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샌드]선배와 후배님들
-미카도 수 동맹 '다라라라'에서의 미카도 생일 이벤트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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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횽, 오늘 저랑 데이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일단 핸드폰에서 귀를 떼고 손목을 움직여 시각을 확인한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는 점심시간을 약간 지난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시간과 머릿속의 시간표를 잠깐 대조해본 다음, 미카도는 약간의 안도와 그 아래에 깔린 일말의 절망감을 느끼며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 이제부터 수업이 있어서…."
<휴강이에요.>
"………응?"
<그 수업, 휴강입니다.>
다시 한번 자신의 말을 반복재생한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친절을 베풀어 자신의 말을 조금 더 상세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한마디에 일순 정신을 놓은 채 멍하니있던 미카도는 [다음 수업의 강의교수가 부인 몰래 다른 애인을 사귀고있던 도중 친절한 누군가 최근 며칠사이에 그와 관련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을 부인에게 찔러준 덕분에 지금 자택에서 이혼서류를 평화적으로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라는 이야기가 마무리에 들어선 다음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반대편 손으로 바꿔쥐었다.
"에, 저기, …진짜야?"
<싫다아, 저 이뢰뵈도 정보통이에요. 저를 못 믿으시는건가요ㅡ?>
"그런건 아니지만…."
아무리 정보통이라고 해도, 상대방은 엄연히 고등학생이다. 덧붙이자면 미카도의 모교에 다니므로 후배라고도 할 수 있다. 후배라고 하기에는 좀 벅차다는 감이 없잖아 있-기 보다는 언제나 부담감이 마음속에 차고 넘친다. 아무튼 대학교의 정보를 손쉽게 알아내는 고등학생이라는건 상대가 자신에게 아무리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조금… 고역인 법이다. 그 부담감을 헛기침으로 지워내려는 시도를 했다가 깔끔하고도 무참히 실패한 뒤, 미카도는 괜시리 주변을 둘러보며 남은 한 손으로 볼을 긁었다.
<그럼, 오시는거죠?>
"에, 잠깐만 기다려!! 오늘 평일이잖아? 학교는 어쩌고?"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서 일찍 끝났습니다.>
"주, 중간고사…?"
그러고보니 그런 시기였던가. 대학교는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싸이클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교의 시험이 끝날 즈음에는 대학교의 시험이 가까워지는 시점이라 어린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앉아있을 겨를이 없었다. 만약 그랬다간 이미 옛날에 리포트와 과제에 질식사했거나 차후 성적을 보고 심장마비에 걸렸겠지. 어쨌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 이케부쿠로에 남아있는 처지니, 매 학기마다 장학금이라도 받아내지 못하면 면목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현재 처지를 자각하고, 미카도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저기, 오리하라군?"
<이자야라고 부르시라니까요.>
"…아무튼, 나 오늘은 무리야. 다음주가 시험인걸."
<알고있습니다. 그러니까 와주세요.>
"…………?"
미카도가 의문을 표하려는 사이.
<오시면 전과목 시험 예상문제 알려드릴게요.>
"……………!!!!"
류가미네 미카도(대학생, 자취중). 시험기간 중 인생의 시험에 들다.
=
그리하여, 삼십분후의 이케부쿠로.
진짜로 수업이 휴강한 것을 확인하고 학교를 나와 이자야가 말한 장소로 향한 미카도는 거기에 펼쳐져있는 풍경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가방끈을 세차게 움켜쥐었다. 부지불식간에 끈에 쓸린 손바닥이 살짝 화끈거렸다.
"…이자야군…이랑, 시즈오군…?"
"앗, 안녕하세요 미카횽."
"…안녕하세요. 선배."
이름을 부르자 예의바르게 반응해준다. 무시해주지 않았다는 점은 고마운 일이지만 거기에 순수하게 감동하기에는 부서진 간판이라던가 반쯤 금이 간 아스팔트라던가 구부러진 표지판, 더불어 공포에 찬 사람들의 시선 등이 골고루 혼재된 주변상황이 상당히 여의치 않다. 이압박적인 상황 속에서 다음 말을 찾지 못한 채 잠시 머뭇머뭇거리던 미카도는 일단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둘 중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은 시선을 던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또 싸우고 있었던거야?"
"아하하, 지나가는데 시즈쨩이 갑자기 자판기를 던져버리는 바람에 그만."
"넌 입 다물어. …죄송합니다. 미카도 선배."
"…………하아…."
살짝 한숨을 내쉰 다음 두 사람을 돌아본다. 왼쪽에는 소매에 나이프를 은근슬쩍 숨기고있는 오리하라 이자야. 오른쪽에는 먼지투성이가 된데다가 부분부분이 너덜해진 교복을 걸치고 한손에 공사현장 표시용 표지판을 쥐어들고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 둘 중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는게 좋을까를 잠시 가늠해본 다음, 미카도는 일단 먼지투성이에 교복이 너덜해져있는 시즈오에게로 다가갔다. 등 뒤에서 이자야가 노골적으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지만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시즈오군, 괜찮아?"
"…괜찮습니다."
"시즈쨩은 바퀴벌레같은 녀석이니까요-"
등 뒤의 이자야가 밉살스러운 소리를 내뱉는다. '같은 녀석이'라는 부분만 미묘하게 소리가 작아서 시즈오를 바퀴벌레와 동급으로 만들다 못해 아예 동질화시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살짝 찌푸린 시선을 향하자 '미카도씨는 찌푸린 얼굴도 귀엽네요-'라는 말이되돌아와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 사이 시즈오가 부글부글 끓는듯한 표정으로 적의를 불태웠지만 이 이상 싸웠다가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테니까 일단 시즈오를 안정시킨 뒤 그 옷의 먼지를 털어내주던 미카도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길다란 상흔을 발견하고 숨을 삼켰다.
"이거… 병원가야 하지않아?"
"…별로. 안 아픕니다."
그치만 피가 나는걸! 라고 외치려는 순간 한쪽 팔이 슬그머니 뒤쪽으로 끌어당겨진다. 설마 연락을 받은 경찰이 벌써 찾아온건가?!라는생각에 미카도의 얼굴에서 일시적으로 핏기가 싹 가셨지만- 그 직후에 그의 귓가에 닿은 것은 오늘 핸드폰을 통해서도 들은 목소리였다.
"미카횽- 그 녀석은 내버려두고 저랑 데이트 해주세요-"
"에, 이자야군이었구나… 그치만…."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시즈오 쪽을 바라보면 명백하게 얼굴이 일그러져있다.
우와, 역시 아픈거였어…!!
"시즈오군, 아파? 역시 병원에 가보는 편이…."
"…그럼 미카도 선배도 같이 가주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덥썩 소맷부리를 붙잡힌다. 이쪽은 이자야가 붙잡은 팔과는 다른 팔이라, 결과적으로 미카도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버렸다. 자신은 후배들에게 인기있는 선배구나-하고 기뻐해야하는걸까…하고 잠시 도피성 짙은 생각에 빠져있던미카도는 이대로 뒀다간 그 두명 중 누구도 먼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상황을 중재해보기로 했다.
"저, 저기… 둘 다 일단 이 손 좀 놔주지 않을래…?"
"싫어요." "싫습니다."
이런데서만 의견일치하지 말아줘….
미카도의 눈물 섞인 중얼거림(마음 속 사양)을 듣지 못한 채 팔을 하나씩 붙잡은 두 소년들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짐승은 얌전히 동물병원에 처박히지 그래?"
"시끄러워. 네놈이야말로 당장 꺼져."
"어휴, 이래서 단순무식한 녀석은 싫다니까-"
"닥쳐. 그리고 손 놓고 당장 꺼져. 이 벼룩같은 놈."
"으음- 하지만 미카도씨는 분명 나를 선택해줄텐데?"
"…그럴리가. 없어."
"진짜야- 그쵸, 미카횽-?"
"…진짭니까."
"에, 에…."
간신히 돌아온 발언권은 예상 이상의 부담감을 동반하고있어,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할 상황에 안절부절 못하던 미카도는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지금 이 거리의 일부를 처절하게 반파시킨 것은 자신의 팔을 하나씩 붙잡고있는 이 소년들이다. 그건 이 거리의 사람들도 다 알고있으니- 이 자리에서 이 상태 그대로 머무르고 있다간 셋 다 나란히 경찰과 면담을 하게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명의 후배와는 달리 미카도는 이런 일에 휘말려드는 것에 대해 한 줌의 면역력도 존재하지 않는 일반 시민이었고, 따라서 일반인들이 귀찮은 일에 휘말렸을 때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도를 선택했다.
"일단… 여기서 도망치지 않을래?"
"앗, 사랑의 도피 제안인가요?"
"틀려! 지금 경찰도 오고있는걸! 둘 다, 붙잡히고 싶진 않지?"
"…하지만 선배, 대답을 아직 못 들었는데요."
"시즈오군은 이런 데에서 고집이 세구나…."
연장자로서의 리더쉽을 전혀 갖추지못한 자신에게 일말의 서글픔을 느끼고, 미카도는 슬쩍 이자야를 돌아보았다. 이쪽은 자신이 선택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있는 당당한 웃음. 그제서야 이자야가 자신에게 제안했던 거래품목-시험과목예상문제-를 떠올린 미카도는 실로 복잡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이미지 컬러 레드의 사이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
양쪽에서 시선이 쏟아진다.
미카도는 압박감과 쑥스러움을 동시에 털어내기위해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물론 효과는 미비했다.
"나는, 둘 다 좋아하니까…그냥 둘 다 선택하는건 안될까?"
그 말만을 하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굴을 가리고 싶지만 그 손이 사람에게 잡혀있어 가릴 수도 없다. 결국 창피함을 견디다 못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 미카도는 한참의 침묵이 이어진 다음 누군가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듣고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아- 이래서 미카횽을 사랑한다니까요."
"…너, 시끄러워."
아까 전과 구도는 비슷하지만 약간 둥글둥글해진 분위기의 두 사람은 약간이나마 웃고있었다. 어리광 부리기 식의 발언이 통했다는 사실에 미카도가 놀라거나 안도할 사이도 없이, 미카도의 후측에 서있던 이자야가 화려하게 몸을 돌리며 미카도의 몸을 어떤 방향으로 돌렸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무리 너머로 어딘가의 상가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보였다.
"그럼- 도망칠까요? 붙어있는 혹이 달갑잖지만 말이에요-."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벼룩자식."
"부, 부탁이니까 둘 다 싸우지 말아줘…."
이이상 일을 벌렸다간 내가 울어버릴거라구.
자신의 손을 하나씩 잡고 자신보다 앞서 걸어나가는 후배들의 등에 대고 그렇게 말한 뒤, 선배는 무력한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후배들에게 있어 더없이 가슴설레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