿속에서 꺼림칙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느 괴수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수많은 그림의 이미지.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가미의 손은 이미 문 손잡이를 내팽개쳐버린 상태였다. 허공에 떠있는 왼손을 몇번 꼼지락 거리다가, 가미는 슬그머니 문에게서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째서 마도츠키가 자신을 대신 들여보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하지만 그것을 행하기 전에 우선 깊은 심호흡을 한 뒤, 가미는 그것이 있던 벽의 맞은편에 최대한 몸을 붙인 상태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으로 치자면 흰자와 검은자로 이루어져있을 부분이 각각 검은색, 붉은색으로 메꿔져있는 눈이 뚫어져라 가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마. 무섭다고…."

 

음절 단위로 긴장한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거의 기다시피한 상태로 계단 중간 지점에 도달한 가미는 일단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아- 정말이지 왜 저렇게나 색이 엉망으로 뒤섞여있는거야. 그런 불평을 토해내는 것으로 내부의 공포심을 덮어버리려 애쓰며, 가미는 입을 열었다.

 

"큐큐군…이던가? 마도츠키가 밖에서 기다려."

 

그 이외의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입을 다문다. 가미의 말이 제대로 전해졌느니 어떤지, 큐큐군은 벽 안쪽에서 눈을 깜박이고만 있었다. 역시 마도츠키가 아닌 나에게는 무리인걸까. 가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과 동시에 큐큐군의 다른쪽 팔이 벽 바깥으로 불쑥 빠져나왔다.

 

"…에?"

 

자신의 바로 앞에 튀어나온 두개의 팔을 보고 가미가 큐큐군의 얼굴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몸을 약간 뒤쪽으로 빼내는 시늉을 하고있었다. 그것이 몸을 밖으로 빼내기 위한 준비동작임을 직감한 가미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큐큐군은 벽 바깥으로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있어? 말을 알아들은 건가? 아니 그전에 저런 커다란게 나오면 계단은 완전히 꽉 차버린다고?! 게다가 이런 덩치가 내가 들어왔던 정도의 틈바구니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보다 나 지금 여기서 도망치지 않아도 괜찮은건가?! 등의 생각에 휩쓸려 결국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두 눈만 질끈 감았다가, 가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예상했던 대로의 압박감의 덮쳐오지 않음을 깨닫고 살그머니 눈을 떴다.

 

그러자 눈 앞에는…

 

"에…. 어, 어라라?"

 

벽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어있는 큐큐군이 있었다. 추정크기는 10~15cm정도. 이래서야 겁을 먹고 있던 가미쪽이 바보같아진다. 한 손바닥으로도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 채 눈을 말똥말똥 뜨고있는 큐큐군(미니멈 사이즈)을 일단 들어올리자 손바닥에 약간 따끈따끈한 감촉이 전해졌다. …뭐랄까, 아까보다 작아지니 조금 귀여워보이기도 한다. 다만 여전한 색깔이 조금 눈에 걸리지만…, 어쨌든 이걸로 임무는 완수다. 젤리처럼 흔들리면서도 따끈따끈한 큐큐군을 두 손으로 받쳐든 채, 가미는 그 복도를 빠져나왔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문이라서 다행이었다.

 

마도츠키는 사이드 스탠드가 세워진 자전거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하릴없이 경적을 삑삑 울려대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심심했던 모양이지. 가미가 지퍼 사이로 빠져나와 그녀에게로 다가가자, 가미의 손바닥 위에 놓인 큐큐군을 발견한 마도츠키가 발딱 일어서서 곧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이거야 맘에 든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모습이다. 자신에게로 쭉쭉 손을 내미는 마도츠키의 손바닥 위에 큐큐군을 올려주고, 가미는 조용히 그 다음 일을 지켜보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큐큐군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뒤 마도츠키의 손바닥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모습을 지켜본 뒤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사이드 스탠드를 차올리다가, 가미는 마도츠키가 위를 빤히 쳐다보고 있음을  발견하고 덩달아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야 저거?"

 

말하자면 새하얀 비행선. 하지만 그 재질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로 이루어진 것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있었다.

 

저거 설마 UFO? 우릴 납치하려는 건가?  완전히 패닉에 빠진 가미가 허둥대는 사이 가미의 옷자락을 잡은 마도츠키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부정하는 단호한 동작.

 

"에… 괜찮은거야, 저거?"

 

고개가 긍정을 표시한다. 이 꿈의 주체이며 내용물을 가장 잘 알고있는 마도츠키가 이렇게 나온다면 저것은 정말로 무해한 녀석이라는 소리겠지. 그래도 어쩐지 불안해지는 마음을 전부 없애지는 못한 가미가 다시 한 번 위를 올려다보자, 비행선의 아랫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야를 서서히 잠식하는 그 강한 빛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자 무언가에 의해 몸이 붕 떠올랐고, 본능적으로 몸을 긴장시킨 가미는 잠시후 자신의 발이 다시 바닥을 밟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깜박였다.

 

"…어라, 여긴…?"

 

그곳에는 새하얀 공간이 있었다. 새하얀 벽, 새하얀 바닥, 새하얀 창문, 새하얀 탁자와 의자 등등. 그나마 하얗지 않은 것들은 창문 밖으로 비치는 밤하늘과 피아노(로 추정되는 것)의 건반, 그리고 그곳의 주인이지 싶은 검은 남자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에게도 분명히 뭔가 이름이 있었….

 

……………….

……………………….

……………………………….

 

망했다.

너무 길어서 생각이 안 나잖아.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이름을 가진 자를 조금은 분한 눈으로 바라보며, 가미는 그를 그냥 '선생'이라고만 부르기로 했다. 실제 이름 뒤에도 '선생'자가 붙었던 것 같으니 별 상관없겠지. 가미가 홀로 납득하고 있는 사이, 방 한쪽에 자전거를 기대세워놓은 마도츠키가 그대로 오른쪽 방문으로 걸어갔다. 저긴 분명 침실…이었던가. 가미가 버릇처럼 마도츠키의 뒤를 쫓아가자 뒤를 돌아본 그녀가 따라오지 말고 거기에 남아있으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 손짓에 따라 제자리에 멈춰선 자신을 발견하고, 가미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야 엄마 오리 뒤를 종종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다.

 

한쪽 머리를 긁적이고, 가미는 마도츠키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심산으로 근처에 있던 흰 의자에 주저앉았다. 맞은편에 나있는 창문으로 새카만 밤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밤하늘이 아니라 우주라고 해야 맞으려나. 아무튼 둥글고 힌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은 꽤나 평화로운 것이었다. 의자에 편하게 앉은 채 선생의 뒷모습과 우주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방 안에서 마도츠키가 걸어나왔고, 그족으로 고개를 돌린 가미는….

 

"뭔가 늘어났잖아!!"

 

아주 솔직하게 외쳤다.

그도 그럴것이 방을 앞서 빠져나오는 마도츠키의 등 뒤로 모노코와 모노에, 포니코가 줄지어 빠져나오고 있다. 물론 마도츠키가 모았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 들어간 방에서 네명이 나오면 어디의 마술트릭이냐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 신기한듯이 비행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소녀들을 바라보다가, 가미는 마도츠키들이 빠져나온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큐큐군과 눈이 마주쳤다.

 

"……."

 

눈이 깜박이며 바깥을 응시하다 사라지고 두 개의 팔이 문 안쪽에서 바깥으로 뻗어져나오며 몸 전체를 빼내고 싶은듯이 파닥거린다. 그 필사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가미는 결론내렸다.

 

큐큐군, 너무 커져서 문으로 못 나오는구나.

 

"진짜 바보같아…."

 

애초에 처음부터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작아진 상태로 나오면 되잖아. 저러고 있는 걸로 보면 작아지는 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싶지만, 아무튼 좀… 아니 상당히 우스운 풍경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작은 한숨을 내쉬고, 가미는 큐큐군의 팔을 양팔에 하나씩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영 빠져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혀를 차다가, 가미는 주위에 마도츠키들이 옹기종기 모여선 것을 발견하고 눈을 깜박였다.

 

그 사이 마도츠키와 선생이 큐큐군의 왼팔을 잡았고, 모노코와 포니코가 큐큐군의 오른팔을 잡았다. 잠시 고민하던 가미는 파워 벨런스를 고려해 오른팔을 꽉 붙잡은 뒤 조금씩 힘을 끌어모아 큐큐군을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모두의 힘이 합쳐짐에 따라 큐큐군의 몸이 만화틱하게 문 바깥으로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만약 큐큐군에게 뼈가 있으면 대참사가 날 것 같다는 오싹한 예상이 떠올랐다. 아마도 잘해봤자 전신마비, 삐끗했다간 바로 사망이겠지. 그러니까 있는 뼈도 없애는게 나을거야 큐큐군ㅡ하고 생각한 순간.

 

퐁.

 

샴페인의 마개를 딸 때와 비슷한 소리와 함께 큐큐군의 몸이 단번에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당연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줄다리기를 하듯 큐큐군의 팔을 잡아단기던 전원이 뒤로 나동그라져 버렸고, 졸지에 모노코와 포니코의 쿠션이 되버린 가미가 예상치 못한 충격에 끙끙대는 사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모노에가 키득키득 웃으며 가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 엄청 자연스레 대열에서 빠졌어….

 

범상치 않은 존재를 보는 눈으로 모노에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 뒤, 가미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모노코와 포니코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뭐랄까 모노코의 외모에도 슬슬 익숙해져서 이젠 친근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모노코의 머리에 달린 손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 위에 푹신푹신한게 닿아서, 가미는 소스라치며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방금 전 자신들이 꺼낸 큐큐군(미디엄 사이즈)의 한쪽 팔이 있었다, 아무래도 꺼내준 데에 대한 보답인 모양이지만….

 

"자꾸 놀라게 하면 때려준다 큐큐군?"

 

힘껏 노려보면서 말해도 큐큐군은 영 알아들은 기색이 아니다. 머리를 완전히 헤집을 정도로 쓰다듬은 큐큐군이 모노코와 포니코에게도 손을 뻗어주는 사이, 가미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으로 되어있는 마도츠키가 밖으로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