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듀라라라!!

[미카도 수]신입교사의 시련

Mikyel 2017. 12. 20. 10:44

 

3월, 라이라 학원 고등부 입학식.

 

'…우와아, 사람 진짜 많다아아아….'

 

체육관에 꽉 들어차있는 교복의 물결에 소심한 사람 특유의 공포증을 느끼며, 미카도는 의자에 앉아있는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켰다. '공포는 견디다보면 용기가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30분째 공포에 질려있는 미카도에게는 한줌의 용기조차 솟아나지 않는다. 공포가 너무 지나친 탓인지도 모르고, 혹은 공포보다도 더욱 짙은 긴장감과 초조함이 용기가 치환될 틈새조차 없을 정도로 마음을 굳게 경질시켜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미카도는 입학식의 시작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무릎께로 시선을 내렸다가 옆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친구 -키다의 눈치에 흠칫하고 허리를 쭉 피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쪽을 눈치챈 학생 몇몇인가가 쿡쿡 웃음지었다.

 

'미카도, 너무 긴장한거 아냐?'

'으으… 어쩔 수 없잖아….'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티나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키다에게 웅얼웅얼 대답하며, 미카도는 손이 놓여져있는 허벅지께의 옷감을 살짝 그러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보지못한 짙은 무늬가 그려져 움찔 놀란 미카도는 그 무늬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 그것이 자신의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이 묻은 자국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감과 자신의 소심함에 대한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동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왓…!!"

 

불시의 습격이나 다름없는 그 거대한 박수소리에 깜짝 놀라 작은 비명을 지른 미카도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한손으로 가리며 슬쩍 주위를돌아보았다. 다행히 입학생들의 박수소리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큰 소리는 나지 않았는지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양 옆자리에 앉아있는 두 친구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하게 웃음짓고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던 미카도는 단상 위에서 들려오는 방송에 숨을 삼켰다.

 

「…그럼 이제부터 신입생들의 담임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왔다…!!

 

약간이나마 이완되어있던 마음이 급속하게 동결되어간다. 그 영향은 몸에도 고스란히 나타났고, 그야말로 관절이 녹슨 강철로 이루어진 것마냥 삐꺽삐꺽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선 미카도는 이런 긴장감의 와중에서 자신보다 앞선 위치에 친구의 뒷모습이 있다는 사실에 작지만 엄청난 감동과 구원감을 느끼며 -그리고 자신의 뒤에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일순 망각했다- 단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때 학생들은 가벼운 박수를 쳐주며 선생들의 움직임에 호응해주었고, 단상위로 올라간 다음에서야 자신이 맨 오른쪽에 서게되었음을 깨닫고 한껏 얼어붙어있던 미카도는 그 소리가 마치 악마가 자신의 핏기를 쫓아버리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회상했다.

 

「…그럼, 오른쪽부터 소개하겠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도 자기소개시간은 변함없이 찾아오는구나… 미카도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의 공포감을 도피시키려고 애쓰며 입학식을 진행하는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피커로 전해지는 마이크의 울림과 긴장감으로 점철된 심장의 두근거림이 서로를 미친듯이 두드려대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미카도는 그것을 진정시키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일순 아까 앉아있을 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주술이라도 해둘걸…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1-A 담임, 류가미네 미카도 선생님. 담당과목은 컴퓨터입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소개와 동시에 허리를 푹 숙였다가 몸을 일으킨 미카도는 그 순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단상 위에서는 굳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잖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식겁하는 것과 동시에 1-A로 추정되는 구역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비단 그곳뿐만 아니라, 단상의 선두에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들 키득키득 웃음을 머금고있었다. 창피한 마음에 미카도의 창백해져있던 안색이 붉게 물들어가는 사이, 한 술 더 떠 진행을 맡고있던 교사가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구, 신입이라 긴장하신 모양입니다.」

"……………아우우…."

 

웃음섞인 목소리에 얼굴을 푹 숙이고, 미카도는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물론, 대부분의 소원이 그렇듯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았다.

 

「1-B 담임, 키다 마사오미 선생님. 담당과목은 역사입니다.」

「1-C 담임, 소노하라 앙리 선생님. 담당과목은 수학입니다.」

「1-D 담임…」

 

생지옥은 모든 소개가 끝난 교사들이 단상 아래로 내려올때까지 계속됐다.

 

=

 

"…지, 지쳤다아…."

"여기서 지치면 못쓰지 미카도- 그래서야 교실에 멋지게 들어가서 귀여운 걸들의 마음을 캣치한다는 작전은 물거품이 되버린다고?"

"그런 작전 계획한 적도 없어."

 

긴장감으로 정신쪽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냉정한 태클을 걸어주고, 미카도는 방금 전 교무실에서 배부받은 출석부를 살짝 훑어보았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들이 뻬곡하게 들어차있는 종이는 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두명의 이름을 읽어나가다 마음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흘끗 옆을 돌아본 미카도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카도쪽을 바라보고있던 키다와 눈이 마주쳐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키다가 알 만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긴장풀어, 미카도. 그렇게 굳어있어서야 여학생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겠어?"

"…키다군. 격려해주는 척하면서 너와 나의 머릿속 상태를 동급으로 만드는건 그만둬줄래?"

"이건 중요한 일이야! 이 첫날, 여학생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느냐로 남은 1년이 결정되는 거라고!"

"남학생들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구나."

"좋아, 승부다 미카도! 이 1년을 보낸 뒤 종업식에 걸쳐 내년 발렌타인까지 누가 더 많은 인기를 얻는가를-"

"거절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만담으로조차 성립되지않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출석부를 챙겨든 채 시계를 응시하던 앙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교실로 갈 시간이야. …류가미네 선생님, 키다선생님."

"…아, 아, 응… 그렇게 불리니까 뭔가, 어색하네…."

"훗, 난 이미 익숙해졌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일승이다!"

"에… 뭐야, 그 엉망진창 룰!!"

 

앙리의 호칭에 쑥쓰러워하고, 키다의 발언에 태클을 걸며 학년실을 나선 미카도는 자신의 교실로 향하며 방금 전에 제대로 보지못했던 출석부를 살짝 훑어보았다. 여전히 낯설기 그지없는 이름들 사이로, 출석부 아래에 적혀져있는 누군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平和島 靜雄)]

 

'…왠지 조용해보이는 이름이네.'

 

단순한 첫인상을 머릿 속으로 웅얼거리고, 미카도는 앙리, 키다등과 순서대로 헤어져 자신이 맡은 반의 문 앞에 섰다. 문 틈새로 아이들이 떠드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미카도가 그 문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고있자니, 조금 전 B반의 문으로 들어갔던 키다가 문 바깥으로 상체만을 내밀어 미카도를 향해 힘내라는 의미인지 엄지손가락을 한번 치켜올려준 뒤 다시 경쾌하게 교실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쪽의 앙리는 미카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 뒤 키다와 마찬가지로 교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텅 빈 복도에 홀로 남은 미카도는 둘의 소리없는 응원에 미소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굉장한 소리와 함께 앞문의 일부가 튕겨나왔다.

 

"…에."

 

정확히 말하자면 앞문에 나있던 동그란 창문으로 삐죽한 철제막대같은 것이 부딪치면서 깨어진 유리조각이 성대하게 흩날렸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거대한 파괴음도 복도에 한가득 흩날렸다. 순간적으로 교실안에서 무슨 사단이 났다는 생각에 의자가 끼이고 우그러져 못쓰게된 앞문을 버리고 멀쩡한 뒷문쪽으로 달려가 단숨에 문을 밀어젖힌 미카도는 그 정면 방향에 서서 철제 책상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있는 학생과 그 대각선 방향-교실의 앞문이 놓이는 선상-에 우뚝 서있는 또 다른 학생을 발견했다. 기묘한 대립구조에 미카도가 굳어있는 사이 먼저 입을 연 것은 무기를 들지않은 소년쪽이었다.

 

"선생님이 오셨네? 그럼 난 여기서 이만."

"엣, 잠깐…."

"어딜 도망가냐아아 이자야아아아!!"

"히왓!!"

 

도망치는 소년의 뒤를 쫓아 내달리는 노호성에 깜짝 놀란 미카도가 몸을 움츠리는 것과 동시에 뒤늦게 달려온 키다와 앙리가 열린 뒷문 사이로 뛰어들어왔다. 아무래도 그 소년은 키다들과는 다른 루트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미카도가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돌아보자 안색이 파리해진 키다가 미카도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카도… 너, 얼굴."

"응?"

"뺨에서…."

 

키다와 앙리의 말에 아무 생각없이 한쪽 볼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미카도는 그 손바닥에 느껴지는 질척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 손바닥을 떼어냈다. 시야의 한켠에 들어온 손바닥에는 기하학적인 붉은 도형이 찍혀있었다. 방금전 유리가 깨졌을 때 베여버린걸까. 안경을 끼고있어서 눈에는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다…하고 미카도가 판단내리는 동안, 앙리가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미카도의 뺨을 지긋이 눌러준 다음 그의 손을 붙잡고 교실을 벗어났다. 아무 생각없이 앙리의 리드에 따라가던 미카도가 언뜻 뒤를 돌아보니 뒷문을 가리는 키다의 등 사이로 책상을 한 손으로 들고있던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싸우면 안된다고 해줘야하는데…."

"그런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미카도의 중얼거림은 앙리의 필사적인 말에 가려진다.

머뭇머뭇 뒤쪽을 돌아본 미카도의 시야에 더 이상 그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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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미네 미카도 : 1-A 담임. 담당과목 컴퓨터. 동안을 숨기기 위해 안경을 쓰고있다. 
키다 마사오미 : 1-B 담임. 담당과목 역사. 하지만 모르는 아이들은 영어 선생인 줄 안다.
소노하라 앙리 : 1-C 담임. 담당과목 수학. 왕년에는 검도 고교체전 여성부 우승자.

 

이상, 옛 라이라 시절때부터의 삼각관계. 
교사 임용시험에도 나란히 합격했다.